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契丹의 二重國號에 관한 問題

The question of the dual national title of Khit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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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요대 국호에 관한 문제가 어떠한 연원을 지니고 있는가를 구명하고자 한다. 일반적으로 그들의 국호를 遼라고 통칭하였으나 실제로는 사료마다 차이가 있다. 남송의 葉隆禮는 거란의 역사를 『契丹國志』라고 일컬어 썼고, 원나라 史家는 정사를 『遼史』라고 칭하여 편수했는데 이는 저마다 근거하는 바가 달랐기 때문이다. 확실히 국호의 변경은 한 나라의 정치사에서 매우 중요한 사건인데도 불구하고 각종 사서에서 그 내용의 누락이 심해 쉽게 파악할 수가 없다. 하지만 한 나라의 국명을 제멋대로 부를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대거란과 대요로 구분해 사용한 것은 분명 국호의 변경에 따른 것으로 추정된다. 916년 요 태조 야율아보기가 건국할 때 요조의 통치구역은 장성 이북에 국한된 유목국가였기 때문에 국호를 부족명에 따라 “大契丹”이라고 불렀다. 그 후 938년 석진이 연운16주를 요조에 정식으로 할양했으므로 요 태종은 연운 16주에 새로운 국호인 “대요”를 만들어 일국이체제를 구축했다. 그러나 947년에 태종이 석진을 멸망시키고 汴京에서 진국을 대요로 개칭하였으므로 대요라는 연운16주의 국호를 중원까지 확장했으나 태종이 북으로 돌아온 후에 중원은 곧바로 주인이 바뀌어 이후 “大遼”의 국호는 단지 연운 16주에서만 사용되었다. 이와 동시에 장성 이북의 거란 본토는 여전히 대거란을 국호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이중국호를 사용했다. 그리고 거란의 전성기인 성종때 송의 침략을 물리침으로써 연운16주가 확고하게 거란의 영토임을 확인받은 후에 국호를 거란으로 통일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거란 본토는 1065까지 줄곧 거란이라는 국칭을 사용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후 한화된 도종이 함옹2년(1066)에 국호를 다시 대요로 바꾼 후 거란이 멸망할 때까지 그대로 사용했던 것이다. 이상과 같이 대거란과 대요로 구분해 사용한 것은 분명 국호의 변경에 따른 것으로 추정된다. 그동안 의견이 분분하였으나 사료의 내용을 전적으로 부정할 수 없는 일이고 석각자료 및 외교문서도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Abstract

要弄清有關遼代國號的問題有何淵源。一般將他們的國號統稱爲遼, 但實際上每種飼料都有差異。南宋的葉隆禮將契丹歷史稱爲《契丹國志》, 元朝史家將正史稱爲《遼史》進行編修, 這是因爲各自根據不同。確實, 國號的變更是一個國家政治史上非常重要的事件, 但由於各種史書中遺漏的內容嚴重, 所以很難輕易掌握。但是,由於不能隨意稱呼一個國家的國名,所以將國名分爲"大契丹"和"大遼"使用,這分明是國號的變更。 916年遼太祖野慄阿甫基建國時, 遼祖的統治區域是侷限於長城以北的遊牧國家, 因此根據部落名稱將國號稱爲"大契丹" 此後, 938年石晉將燕雲16州正式割讓給了遼朝, 因此遼太宗在燕雲16州建立了新的國號"大代", 構建了一國二體制。 但是947年太宗滅亡了石鎮, 在汴京將晉國更名爲大遼, 因此大堯這一燕雲16州的國號擴張到了中原, 但太宗回到北後,中原立即更換了主人, 之後"大遼"的國號只在燕雲16州使用。與此同時,長城以北的契丹本土仍然保留了大舉卵的國號,使用了雙重國號。在契丹的全盛期成宗時期, 通過擊退宋的侵略, 確認燕雲16州是契丹領土後, 將國號統一爲契丹。因此可以確認契丹本土直到1065爲止一直使用契丹的國稱。此後, 漢化道宗在鹹雍2年(1066年)將國號重新改爲大要後, 一直使用到契丹滅亡爲止。 據推測, 像上述一樣, 將大契丹和大遼分開使用, 顯然是隨着國號的變更。此前,雖然意見紛紛,但不能完全否定史料的內容, 石刻資料及外交文件也證明了這一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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