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기 昭顯世子 喪禮의 성격과 의미
The Character and Significance of The Funeral Ritual of Crown Prince Sohyeon in 17th Cent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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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소현세자가 왕위계승에서 배제되었다는 역사적 결말은 그의 죽음과 상례 역시 비정상적이었다는 인식을 남겼다. 그러나 인조의 정치적인 목적과는 별개로 유교국가인 조선에서 소현세자의 상례는 그의 혈연적․신분적 지위에 따라 진행되었다. 18세기 세자 상례의 정형을 기준으로, 소현세자 상례의 미비점을 ‘의도적인 소략함’으로 인식하는 것은 합리적인 접근방법이 아니다. 소현세자상은 조선시대 세자 상례의 특성과 역사적 전개 속에서 재검토되어야 한다. 임진왜란 이후 최초의 세자상으로서, 참고할 典籍이 부족한 상황에서 의례를 재정비해가는 과정으로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세자의 상례 절차는 『국조오례의』에 나오지 않으므로 실록의 전례를 참고하였지만, 불충분하거나 모순되는 문제들이 많았다. 소현세자 상례는 왕례에서 강쇄하고 사대부례 보다는 격을 높이는 원칙에 따라 매우 창의적으로 재구성되었다. 이에 소현세자상을 계기로 빈궁․예장․묘소 3도감이 세자와 세자빈 상례의 도감으로 정례화되었다. 또한 세자의 신주는 사대부와 동일한 형태였지만, 왕의 우주․연주와 같은 浴主절차를 통해 차등을 두었다. 이렇게 왕례와 사대부례의 중간으로 세자례를 규정함으로써, 조선후기 세자 상례의 기본틀을 마련하였다. 소현세자의 상복 논쟁은 왕과 왕비가 입는 장자복과 백관들이 입는 세자복으로 구분해 볼 수 있다. 喪期의 결정뿐만 아니라 실제 상복의 형식과 절차에서 短喪과 公除의 적용을 둘러싼 논쟁이 진행되었다. 왕의 장자복은 조선왕실의 기년복 방식인 30일 단상으로 이루어졌고, 백관의 세자복은 자최기년과 의경세자상과의 절충안으로서 공제를 적용한 자최삼월로 결정되었다. 왕조례는 그 보수적인 속성으로 인해, 수많은 논쟁을 거쳐도 결국은 조종전례를 따른다는 명분으로 기존의 관행대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지만, 소현세자 상복 논쟁에서 왕의 단상제를 비판하고 백관의 단상제를 폐지한 것은 18세기 왕실의 상복제 정비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Abstract
The death and the funeral ritual of crown prince sohyeon were regarded as exceptional according to the historic conclusion. But the funeral ritual of crown prince sohyeon were proceeded as his kinship and status in confucianism choson regardless of king injo’s political intention. His funeral was the first funeral ritual of crown prince after Imjin War, so it was significant process to reform the ritual in a situation lacking reference. They should refer sillok because the funeral ritual of crown prince was not recorded in the Five Ritual Codes of Dynasty, but cases of sillok were insufficient and contradictory. So the funeral ritual of crown prince sohyeon should be restructured on principle to downgrade king’s ritual and upgrade nobility’s ritual creatively. Bingung Dogam, Yejang Dogam and Myoso Dogam were set Beginning in funeral of crown prince sohyeon. His mortuary tablet was same as nobility’s, but was different because of yokju bathing tablet like king’s uju and yoenju. The controversy about the funerary rituals of crown prince sohyeon was divided into king’s mouring costume and official’s mouring costume. Short term mourning system and mouring for official affairs were significant points of controversy. King put on mouring in short term 30days as 1year mouring costume of royal family in choson and official put on mouring in 3months mouring costume with mouring for official affairs. The funerary rituals of royal family was very conservative, nevertheless imprtant changes were in prog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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