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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재 신채호의 문학과 무정부공산주의

丹齐申采浩的文学和无政府共产主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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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기타인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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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에서는 무정부공산주의라는 단재의 사상이 그의 문학관과 소설에어떻게 반영되어 있는지를 살펴보기로 한다. 단재 사상의 종착점이었던‘무정부공산주의’는 ‘무정부주의’의 국가 폐지 주장과 ‘공산주의’의 생산수단과 사회적 생산물의 공유 주장을 종합한 사상으로 볼 수 있으며, 이를그냥 ‘무정부주의’라 칭하는 것은 개념상의 오해나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 단재의 무정부공산주의 수용은 중국 무정부공산주의자들과의 교류를통하여 이루어졌다. 신민회 회원이었던 단재는 1910년 국권을 잃기 직전다른 회원들과 함께 중국으로 망명했다. 1913년 샹하이에서 머무는 동안단재는 류쉬푸의 논설을 탐독하였으며, 그것을 통하여 크로포트킨의 상호부조론을 이해하였다. 3・1운동 이후 단재는 무정부공산주의를 수용한다. 무정부공산주의를 수용한 이후 그는 모든 인민이 자유를 누리는 사회를건설하는 것이 시대의 흐름임을 강조하면서 강한 국가에 대한 염원을 버릴 것을 역설하였다. 「낭객의 신년만필」은 단재가 1925년 1월 2일 『동아일보』에 발표한 글로서, 무정부공산주의 사상을 토대로 한 그의 문학관이 잘 드러나 있는 글이다. 그는 『민중』에 발표된 어떤 문사의 글을 비판하며,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에 입각하여 일본 프롤레타리아와 연합할 것을 주장한 공산주의자들의 주장에 반대하였다. 그는 일본 무산계급은 일본 제국주의의 선봉일 뿐이라고 주장하였다. 지금까지는 단재가 언급했던 중국 잡지 『민중』에 관한 검토가 이루어지지 못했다. 필자가 단재가 언급했던 『민중』이라는 잡지를 추적하여 본 결과, 「낭객의 신년만필」 발표 전후에 출간된 『민중』이라는 잡지로는 두 종류가 확인된다. 하나는 민중사에서 출판했던 반월간지이며, 다른 하나는『민중주간』이다. 또 다른 가능성은 『동아일보』 편집자가 『민종(民鍾)』을『민중』으로 잘못 적은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단재가 언급한 『민중』이무엇이었는지에 관하여서는 아직 확언할 수 없다. 이에 관하여서는 보다많은 자료 조사를 바탕으로 한 연구가 필요하다. 단재는 신청년이 “정치적 경제적 현실의 고통에서 도탈하여 신시 신소설의 피난생애로 일생을 맞추려는 신청년의 심리가 참말 애석할만하다”고말하며 “크로포트킨의 「청년에게 고하노라」란 논문의 세례를 맞”을 것을권한다. 이를 통해 단재가 크로포트킨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을 뿐만아니라, 조선의 신청년들이 무정부공산주의의 세례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용과 용의 대격전」(1928)은 단재 소설의 최후작으로, 단재의 무정부공산주의 사상을 소설이라는 형식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테러’를 통하여 모든 지배질서를 철저히 파괴하고, 과거의 사회제도를 일체 부인하고, 지상의 만물은 민중의 공유임을 선언하는 것, 이것이 단재의 무정부공산주의가 꿈꾸는 혁명이었다. 하지만 쌍둥이 용으로 태어나도 동양으로 오면 어용이 되고 서양으로 가면 반역자 또는 혁명가가 된다는 해석은 오리엔탈리즘의 혐의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단재 문학을 깊이 있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후기 사상이었던 ‘무정부공산주의’에 관한 이해가 필요하다. 그의 무정부공산주의 사상은 그의문학관과 소설에 충실히 반영되어 있다. 그러나 단재 문학을 무정부공산주의를 통해서만 해석하려는 오류를 범해서도 안 된다. 무정부공산주의는단재가 복잡다단한 사상 역정의 종착점으로 택한 사상일 뿐이다. 단재의문학을 고찰할 때에는 반드시 그의 복잡다단한 사상 역정이 함께 고려되어야만한다.

Abstract

本文是针对丹齐申采浩的无政府共产主义思想在他的文化观和小说方面是如何体现的进行了考察。 丹齐的人生后期的思想, 即‘无政府共产主义’是对‘无政府主义’的国家废止论和‘共产主义’的生产手段和社会生产物品的共有的这两种主张的综合性思想。 对他的思想简单的称为‘无政府主义’的说法, 在概念上容易引起误解和混乱。丹齐的无政府共产主义的接收主要是通过和中国的无政府共产主义者的交流而实现的。 曾经是新民会盟员的丹齐在1910年国权丧失之前和其他盟员一起结伴亡命中国。 1913年他在上海停留期间拜读了刘师复的论说, 了解了克鲁泡特金的相互补助论。 3・1运动之后, 丹齐接受了无政府共产主义思想。 在接受无政府共产主义思想之后, 他一边强调要建设一个所有的人民都能获得自由的社会, 一边强调要抛弃对建立强大国家的夙愿。「浪客的新年漫笔」是丹齐发表在1925年1月2日『东亚日报』上的一篇文章。这篇文章是展现了他的以无政府共产主义思想为基础的文化观。 他针对『民众』某文士写的文章进行了批判。 他批判共产主义者所谓的从工人阶级国际主义出发的联合日本工人阶级的主张。 他主张日本无产阶级只不过是日本帝国主义的先锋而已。到目前为止, 丹齐所提到的中国杂志民众有关的讨论还没有涉及到过。 笔者对『民众』杂志进行调查的结果是: 「浪客的新年漫笔」发表前后出刊的『民众』有两种。一个是民众社出版的半月刊杂志, 一个是『民众周刊』。 还有一个可能是『东亚日报』的编辑者有可能把民钟错写为民众(韩语的两个词写法很相似)。 丹齐所涉及的『民众』到底是哪一个还不能断言。 这还需要通过大量资料考证研究。丹齐对新青年“从政治经济现实的痛苦中逃脱, 沉浸于新诗新小说的避难人生的新青年的这种心理很感惋惜”, 劝告他们“接受克鲁泡特金的「告青年」的洗礼”。从这里我们可以看出丹齐不仅从克鲁泡特金受到了很大的影响, 而且希望朝鲜的新青年们接受无政府共产主义的洗礼. 「龙和龙的大决战」(1928)作为丹齐小说的最后作品, 是体现了丹齐的无政府共产主义思想的小说。通过‘恐怖活动’彻底破坏所有统治秩序, 否认过去的社会制度, 宣言地上的万物的都是人民所有等这些思想是丹齐的无政府共产主义所梦想的革命。 但是作为孪生的龙兄龙弟一出生, 一个来到东方成为御龙, 一个去了西方却成为谋反者或者革命者的看法有orientalism的嫌疑。为了更深刻地了解丹齐的文学, 有必要了解他的后期思想‘无政府共产主义’, 他的无政府共产主义思想在他的文学观和小说中得到充分的反应。 但是丹齐的文学只通过无政府共产主义去解析的话是不行的。 无政府共产主义只是丹齐复杂思想历程中的人生终点站所选择的思想。 在研究丹齐的文学时, 一定要一起考虑到他的前期和后期众多复杂多端的思想。

참고문헌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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