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KERD
논문KCI 등재

渤海國과 契丹(遼) 關係史의 硏究爭點과 向後 課題

A Study on the Topics of the Relationship between Balhae Kingdom and Khitan(Liao) and the Further Direction

0

조회

0

다운로드

5

인용

0

참고문헌

키워드

초록

渤海國(698-926)과 契丹族의 관계에 대한 연구에서 주목되는 주제는 첫째, 발해국과 거란족의 관계이다. 거란 太祖가 발해는 거란의 ‘대대로의 怨讐’라고 하였다. 이것에 대해 현재의 연구에 의하면, 발해와 거란은 일부 대립의 시기가 있었지만 대대로 원수 사이는 아니었다는 것이다. 둘째는 926년 발해가 멸망한 원인에 대한 것이다. 대체적으로 발해가 멸망의 원인이 발해의 내부에 있는지 아니면 외부에 있는 지로 구분된다. 셋째, 거란의 공격으로 발해국이 멸망한 후의 발해인, 즉 발해 遺民에 대한 연구이다. 契丹國(‘遼’라고도 함; 907-1125) 치하의 발해 遺民에 대한 연구는 크게 보아 발해 유민의 구성, 발해 유민의 생활, 거란 지배에 대한 저항, 즉 발해 부흥운동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발해 유민은 그들이 거주하는 곳과 상관없이 발해국의 후예라는 민족적, 역사적 인식을 공유하고 있었다. 향후 발해국과 거란의 관계에 대한 연구는 7세기 후반부터 12세기 초의 동아시아 국제정세 속에서 규명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거란족이 발해국을 멸망시키고, 발해 지역에 설립한 東丹國에 대해서도 보다 세밀한 해명이 필요하다.

Abstract

There are several topics taken notice in the study on the relationship between Balhae Kingdom (698-926) and Khitan. The first is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Balhae Kingdom and Khitan people. Khitan Taejo mentioned that Balhae Kingdom is a “vengeance of the all generations”. According to current research on this, Balhae and Khitan have had some periods of confrontation but they were not the enemies in the all generations. The second is about the cause of the destruction of Balhae in 926. In principle, the viewpoints of scholars are divided into whether the cause of fall of Balhae is internal or external. The third is the study on the remain people of Balhae, which means Balhae people after the fall of Balhae Kingdom by the attack of Khitan. The research on the Balhae remain people under the Khitan Kingdom(also called ‘Liao’; 907-1125) can be divided broadly into the study on the composition of the Balhae remain people, that on the life of the Balhae remain people, and that on the resistance against the control of Khitan, that is, the Balhae revival movement. The remain people of Balhae shared the same national and historical awareness that they were descendants of the Balhae Kingdom, regardless of where they resided. The study on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Balhae and Khitan in the future should clarify the relationship in the international situation of East Asia from the late 7th century to the early 12th century. It is also necessary to elucidate the Dongran Kingdom established in the former Balhae region by the Khitan after the destruction of Balhae Kingdom.

참고문헌 (59)

  1. 古畑 徹, "渤海史의 理解" (1990), 신서원
  2. 金毓黻, "김육불의 東北通史 下" (2007), 동북아역사재단
  3. 康鵬, "東丹國廢罷時間新探", 北方文物 (2010), 北方文物雜誌社
  4. 盖之庸, "耶律羽之墓志铭考证", 北方文物 (2001)
  5. 權五重, "靺鞨의 種族系統에 관한 試論", 진단학보, 49 (1980)
  6. 권은주, "중국의 발해 대외관계사 연구" (2011), 동북아역사재단
  7. 金渭顯, "遼金史硏究" (1985), 裕豊出版社
  8. 金渭顯, "東丹國考", 宋遼金元史硏究, 4 (2000), 宋遼金元史硏究會
  9. 김기섭, "발해의 멸망과정과 원인", 한국고대사연구, (50), pp.103~132 (2008), 한국고대사학회
  10. 金恩國, "渤海滅亡에 관한 재검토 -거란 침공과 그 대응을 중심으로", 白山學報, 40 (1992), 白山學會
  11. 김은국, "渤海滅亡의 原因", 高句麗硏究, 6 (1999)
  12. 羅永男, "契丹의 異民族 支配政策과 渤海人의 存在樣態", 박사, 사학과, pp.2013
  13. 盧泰敦, "韓國古代의 國家와社會" (1985), 一潮閣
  14. 노태돈, "발해국의 주민구성에 대한 연구 현황과 과제―‘高麗別種’과 ‘渤海族’을 둘러싼 논의를 중심으로―", 한국사연구, (122), pp.11~309 (2003), 한국사연구회
  15. 島田正郞, "契丹國 -遊牧の民キタイの王朝" (1993), 東方書店
  16. 卢伟, "试论契丹迅速灭亡渤海国的原因", 佳木斯大学社会科学学报, 22(5) (2004)
  17. 刘浦江, "再谈“东丹国”国号问题", 中国史研究 (2008)
  18. 馬繼華, "高句麗渤海硏究集成 4" (1997), 哈尒濱出版社
  19. 尾崎康, "北魏における渤海高氏", 斯道文庫論集, 2 (1963), 慶応義塾出版會
  20. 방학봉, "발해사연구 1" (1993), 서울대학교출판부
  21. 三上次男, "高句麗と渤海" (1990), 吉川弘文館
  22. 서병국, "발해유민사연구", 고구려발해연구, 25, pp.9~52 (2006), 고구려발해학회
  23. 石井正敏, "日本渤海關係史の硏究" (2001), 吉川弘文館
  24. 石井正敏, "藤原定家書寫『長秋記』紙背文書「高麗渤海關係某書狀」について", 人文硏紀要, 61 (2007), 中央大學人文科學硏究所
  25. 篠崎敦史, "東丹国使について -来朝理由を中心に", 續日本紀硏究, 384 (2010)
  26. 宋基豪, "발해 멸망기의 대외관계 -거란ㆍ후삼국과의 관계를 중심으로", 韓國史論, 17 (1987), 서울대 국사학과
  27. 宋玉样, "渤海与契丹“世仇”之浅见", 北方文物 (1995)
  28. 杨雨舒, "近十五年来国内东丹史研究概述", 社会科学战线 (1996)
  29. 杨雨舒, "辽代耶律羽之“墓志”所记东丹国史事考", 社会科学辑刊 (1996)
  30. 염경이, "開元末, 唐의 東北方政策의 變化와國際的 背景 - 732년, 渤海의 侵唐(登州) 원인과 관련하여 -", 중국사연구, (96), pp.63~85 (2015), 중국사학회
  31. 王德忠, "辽朝对东丹国的统治政策及其评价", 昭乌达蒙族师专学报(社会科学版) (1987)
  32. 園田一龜, "東丹國人皇王南奔の行迹" (1935)
  33. 이기동, "8세기 동아시아의 역사상" (2011), 동북아역사재단
  34. 李雪梅, "論東丹國的建國原因及其性質", 遼寧師範大學學報, 30(3) (2007)
  35. 李龍範, "中世 東北亞細亞史 硏究" (1976), 아세아문화사
  36. 李龍範, "遼代 上京․中京道의 渤海遺民", 白山學報, (15) (1973)
  37. 李龍範, "中世 滿洲ㆍ蒙古史의 硏究" (1988), 同和出版公社
  38. 리종훈, "발해사연구 제3집" (1993), 연변대학출판사
  39. 이효형, "발해 유민사 연구 : 고려와의 관계를 중심으로", 박사, 사학, pp.2004
  40. 李孝珩, "渤海의 멸망과 遺民의 諸樣相 -東丹國 관련 渤海遺民을 중심으로", 白山學報, 72 (2005), 白山學會
  41. 李孝珩, "발해의 멸망·유민사에 대한 연구 현황과 과제", 釜大史學, 30 (2006)
  42. 이효형, "중국학계의 북방민족ㆍ국가 연구" (2008), 동북아역사재단
  43. 이효형, "중국의 발해 대외관계사 연구" (2011), 동북아역사재단
  44. 日野開三郞, "五代時代に於ける契丹と支那との海上貿易 -東丹國內に於ける渤海遺民の海上活動(上ㆍ中ㆍ下)-", 史學雜誌, 52(7ㆍ8ㆍ9) (1941)
  45. 日野開三郞, "後渤海の建國", 日野開三郞東洋史學論集, 16 (1990), 三一書房
  46. 임상선, "渤海國과 契丹의 교섭관계 재검토", 고구려발해연구, 32, pp.145~164 (2008), 고구려발해학회
  47. 임상선, "渤海人의 契丹 內地로의 강제 遷徙와 居住地 檢討", 고구려발해연구, 47, pp.185~215 (2013), 고구려발해학회
  48. 임상선, "遼代 渤海人의 再遷徙 事由와 그 內容", 백산학보, (97), pp.171~201 (2013), 백산학회
  49. 임상선, "북방지역 種族의 繼承關係 검토- 靺鞨·女眞·滿洲族을 중심으로 -", 고구려발해연구, 50, pp.387~412 (2014), 고구려발해학회
  50. 임상선, "『遼史』 地理志의 斡魯朶 州·縣", 고구려발해연구, 49, pp.79~107 (2014), 고구려발해학회
  51. 임상선, "遼代 提轄司와 東京지역의 軍事組織", 중국사연구, (92), pp.103~134 (2014), 중국사학회
  52. 장국종, "발해사연구 1" (1997), 사회과학출판사
  53. 정병준, "安史의 亂과 遼西 平盧軍의 南下 -李忠臣의 活動을 중심으로-", 중국사연구, (87), pp.147~184 (2013), 중국사학회
  54. 何俊哲, "발해사연구 6" (1995), 연변대학출판사
  55. 韓圭哲, "渤海復興國‘後渤海’硏究 -연구동향과 형성과정을 중심으로-", 國史館論叢, 62 (1995), 국사편찬위원회
  56. 한규철, "渤海遺民의 高麗投化", 釜山史學, 33 (1997)
  57. 한규철, "발해국의 주민구성에 관한 연구", 인문학논총, 13(1), pp.143~174 (2008), 인문과학연구소
  58. 한규철, "渤海와 遊牧王朝의 交流", 고구려발해연구, 34, pp.21~41 (2009), 고구려발해학회
  59. 和田淸, "東亞史硏究(滿洲篇)" (1955), 東洋文庫

관련 논문AI추천

이 간행물의 다른 논문 (8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