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의 ‘侯國’ 외교-15세기 대일외교를 중심으로-
Diplomacy of Joseon Dynasty Performed as a Vassal State: Focusing on 15th-Century Relations with Ja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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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선행 연구에서 이미 지적한 바와 같이, 15세기 조선은 명과 책봉조공 관계를 맺고 명나라의侯國임을 자처하면서, 자국의 국가 체제를 후국의 입장에 걸맞은 체제(후국적 국가 체제)로 구축해 나갔다. 그렇다면 이러한 후국적 입장은 조선의 대일 외교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본고는 이 문제에 대해 고찰하고자 한다. 조선은 일본인 통교자에 대한 授職 정책을 시행할 때 官敎(辭令狀)에 명나라로부터 하사받은 ‘朝鮮國王之印’을 사용했으며, 授印 정책을 시행할 때에는 圖書라 칭하는 私印을 사용했다. 이러한 印(도장) 사용 방식에서 조선이 후국적 입장을 유지하면서 자국이 지향하는 왜구 대책과 대일 통교 관리를 추진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일본에서 건너오는 사절을 받아들이거나 무로마치 막부에 사절(通信使ㆍ回禮使)을파견하는 것은 ‘후국 私交의 금지’(후국이 종주국의 허가 없이 마음대로 외교를 하는 것이 ‘사교’ 로 금지된 것)에 저촉될 수 있었다. 따라서 조선은 자국의 대일 통교를 가능한 한 명나라에 숨기려 했다. 이는 조선이 후국적 입장을 포기한 것처럼 보일 수 있으나, 조선으로서는 후국의 외교이념인 ‘交隣’을 실천한 것에 불과하며 후국적 입장을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현실적인 명나라와의 관계를 고려하면 ‘후국 사교의 금지’에 대한 대처도 필요했다. 이에 조선은 명나라의 ‘東藩’으로서 왜구 대책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일본과 통교하고 있을 뿐이라고 주장함으로써 자국의 대일 통교를 정당화하려 했다. 한편 일본에 발급하는 외교 문서에 도서를 사용함으로써 명나라로부터 ’후국 사교의 금지’ 위반을 지적받을 경우에 대비했다. 이처럼 조선은 후국적 입장을 유지하면서도 결국 자국이 지향하는 대일 외교를 추진했으며, 후국적 입장은 조선의 대일 외교를 실질적으로 규제하는 것이 아니었다. 따라서 조선이 후국적입장을 중시했다는 점을 조선의 자율성ㆍ독립성 결여와 연결 짓는 것은 조선 외교의 내실을 무시한 단편적 이해라고 할 수밖에 없다.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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