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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이후 명군철수 협상에 대한 고찰

On the Negotiations for Ming Army’s Withdrawal from Chosun after the Imjin W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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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정치외교학

초록

이 글은 임진왜란 종료 이후 명군철수 협상에 관한 것이다. 철군 문제는 매우 복잡한 사안이었다. 왜적의 재침 여부의 불확실성과 함께 보다 중요하게는 조-명간 그리고 명군 지휘부와 북경의 조정 사이에 분명한 시각차가 존재했 다. 문제는 명군의 잔류 목적과 병력의 규모, 주둔군의 급량에 대한 분담과 관련되었다. 그렇지만 왜적의 퇴각과정에서 인질로 갔던 명군 50여명의 송환과 왜적의 강화요청 등 군사외적 요소들도 작용했다. 그 외에도 각국의 국내적 상황도 양측의 입장에 변화를 수반했다. 이 글은 세 가지 측면에 주목했다. 첫째, 구체적인 철군논의의 역사적 전개 과정이다. 둘째, 협상을 둘러싼 조명 양국간 소통경로와 방식이다. 셋째, 철군 논의에서 조선에 대한 직접통치 문제이다. 결론적으로 철군논의에서 원활한 소통이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것은 조선과 명 조정이 직접 논의하지 않고, 명군 지휘부를 매개로 했기 때문이다. 거기에 명 조정 내부의 의견불일치는 상황을 악화시켰다. 한편 직접통치 문제는 논의과정에서 제기되지 않았다. 조선이 명에 우호적인 한에서는 그렇게 할 이유가 없었고, 명은 국내외적 불안정성으로 인해 여력도 없었다.

Abstract

This paper examines the negotiations between Chosun and China on stationing(or withdrawing) of the Ming army in(from) Korea after the Imjin War. The paper focuses on three aspects of the negotiations. Firstly, it tries to follow the sequential progress of the negotiations. Secondly, it tries to understand the routes and methods of communication between both countries reflected in them. Thirdly, it examines whether there was any desire or idea to take over Chosun on the side of Ming during the entire period of negotiations. One of my tentative conclusions is that the communications did not proceed harmoniously, because they did not happen directly between the two governments, but mostly meditated by the headquarters of the Ming army in Chosun. The discord within the Ming court also worsened the situation. The question of direct ruling by Ming was not raised during the negotiations. As far as Chosun remained as her faithful ally, Ming did not have any reason for that. Furthermore Ming herself had to combat various domestic and foreign threa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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