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기 중국 이해와 루쉰 수용 연구
The study of the Understanding of China and The Acception of Lu Xun in Cold w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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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본 연구는 한국에서의 중국 이해와 루쉰 수용의 변화를 다룬다. 시기는 해방 전후부터 1970년대까지이다. 해방 전후 ‘혁명 좌파 루쉰’과 ‘계몽 비평가 루쉰’의 이미지가 동시에 등장하지만, 냉전 체제의 형성과 함께 ‘혁명 좌파 루쉰’은 공적 담론 체계에서 그 영향력을 상실하게 된다. 한국 전쟁 이후 ‘중공(中共)’은 가장 위협적인 적대국가의 하나로 이해되는데, 루쉰은 ‘중공’의 혁명을 상징하는 인물로 규정되었기 때문이다. 이 시기 ‘중공’은 억압적 전제 국가로 표상되는 동시에, 정상적인 근대화 경로에서 이탈한 체제로 이해되었다. 그리고 계몽-비평가 루쉰은 이탈한 ‘중공’ 체제에 대한 비판자원으로 활용된다. 그리고 이때 ‘중공’이 아니라 ‘자유중국’의 사상자원으로 받아들여졌다. ‘중공’의 대척점에 선 ‘자유중국’은 자유세계의 최선봉으로 중국의 정통성을 계승하고 있으며, 한국이 따라야 할 근대화의 표본으로 그려진다. 그리고 사상의 자유와 억압에 맞서 싸운 루쉰은 자유세계의 일원인 ‘자유중국’의 사상자원으로 수용되었다. 그러나 1960년대 중반 냉전 체제의 변동 속에서 ‘두 개의 중국론’처럼 현실 사회주의 국가 ‘중공’을 받아들이려는 흐름이 등장한다. 이와 함께 루쉰을 좌파 혹은 우파로 구분하는 대신, 중국의 자유주의적 조류와 사회주의적 조류가 합류하고 분기하는 지점에서 이해하려는 흐름이 형성된다. 특히 1970년대 미국과 ‘중공’의 화해 속에서 ‘중공’에 대한 새로운 이해의 필요성이 등장하고, 이 속에서 루쉰을 사회주의 중국 혁명과의 연관성 속에서 파악하려는 경향이 나타난다. 즉 새로운 중국에 대한 이해의 필요성과 함께 은폐되었던 좌파 혁명가 루쉰이 신문, 잡지 등 대중 매체에 재형상되기 시작한 것이다.
Abstract
This study is to inquire changes of the acception of Lu Xun(魯迅) and the understanding of china in south korea during the Cold War, especiaaly from 1945 to 1970s. After liberation, the two figures of Lu Xun have emerged, the one is ‘revolutionary leftist-Lu Xun’, the other is ‘enlightening critic-Lu Xun’. But ‘revolutionary leftist Lu Xun’ with the formation of the cold war had lost its influence in the public discourse. Because ‘Communist China(中共)’ was understood the one of the most threatening hostile countries, and Lu Xun was defined as a symbol of the Chinese Revolution by Mao . ‘Communist China’ had been representated in the repressive dictatorship and the withdrawal of normal modernization path in south korea. Interestingly ‘enlightening critic Lu Xun’ had been used as a criticism resources about the ‘Communist China’, and accepted as a thought resources of the ‘Free China(自由中國)’ not ‘Communist China’. ‘Free China’ as the most vanguard of the free world, which located in the antipodal point of ‘Communist China’, had been represented the inheritor of the legitimacy of China and the example of modernation which the south korea should follow. And Lu Xun who fought for a freedom of thought had been admitted as thought resources of a member of the free world ‘Free China’. However, the flow to accept ‘Communist China’ as the real socialist state had appeared in the variation of the Cold War in the mid-1960s. Instead of dividing the left Lu Xun or right Lu Xun, it appeared to flow to try to read ‘Lu xun’ at the point where China’s liberal tide and socialist tide join and branch. Particularly, a detent between the United States and ‘Communist China’ have give a rise to a need for a new understanding of the ‘Communist China’ in south korea in the early 1970s. In the mid of changes, it appeared to try to understand the Lu Xun in this in the context of the ‘Communist China revolution’. In other words, with the new need of China’s understanding the hidden ‘revolutionary leftist-Lu Xun’ began to re-shape the mass media such as newspapers, magazin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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