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다목적 공연장의 탄생배경에 관한 소고
A Brief Review of Backgrounds behind “Multi-Purpose Performance Halls” in South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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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는 군사정권의 권력 전개양상에서 드러나는 문화정책이념이 ‘다목적 공연장’의 개념형성으로 발현되는 과정을 살펴보는데 있다. 한국의 공연장 현황은 우리나라 공연문화와 깊은 관계가 있다. 각 지방자치단체마다 그 지역을 대표하는 문화예술회관(문예회관)을 중심으로 한국의 공연문화와 향유문화가 깊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문예회관들은 다목적홀로 운영되고 있으며 운영주체는 절대다수 정부와 지방정부 또는 출자출연기관의 재단법인 등 공공영역에서 운영한다. 따라서 정부와 지방정부의 문화예술정책의 대상이며 제도적 측면과 긴밀한 상관관계를 가지게 된다. 박정희 정권은 초헌법적인 유신을 공포하고 우리나라 문화예술법의 시초라고 할 수 있는 「문화예술진흥법」(1972.9)을 제정한다. 이법을 근거로 「문예중흥5개년계획」(1973)을 수립하고 문화시설들을 짓기 시작했다. 전국의 ‘문화예술’회관, 또는 ‘문화’회관이 다목적홀로 지어진 데에는 문화예술진흥법의 “문화예술”에 대한 정의를 “문학, 미술, 음악, 연예 및 출판에 관한 사항”으로 명시함으로써 지금의 ‘다목적’개념의 근거가 된다. 한편, 문화공보부의 조직직제는 “문화와 예술”을 관장함을 명시하고 대중문화와 예술진흥을 구분 짓는 문화행정체계를 갖춘다. 그러나 이시기 대통령의 연설에 나타난 박정희의 화법은 ‘문화예술=예술’로 인식하고 있다. 예술은 문화에 포함되는 개념이지만 문화예술=예술로 인식함으로써 정치적 시국이나 시행부서에 따라 그 해석을 달리하였고, 이러한 모호성은 예술이 이데올로기적 활용에 정책적으로 동원되는 기제가 된다. 이러한 배경에서 문화예술진흥법에 근거하고 문화공보부의 관장 하에 1978년 다목적 공연장인 세종문화회관이 개관한다. 그러나 제도상의 문화예술=다목적과 설립을 추진했던 정부조직의 문화≠예술, 권력이 인식했던 문화예술=예술은 대중음악의 대관문제를 두고 가치충돌로 표출된다. 1979년 12·12사태로 정권을 장악한 신군부는 민족문화를 앞세운 국풍81을 통해 저항세력을 체제 안으로 끌어들이고자 했다. 정권의 의도는 실패하였고, 저항과 지지의 양축에서 국민적 지지를 확보하는 방안으로 국민의 문화향유 기회확대 정책에 방점을 둔다. 이는 앞 정권의 문화예술에 관한 인식의 전환이며 박정희 정권과의 차별화를 추구한 것이다. 전두환 정권에 있어 앞 정권과의 차별성은 곧 정권의 정당성 확보를 의미하는 것이었고 향유기회의 확대는 문화영역의 분배 차원에서 추진되었다. 따라서 장기적인 안목의 예술발전으로 자리매김 되지 못했고 하드웨어의 상징성으로 정권의 정당성 확보를 실현하려고 하였다. 오늘날 다목적 공연장의 개념은 유신체제하에 만들어진 법체계의“문화예술”의 정의에 기인한 것이며 이를 근거하여 공공 공연장의 운영목적으로 ‘다목적’의 개념이 탄생한다. 군사정권을 이은 전두환 정권은 프로시니엄 구조의 다목적 공연장을 정권의 정당성 확보의 수단으로 표출하였고, 전국적으로 재생산 되어 오늘날 한국의 공연문화에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Abstract
The current state of performance halls in South Korea is closely related to the performance art and culture of the nation as the culture of putting on and enjoying a performance is deeply rooted in public culture and arts halls representing each area at the local government level. Today, public culture and arts halls have multiple management purposes, and the subjects of their management are in the public domain including the central and local governments or investment and donation foundations in overwhelming cases. Public culture and arts halls thus have close correlations with the institutional aspect of cultural policies as the objects of culture and art policies at the central and local government level. The full-blown era of public culture and arts halls opened up in the 1980s〜1990s, during which multi-purpose performance halls of a similar structure became universal around the nation. Public culture and arts halls of the uniform shape were distributed around the nation with no premise of genre characteristics or local environments for arts, and this was attributed to the cultural policies of the military regime. The Park Chung-hee regime proclaimed Yusin that was beyond the Constitution and enacted the Culture and Arts Promotion Act(September, 1972), which was the first culture and arts act in the nation. Based on the act, a five-year plan for the promotion of culture and arts(1973) was made and led to the construction of cultural facilities. “Public culture and arts” halls or “culture” halls were built to serve multiple purposes around the nation because the Culture and Arts Promotion Act, which is called the starting point of the nation's legal system for culture and arts, defined “culture and arts” as “matters regarding literature, art, music, entertainment, and publications.” The definition became a ground for the current “multi-purpose” concept. The organization of Ministry of Culture and Public Information set up a culture and administration system to state its supervision of “culture and arts” and distinguish popular culture from the promotion of arts. During the period, former President Park exhibited his perception of “culture=arts=culture and arts” in his speeches. Arts belonged to the category of culture, but it was considered as “culture and arts.” There was no department devoted to arts policies when the act was enacted with a broad scope of culture accepted. This ambiguity worked as a mechanism to mobilize arts in ideological utilizations as a policy. Against this backdrop, the Sejong Center for the Performing Arts, a multi-purpose performance hall, was established in 1978 based on the Culture and Arts Promotion Act under the supervision of Ministry of Culture and Public Information. There were, however, conflicts of value over the issue of accepting the popular music among the “culture and arts = multiple purposes” of the system, “culture ≠ arts” of the cultural organization that pushed forward its establishment, and “culture and arts = arts” perceived by the powerful class. The new military regime seized power after Coup d'état of December 12, 1979 and failed at its culture policy of bringing the resistance force within the system. It tried to differentiate itself from the Park regime by converting the perception into “expansion of opportunities for the people to enjoy culture” to gain people's supports both from the side of resistance and that of support. For the Chun Doo-hwan regime, differentiating itself from the previous regime was to secure legitimacy. Expansion of opportunities to enjoy culture was pushed forward at the level of national distribution. This approach thus failed to settle down as a long-term policy of arts development, and the military regime tried to secure its legitimacy through the symbolism of hardware. During the period, the institutional ground for public culture and arts halls was based on the definition of “culture and arts” in the Culture and Arts Promotion Act enacted under the Yusin system of the Park regime. The “multi-purpose” concept, which was the management goal of public performance halls, was born based on this. In this context of the times, proscenium performance halls of a similar structure and public culture and arts halls with a similar management goal were established around the nation, leading to today's performance art and culture in the n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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