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초 ‘間島’ 지역에 거주한 朝鮮人에 대한 戶口調査와 그 의미
The Significance of the Census of Korean Inhabitants in “Gando” in the Early 20th Century
0
조회
0
다운로드
14
인용
0
참고문헌
키워드
초록
19세기 후반, 東北 지역(압록강과 두만강 이북의 ‘間島’ 지역)에 대한 淸 정부의 ‘封禁’정책과 朝鮮 정부의 ‘越江禁止’정책이 폐지되자 이 지역으로의 조선인과 청국인의 이주・정착이 가능해졌다. 특히 이 지역은 조선인들에게 ‘기회의 땅’ 또는 ‘신천지’로 인식되었기에 그 이주・정착이 대규모로 진행되었다. 간도 지역에 조선인과 청국인의 정착이 확대되면서 양국인들 간의 이해가 相衝되었고, 이에 양국 정부는 그때그때의 사안에 따라 합의 또는 분쟁으로 결과를 산출하였다. 그렇지만 간도 지역에 거주한 조선인과 청국인들은 대체로 ‘和而不同’으로 공생공존하고 있었다. 따라서 1909년 9월 청․일 양국 정부 간에 ‘間島協約’을 체결하여 영유권을 청국으로 귀속시키기 이전까지 간도 지역은 조선국과 청국의 境界가 만나는 接點이었으며, 緩衝地帶였다. 조선정부는 간도 지역에 거주하는 조선인들의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19세기 말부터 官吏를 파견하였다. 파견된 관리는 가장 먼저 조선인들에 대한 戶口調査를 실시하였는데, 이는 간도 지역에 거주하는 자국민을 관리・보호하기 위함이었다. 이때의 호구조사 취지 및 방칙은 1896년(建陽 원년) 9월 1일에 반포한 「戶口調査規則」(勅令 제61호)과, 이틀 뒤인 9월 3일에 반포한 「戶口調査細則」(內部令 제8호)에 遵用하였다. 이 새로운 戶籍制度의 가장 큰 특징은 호구조사를 통하여 모든 인민에게 국가가 보호하는 이익을 均霑케 하겠다고 표방한 점이었다. 이는 조선 정부가 호적제도를 ‘근대’적 인식으로 운영하겠다는 宣言이었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까지 간도 지역에 거주한 조선인들의 호구실태를 조선 정부가 주체적으로 조사하여 호적을 작성한 후, 이를 중앙에서 보관했다는 사실은 해당 지역에 대한 나름대로의 ‘統治權’ 행사였음을 말해준다. 현재 1902~1903년에 작성 호적자료 17책을 비롯하여 19세기 말~20세기 초에 작성한 土地・人口 관련 간도 지역의 자료들이 국내에 소장되어 있는 점, 더군다나 호적자료의 제명을 ‘邊界’호적이라 정한 점 등은 바로 한・중 간 ‘境界의 접점’으로 기능하였던 간도 지역의 역사성을 대변해 주고 있다.
Abstract
In the late 19th century, migration to Dongbei area, namely, Gando, the northernarea of Yalu River and Tumen River, became a possibility for Korean and Chinesepeople, after their governments abolished “No crossing the river” policy “Noadmittance” one respectively. Specially, Korean people had migrated and settledthere in a large way because they considered it as “the land of opportunity” or“new world.”As the number of immigrants from two countries in Gando, there were conflictsof interest between them, which resulted in agreement or dispute between twogovernments. Nonetheless, in general, they had a symbiotic relationship: they “gotalong but did not assimilate themselves.” Thus it was not until the Gando Agreement,in September 1919, vested Gando in China, that Gando had been a contact pointand a buffer zone between Korea and China. In Korea, some government officials had been assigned to Gando in order tosurvey the conditions of those who lived there since the late 19th century. Thefirst thing they did there was to take a census, which was to manage and protecttheir nationals. This census was performed according to Regulations of Census (Edict No. 61),September 1, 1896, and Detailed Rules for Census (Home Affairs Department OrderNo. 8), September 3 of the same year. The best feature of this new family registersystem was the mention that all people could share state-protected benefits by census, which means Korean government would work on the system with “modern”idea. To conclude, Korean government exercised its own sovereignty in Gando in thelate 19th and the early 20th century by surveying the conditions of Korean immigrants,filling out their family register forms, and storing them in the capital city. Today, in Korea, there are no small materials, written in the late 19th centuryand the early 20th century, concerning land and population in Gando includingseventeen books of family register in 1902~1903—its title is Family Register ofBorder Land. These materials tell that Gando was a contact point of border betweenKorea and China.
참고문헌 (51)
- "平安北道楚山江北戶籍成冊 제1책~제6책"
- "光武六年壬寅十二月 日 邊界戶籍案 제1책~제3책"
- "光武七年癸卯正月 日 邊界戶籍成冊 제1책~제3책"
- "光武七年六月 日 邊界戶籍成冊(天) 제1책~제5책"
- "茂山郡各社對岸間島居民戶數墾土結數成冊", ~
- "會寧郡對岸古間島田結摠數成冊", ~
- "咸鏡北道鐘城郡對岸古間島田今春入種民名成冊", ~
- "穩城郡越便島居民地方達近田野墾闢査檢繕冊", ~
- "慶源郡越便居韓民戶摠人口及田結地方檢査成冊",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
- 제주대학교 탐라문화연구소, "濟州大靜縣下摹瑟里戶籍中草(Ⅳ)" (2000), 제주대학교탐라문화연구소
- "戶口調査規則", 勅令, (61) (1896)
- "戶口調査細則", 內部令, (8) (1896)
- "經國大典 권2 戶典", 戶籍條
- "肅宗實錄 권4, In 五家統事目"
- "高宗實錄 권43" (1903)
- "增補文獻備考", 輿地考, 24 (1908), 西間島疆界條
- 崔宗範, "江北日記, In 간도개척비사-강북일기-" (2004), 신성출판사
- "外各府郡公牒摘要"[URL]
- 金魯奎, "北輿要選 하편, In 察界公文攷" (1904),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 李相龍, "石洲遺稿" (1973), 고려대학교출판부
- 尹政熙, "間島開拓史, In 한국학연구 별집3" (1991), 인하대학교 한국학연구소
- 吳祿貞, "延吉邊務報告, 제4장, In 韓民起墾之始末"
- "西間島ニ於ケル不逞鮮人團體ノ狀況" (1920), 朝鮮總督府警務局
- 日本外務省亞細亞局, "在滿朝鮮人槪況" (1933)
- 牛丸潤亮, "最近間島事情: 附露支移住鮮人發達史" (1927), 朝鮮及朝鮮人社
- 仲摩照久, "地理風俗(滿洲篇)" (1930), 新光社
- 玄圭煥, "韓國流移民史(상권)" (1967), 어문각
- 국사편찬위원회, "한민족독립운동사(2권) : 국권수호운동 2" (1987), 국사편찬위원회
- 梁泰鎭, "韓國國境史硏究" (1992), 법경출판사
- 崔弘基, "韓國戶籍制度史 硏究" (1997), 서울대학교출판부
- 梁泰鎭, "近世韓國境域論考" (1999), 경인문화사
- 백산학회, "中國內 朝鮮人의 生活像 論攷" (2000), 백산자료원
- 윤병석, "간도역사의 연구" (2003), 국학자료원
- 주성화, "중국 조선인 이주사" (2007), 한국학술정보(주)
- 金春善, "中國朝鮮族通史(上)" (2009), 延邊人民出版社
- 인하대학교 한국학연구소, "범월과 이산 : 만주로 건너간 조선인들" (2010), 인하대학교 출판부
- 趙中孚, "近代東三省移民問題之硏究", 中央硏究院近代史硏究所集刊, 4 (1974), 臺灣
- 趙一權, "구한말 간도지방 주민에 관한 일 연구 : 1902년도 변계호적의 분석", 석사, 역사교육, pp.1994
- 全海宗, "延邊 韓族의 定着過程과 初期 韓人社會", 東亞硏究, 28 (1994), 서강대학교 동아연구소
- 金春善, "北間島地域 韓人社會의 형성과 土地所有權 문제", 全州史學, 6 (1998), 전주사학회
- 金春善, "1880~1890년대 청조의 ‘移民實邊’ 정책과 한인이주민 실태 연구", 한국근현대사연구, 8 (1998), 한국근현대사연구회
- 朴宣泠, "間島問題의 時代性: 時代的 含意를 중심으로", 歷史敎育論集, 35 (2005), 역사교육학회
- 하원호, "개화기 조선의 간도인식과 정책의 변화", 동북아역사논총, 14 (2006), 동북아역사재단
- 은정태, "대한제국기 ‘간도문제’의 추이와 ‘식민화’", 역사문제연구, 17 (2007), 역사비평사
- 윤병석, "한인(조선인)의 간도 이주 개척과 간도개척사", 백산학보, (79), pp.303~328 (2007), 백산학회
- 임학성, "20세기 초 西間島 거주 朝鮮人의 거주 양태-‘邊界戶籍’ 자료의 분석 사례-", 한국학연구, (21), pp.33~69 (2009), 한국학연구소
- 고승희, "1880년대 조・청 감계 협상과 국경 문제 인식, In 근대 변경의 형성과 변경민의 삶" (2009), 동북아역사재단
- 은정태, "대한제국기 간도 정책 추진의 조건과 내・외부의 갈등"
- 아키츠키 노조미, "화이질서에서의 경계지대와 국제법적 ‘국경’"
- 김태국, "중국 한인의 역사" (2011), 국사편찬위원회
- 야마우치타미히로, "건양・광무기 僧籍과 屠漢籍의 성격", 한국학연구, (29), pp.671~704 (2013), 한국학연구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