장희빈張禧嬪 상례와 추보追報 논의의 성격
The Characteristics of The funeral Rites and the Discussion with Chubo of Jang Heeb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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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세자의 생모지만 죄인이라는 장희빈의 이중적 위상은 그녀의 사후 상례와 추보 의례에서 중요한 변수가 되었다. 장희빈의 상례는 예장으로 거행되었지만, ‘희빈’이라는 작호 대신 ‘장씨’라는 호칭이 사용되었다. 상례는 궐밖의 본궁에서 거행되었고, 세자와 세자빈은 궐내의 별당에서 거애의擧哀儀. 성복의成服儀, 제복의除服儀를 행했다. 세자는 첩모복으로 시마복을 입었지만 3일만에 공제해야 했다. 발인 전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빈소에 친림하여 곡하는 것으로 사정私情을 펼 수 있었다. 이후 발인과 하관 시 별당에서 망곡하는 절차를 끝으로 모든 의례가 마무리되었다. 세자의 의례는 매우 제한적이었지만, 장희빈 장지의 선택은 세자의 안위와 직결되는 중요한 문제로 인식되었다. 택지가 번복되면서 3개월 규정을 넘겨 4개월째 장례를 치렀고, 이후 길지를 찾기 위해 천장이 거행될 만큼 장희빈의 묘소는 국가적 관심사가 되었다. 1721년 신축옥사 직후 소론 준론이 사친추보를 주도하면서, 칭호를 정하고 사우를 세우는 추보 방식을 주장했다. 이에 반대하는 노론과 소론 완론은 숙종의 뜻을 따르는 계지술사를 강조했고, 계지술사의 기준으로 장희빈 상례가 소환되었다. 준론은 숙종이 세자의 의례를 인정했다는 점에서 추보의 정당성을 강조한 반면, 노론과 완론은 숙종이 ‘희빈’을 ‘장씨’로 호칭하고 세자의 의례를 제한한 측면에 주목했다. 또한 추보와 추숭의 개념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었다. 준론은 사친의 칭호와 사우를 세우는 방식을 은혜에 보답한다는 의미에서 ‘추보’로 명명한 반면, 노론과 소론 완론은 예에 맞지 않는 ‘추숭’으로 규정했다. 1722년 임인옥사 이후 추보 절차가 본격적으로 진행되었다. ‘옥산부대빈’이 라는 칭호로 고쳐 쓴 신주를 새로 건립한 대빈묘大嬪廟에 안치하고, 경종이 대빈묘에 친림하여 전배례를 행하는 것으로 추보가 마무리되었다. 신임옥사와 동시에 진행된 사친추보는 강한 정치성을 드러내지만, 장희빈의 의례적 위상에 대한 검토를 토대로 덕흥대원군·인빈 등의 전례를 참조하여 의례를 만들어 가는 과정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러한 의례는 영조대 궁원제로 계승되지 못하면서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 그러나 궁원제의 성격과 의미를 규명하기 위해서, 경종대 사친추보 의례에 대한 연구는 반드시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Abstract
Jang Hee-bin’s dual status as a sinner and the birth mother of the crown prince became an important variable in her posthumous rites and memorial rites. Jang Heebin’s funeral was held as a ritual, but the name ‘Jang’ was used instead of the title ‘Heebin’. The funeral was held at outside the palace, and the crown prince and crown prince performed geae, sungbok, jebok in a separate hall within the palace. On the previous day of the balin, the crown prince went to Jang’s place and cry. Although the crown prince’s rituals were very limited, Jang Hee-bin’s grave was recognized as an important issue directly related to the crown prince’s safety Immediately after shinchukoksa in 1721, Zuron Junron led the King’s real mother ChuBo and insisted on the method for setting the title and establishing the shrine. Noron and Soron Wanron, who opposed this, emphasized the gyejisulsa who followed the will of King Sukjong, and Jang Hee-bin was summoned as the standard of the gyejisulsa. While Junron named setting the title and establishing the shrine as ‘Chubo’ in return for grace, Noron and Soryon Wanron defined it as ‘Chusung’ that was not polite. After Iminoksa in 1722, King’s real mother ChuSung was carried out in earnest. It was carried out by raising the title of ‘Daebin’ to include new stocks and worshiping them in a newly built Shrine, Although Sachin Chubo reveals strong politics, the process of making rituals by referring to the precedents of Deokheung Daewongun and Inbin based on the review of Jang Hee-bin’s ritual status is importa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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