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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端懿嬪의 喪禮와 服制論議 -『端懿嬪喪葬謄錄』을 중심으로

The Funeral Ritual and Mourning Costume Controversies of Daneubin-Focused on Daneubin-Sangjang-Deungr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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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역사학

초록

『端懿嬪喪葬謄錄』을 중심으로 단의빈 상장례의 절차와 복제논의 과정을 검토하였다. 단의빈은 경종의 세자 시절 사망하였으므로 먼저 난 소내상에 해당되는 만큼 前例가 드물었고, 상장례 세부절차나 복제결정과 관련하여 복잡한 논의가 진행되었다. 『단의빈상장등록』은 왕실의 상장례 전반을 관리하는 예조에서 편집하여 보관하던 기록으로, 상장례 진행절차를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단의빈 상장례는 소현세자상인 을유등록과 인현왕후상인 신사등록을 참고하여 진행되었다. 상장례 절차는 정해진 시간 안에 진행되어야 하는 동시에 다양한 변수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복잡한 양상을 띠었다. 前例를 고찰하는 데도 시간상의 여유가 없었으므로 오류가 많았고, 결정을 번복하여 다시 논의하는 과정이 반복적으로 발생하였다. 특히 단의빈 복제 문제는 古禮와 國制의 嫡婦服이 期年과 大功으로 차이가 있었으므로 지속적으로 논란이 되었다. 왕은 복제 결정을 위해 여러 차례 내외 대신들의 收議를 거쳐 의견을 수렴하였다. 먼저 대공으로 결정되었지만, 인경왕후 사례를 참고해야 한다는 점에서 기년으로 변경되었다. 그 과정에서 복제절목의 개정과 이미 만들어진 대공복을 埋安하는 절차들이 잇달아 진행되었다. 세자의 복제는 고례와 국제에 따라 不杖朞로 결정되었지만, 아버지가 살아계신 경우의 妻喪이라는 점에서 壓屈의 의미가 강조되었다. 단의빈의 복제가 대공복에서 기년복으로 변경되는 과정은 易月制로 시행되는 공제 절차에도 중요하게 작용하였다. 공제일이 바뀌면서 행차에 필요한 복색이 다시 지정되어야 했다. 한편, 공제와 단상을 구분해야한다는 주장이 반영되면서 ‘최복을 벗는 절차’를 삭제한 공제절목이 새로 지정되었다. 단의빈상을 계기로 공제는 短喪이 아닌 국가 업무를 시작하는 개념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Abstract

In this article, we investigate the process of debate about mourning costume and funeral process of Daneubin(端懿嬪) focused on Daneubin-Sangjang-Deungrok. Because Daneubin died when king kyungjong was just a prince, it was funeral for The Crown Princess in advance. There were almost no previous examples about this kind of funeral, so there were many discussions about details and process of funeral. Daneubin-Sangjang-Deungrok is written archive of the records which was written and stored by the ceremonies board(禮曹). The ceremonies board was responsible for royal funeral and ritual ceremony, so their need and characteristic were reflected in the book. Every single process should be approved by the king, so there were many legal documents were created. The Mourning Costume Controversies of Daneubin was always be questioned because there were difference of the mouring costumes between the eldest son's wife and the second son's wife. The king opened discussions about this costume problem and gathered the opinions of the lieges. This debate have closely related to the process of Removal of mouring for official affairs.(公除) As the opinion of differnting between of mouring for official affairs and short-term mour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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