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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정재 침탈 양상 고찰―광교기생조합의 공진회(1915) 정재 창사를 중심으로―

The Theft of the Jungjae (呈才) Performance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Centered on the Gwangyo (廣橋) Union’s 1915 Expo Court Song Lyr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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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기타인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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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신문계(新文界)』 제3권 9호(1915년 9월호)에 광교기생조합의 정재(呈才) 창사(唱詞)가 수록되어 있다는 것을 학계에 보고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이를 위해, 먼저 창사의 제작자를 추정하고, 창사의 내용적 음악적 특성을 분석하여, 본 창사 발견의 의의를 논의하고자 한다. 고려부터 조선조 내내 궁중에서 공연되었던 정재는 음악 반주에 맞춰 춤을 추다가 노래하는 歌舞樂이 결합된 종합예술이다. 특히 정재 중에 부르는 노랫말(창사)은 춤이나 음악보다 더 구체적으로 정재의 의미를 전달하는 역할을 해 왔기에 주목된다. 경술국치 이후 정재는 더 이상 궁에서 연행되지 못했다. 정재를 담당했던 기생들은 기생조합을 결성하고 극장이나 요리점에서 일반인을 대상으로 공연하였고, 정재는 대중예술로 변화해갔다. 1910년대에는 이렇게 연행 여건이 급변하면서 정재 공연에도 급격한 변화가 있었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관련 자료가 남아 있지 않아 정재사의 공백기로 남아 있었다. 1915년에는 일제의 식민통치5주년을 기념하는 시정오년기념 조선물산공진회(始政五年記念 朝鮮物産共進會)가 경복궁에서 50일간 열렸는데, 광교조합과 다동조합은 매일 이곳에서 번갈아 가며 정재 공연을 하였다. 당시 『신문계』는 공진회 기념호를 발간하여 공진회에서 공연하였던 광교기생조합의 정재 창사를 수록하였다. 이 기사의 작성자는 ‘太華山人’이다. 이는 최영년의 필명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의 아들 최찬식일 가능성도 열어 두어야 한다. 『신문계』에는 총 10종목의 정재 창사가 수록되어 있다. 정재명을 보면 모두 전통적으로 궁에서 연행되었던 것이지만, 그 창사는 전혀 다르다. 즉 공진회를 앞두고 새로 만들어진 창사이다. 창사는 당대를 태평성세로 인식하고 일본 천황과 총독을 칭송하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이러한 친일 창사는 계락, 우락, 편 등 가곡창의 악곡에 얹어 부르게 하였다. 또한 ‘靈’으로 부르는 곡도 있는데 이는 <靈山會上>의 선율에 얹어 부르는 것으로 추정하였다. 이 자료의 발견으로 인해 일제 강점기 정재 창사가 어떻게 왜곡되었는지 그 단면을 파악하고, 대중문화로 변모하면서 어떠한 변화를 꾀했는지도 확인할 수 있었다.

Abstract

This paper analyzes the Giseng (female entertainer)’s court song lyrics found in Shin moon gye (新文界) vol. 6 no. 9 (1915. Sep.). First, the court songs’ lyricist must be identified and the musical characteristics must be examined to discover the lyric’s true intentions. From the Koryo to the Josun age, the Jungjae (呈才) was originally intended to perform directly for the royal family, acting as the palace’s main source of entertainment―the Jungjae is a composite art that instructs to dance with the background instrumentals and sing without. The song lyrics of the Jungjae must be highlighted as they perform a significant role in illustrating the true purpose of the Jungjae. Post annexation, the Jungjae was removed as a court ritual. Thus, the Gisengs assigned to the Jungjae formed a union to continue as a group independent of the royal family. The union now performed for the general public, in places such as the theatre and restaurants. The Jungjae displayed a trend of popularization―entertainment for the ordinary. Considering the stage for the Jungjae suddenly changed drastically, there are reasonable suspicion for changes in the Jungjae performance itself also. However, no records have been discovered that support such a position, leaving a gap in the Jungjae history. In 1915, the Japanese’s celebration of the annexation, known as the ‘1915 Expo (施政五年記念朝鮮物産共進會)’, initiated at the Kyungbok palace (景福宮), which would continue for 50 more days. The Gwangyo (廣橋) union and Dadong (茶洞) union performed the Jungjae at this event on alternating days. At the time, Shin moon gye published a special edition magazine dedicated for the 1915 Expo; the author with the pen name ‘the man living in the Tae wha mountain (太華山人)’ recorded the Gwangyo giseng union’s the Jungjae performance lyrics on this magazine. The author is widely accepted as ‘Choi youngnyun (崔永年)’, but we must consider the possibility of Choi youngnyun’s son, Choi chansik (崔瓚植), as a candidate for the true author. In Shin moon gye, there is recorded a total of 10 different performances of the Jungjae. Examining the title of each of the Jungjae performances, we can infer that all 10 performances correlated with those originally presented for the royal family. However, the lyrics are different for each of the performances. Thus, we can infer that these lyrics were newly created to perform at the 1915 Expo. The new lyrics acknowledge the current world as the paradise and praised the Japanese King & Chongdok. Additionally, there is a song called ‘Young (靈)’ which is presumed to be sung along the melody of ‘Young San Howi Sang (靈山會上)’. In discovering this record, the paper seeks to unveil why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version of the Jungjae was altered and how the Jungjae changed in accordance with its changing audi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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