始政五年紀念 朝鮮物産共進會(1915)가 呈才 唱詞에 미친 영향 - <鳳來儀>를 중심으로 -
The Impact the 1915 Expo(始政五年紀念朝鮮物産共進會) had on Court Song Lyrics from the Perspective of <Bongnaeyi(鳳來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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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1915년 9월 11일부터 10월 30일까지 개최되었던 始政五年紀念 朝鮮物産共進會(이하, 공진회)에서 연행되었던 <鳳來儀> 창사를 통해 일제 강점기 박람회가 정재 창사에 미친 영향을 밝히고자 한다. 이를 위해 먼저 1910년대 새로운 연행 공간으로 등장한 ‘박람회(공진회)’의 특성을 살피고, 이 공간에서 연행되었던 다동기생조합과 광교기생조합의 <봉래의> 창사가 조선 시대, 대한제국기 궁중에서 연행되었던 <봉래의> 창사와 어떤 차이를 보이는지 논의한 후, 공진회가 정재 창사에 미친 영향에 대해 논의하고자 한다. 1910년대 가장 규모가 큰 박람회였던 공진회는 조선총독부 주관으로 1915년 9월 11일부터 51일간 경복궁에서 열렸다. 물산 장려라는 경제적 목적과 더불어 식민 지배의 정당성을 내보이기 위한 정치적 목적으로 개최되었는데, 전체 관람객이 100만 명이 넘었던 대규모 행사였다. 공진회의 관람객 동원을 위해, 근정전 서쪽에 위치한 연예관에서 다동기생조합과 광교기생조합이 매일 번갈아서 정재 공연을 하였다. 공진회의 정재 연행 공간이 경복궁이라는 점에서 볼 때, 전통적으로 정재가 공연되었던 공간이라고 할 수 있지만, 왕실의 번영을 송축하며 소수의 왕실 가족을 위해 연행되었던 정재가, 일제의 강점을 미화하기 위한 행사에서 불특정 다수의 일반인을 위해 연행되는 것으로 탈바꿈된 것을 알 수 있다. <봉래의>는 선초에 <용비어천가>를 노랫말로 삼고 여민락, 치화평 등의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었던 정재이다. 『악학궤범』에 관련 기록이 전하고, 고종 때 편찬된 『정재무도홀기』에도 전하고 있다. 반주 음악이나 노랫말의 길이 등 약간의 변화가 보이지만 조선 왕실을 송축하는 작품으로 연행되었다. 이 <봉래의>가 일제 강점기를 맞아 다동조합과 광교조합에 의해 공진회에서 공연되었는데 창사의 의미는 완전히 변질 되었다. 다동조합의 경우는 고종대에 연행했던 <봉래의>의 음악적 형식을 거의 그대로 가져오되 창사를 간소화하면서 천황을 송축하고 공진회를 칭송하는 것으로 그 내용을 바꾸었다. 광교조합의 경우 전통적인 형태를 수용한 것과, 새로 지은 것 등 두 종류로 공연했는데, 새로 지은 창사는 일제 강점기가 봉황이 올 만큼 태평성세라고 노래하고 있다. 두 기생조합의 창사는 동일하지 않았지만, 모두 가곡 선율에 얹어 불렀다는 점과 노골적인 친일 창사라는 점에서는 동일하였다. 이를 통해 공진회에서 공연되었던 두 기생조합의 <봉래의>는 전통 정재의 명칭과 형식과 창사를 토대로 하되, 공진회의 경제적, 정치적 개최 목적에 부합하도록 그 의미를 왜곡시켜서 결국 일제의 선전 도구로 전락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Abstract
This research paper examines the meaning behind the Court Song Lyrics which was performed at the 1915 Expo(始政五年紀念 朝鮮物産共進會) during September 11th to October 30th 1915, a period in which Korea was under Japanese Imperial rule. To do so requires the examinations of the characteristics of ‘Expo’, a new performance venue that appeared during the 1910s. Furthermore, an in-depth comparison between the Dadong Union(茶洞妓生組合)’s and Kwangyo Union(廣橋妓生組合)’s <Bongraeyi(鳳來儀)> lyrics to the version of <Bongraeyi> lyrics performed in the Chosun Dynasty court will reveal how the Expo influenced the Court Song Lyrics. The Expo with the largest capacity in the 1910s, was held at the Kyungbok palace(景福宮) from September 11th to October 30th 1915 under the supervision of Japan. By publicly advertising the economic improvements of Korea post-colonization, the Expo was used as political propaganda of justification of Japanese Imperial rule; the Expo was a highly successful event with a total of one million visitors. To stimulate the flow of more visitors to the Expo, the Dadong Union and the Kwangyo Union rotated perform daily at the Expo. Considering that <Bongraeyi> performance space was at Kyungbok palace, an important change of power dynamics can be noted: while the <Bongraeyi> was historically performed at the same location, for the elite few belonging in the royal family. However, with the regime change, <Bongraeyi> was publicly performed at the Expo, thereby allowing an unrestricted quantity of average individuals to also watch the performance. When <Bongraeyi> was performed during the imperialist rule, the differences in Dadong Union’s version versus that of the Kwangyo Union were prominent. Dadong Union maintained <Bongraeyi>’s musical components as used in the Chosun Dynasty but shortened the lyrics; The Kwangyo Union had two versions: there was a version that maintained the traditional performance characteristics as well as the new version. However, the new version increased the imperialist propaganda in that it described the current state of the nation as a paradise. The lyrics of the two versions were contrasting but similar in that both versions were to be sung by a melody and were flagrantly praising the imperialist regime. Therefore, it becomes evident that while <Bongraeyi>’s traditional melody and performance rules were maintained, the lyrics were changed to fit the Expo’s purpose of boasting the economic superiority of Korea post-imperial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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