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KERD
논문KCI 등재

1899년 평양개시 이후 평양성 외성 공간의 재편 과정

P’yǒngyang after the Opening of the City in 1899

0

조회

0

다운로드

11

인용

0

참고문헌

키워드

주제분류기타인문학

초록

본 논문은 1899년 평양개시 이후 평양성 일대, 특히 평양성 내 외성 공간의 재편 과정을 추적한 것이다. 평양개시는 외국인의 거주 자체가 금지되었던 ‘내지’를 외국인의 거주 및 무역이 가능한 ‘개시장’으로 개방하는 것을 의미했기 때문에, 개시와 함께 개시구역을 어디에 어느 범위로 설정할 것인가라는 공간 분할의 과제를 남겼다. 한국정부는 평양성 주변 5리까지를 모두 궁내부 기지로 설정함으로써 그 경계 밖에 개시구역이 설정되도록 유도했으나, 일본을 비롯한 각국대표는 평양성 내 개시구역 설정안을 가지고 그에 맞섰다. 결국 양측이 오래도록 합의를 보지 못하고 있는 상황 속에서 각국대표는 일방적으로 평양성 전체를 개시장으로 간주한다는 선언을 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이후에도 평양성의 내성이나 중성에 비해 상대적으로 전토의 비율이 높고 광대한 폭원을 자랑하던 외성 공간을 둘러싸고, 상이한 공간 재편의 기획들이 시도되고 또 서로 충돌하였다. 대한제국은 “箕聖 천년의 고도”인 평양에 西京을 설치하고 외성 내에 대한제국 황실의 행궁인 풍경궁을 건설하였다. 다른 한편 일본은 외성 한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경의철도를 부설하고 나아가 외성 일대 전체를 군용지로 수용하여 영구병영을 건설하였다. 양자는 각기 대한제국의 ‘중흥’과 일본의 ‘대륙 진출’이라는 서로 다른 목표에 기반하고 있었는데, 후자가 내세운 ‘군용’의 논리는 전자의 공간 기획을 무력화하면서 외성 공간 전체를 식민지적 공간으로 재편해 갔다.

Abstract

This article examines the process of spatial organization within the outer-walls of P’yǒngyang City. The opening of the city was intended to open up the ‘interior’ where foreigners were not allowed to reside as an ‘open city,’ which introduced the problem of space division as to what extent foreigners should be allowed to reside. The Korean Government was induced to establish an area of ‘open city’ outside the boundary of the Imperial Household Ministry’s lands, which was drawn at a distance of two kilometers around P’yǒngyang, but the foreign diplomatic representatives in Korea countered with a plan to set up the area within P’yǒngyang. After a stalemate between the two sides and their respective plans, the foreign diplomatic representatives unilaterally declared that the whole city of P’yǒngyang would be regarded as an ‘open city.’ However, two different plans of spatial organization for the outer-walls of P’yǒngyang were respectively made by Korean and subsequently by Japan. The Korean Government designated P’yǒngyang as the western capital and built an Imperial Palace named ‘P’unggyǒnggung’ within the outer-walls, whereas the Japanese Army laid the Seoul-Ǔiju Railway across the middle of the outer-walls, and promoted the construction of permanent barracks by requisitioning the whole lands of the outer-walls for the military. The former’s goal was the restoration of the Korean Empire, whereas the latter’s was the expansion of the Japanese Empire. Eventually, the space of the outer-walls was destructively reorganized for the Japanese military, which emasculated the plan for the Korean Empire.

참고문헌 (31)

  1. "駐韓日本公使館記錄", ~
  2. "舊韓國外交文書", ~
  3. "宮內府案", 서울대학교규장각한국학연구원소장, 奎17801, ~
  4. "平安南北道來去案", 서울대학교규장각한국학연구원소장, 奎 17988, ~
  5. "平安南北道去來文", 서울대학교규장각한국학연구원소장, 奎 18019, ~
  6. "奏本", 서울대학교규장각한국학연구원소장, 奎17703, ~
  7. "京義鐵道敷設一件", 일본외무성외교사료관소장, 1문7류3항35호, ~
  8. 김대호, "淸日戰爭 後 朝鮮의 平安道 通商開放과 外勢의 干涉", 석사, 사회교육과 역사전공, pp.2012
  9. 김소영, "순종황제의 南・西巡幸과 忠君愛國論", 韓國史學報, (39), pp.159~193 (2010), 고려사학회
  10. 김윤정, "평양 풍경궁의 영건과 전용에 관한 연구", 석사, 건축공학, pp.2007
  11. 김윤정, "궁궐의 눈물 백년의 침묵" (2009), 효형출판
  12. 다카시 후지타니, "화려한 군주-근대일본의 권력과 국가의례-" (2003), 이산
  13. 민덕식, "高句麗 平壤城의 都市形態와 設計", 고구려발해연구, 15, pp.5~ (2003), 고구려발해학회
  14. 민영환, "해천추범-1896년 민영환의 세계일주-" (2007), 책과함께
  15. 박광용, "箕子朝鮮에 대한 認識의 변천-高麗부터 韓末까지의 史書를 중심으로-", 韓國史論, 6 (1980)
  16. 박정애, "18-19세기 箕城圖 屛風연구", 고문화, (74), pp.5~41 (2009), 한국대학박물관협회
  17. 박준형, "1890년대 후반 한국 언론의 ‘자주독립’과 韓淸關係의 재정립", 韓國史論, 54 (2008)
  18. 박준형, "개항기 平壤의 개시과정과 開市場의 공간적 성격", 한국문화, (64), pp.77~118 (2013), 규장각한국학연구원
  19. 송지연, "러일전쟁이후 일제의 軍用地 收用과 한국민의 저항-서울(용산), 평양, 의주를 중심으로-", 梨大史苑, 30 (1997)
  20. 신명호, "光武․明治시기 兩京체제 추진과 君主이미지 활용 비교연구", 동북아 문화연구, 1(23), pp.5~26 (2010), 동북아시아문화학회
  21. 장문석, "만들어진 전통" (2004), 휴머니스트
  22. 여호규, "평양일대 고구려유적" (2005), 고구려연구재단
  23. 오수창, "조선의 정치와 사회" (2002), 집문당
  24. 月脚達彦, "朝鮮開化思想とナショナリ我ム-近代朝鮮の形成-" (2009), 東京大學出版會
  25. 임종국, "日本軍의 朝鮮侵略史Ⅰ․Ⅱ" (1988), 일월서각
  26. 장필구, "풍경궁과 화성행궁의 자혜의원 전용에 관한 연구", 대한건축학회논문집 계획계, 28(12), pp.239~246 (2012), 대한건축학회
  27. 전우용, "1902년 皇帝御極 40년 望六旬 稱慶禮式과 皇都 정비 - 대한제국의 ‘皇都’ 구상에 담긴 만국공법적 제국과 동양적 제국의 이중 表象 -", 서울과 역사, (81), pp.119~160 (2012), 서울역사편찬원[DOI]
  28. 정재정, "일제침략과 한국철도" (1999), 서울대학교출판부
  29. 정종현, "한국 근대소설과 ‘평양’이라는 로컬리티", 사이間SAI, (4) (2008)
  30. 平壤民團役所, "平壤發展史" (1914), 民友社
  31. 한일비교문화센터, "영인 <모던일본> 조선판 1939년" (2007), 어문학사

관련 논문AI추천

이 간행물의 다른 논문 (14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