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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역사학계의 만보산사건 연구동향과 과제

The Research Trends and Mission of ‘Manbosan Incident’ in Korean H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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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한국어와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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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지금까지 한국의 역사학계에서 진행된 만보산사건에 대한 연구동향을 살펴봄으로써 만보산사건 자체에 대한 전체 그림을 그려내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한국사연구에서 만보산사건은 박영석의 선구적 연구로부터 출발하였다. 만보산사건을 일제의 대륙침략정책의 일환으로 규정한 그의 연구는 만보산사건에 대한 총체적 연구로서, 이후 대부분의 만보산사건 연구는 그의 연구를 계승하거나 극복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졌다. 2000년대 이후 나온 새로운 연구들은 1920년대 조선에서 광범위하게 내면화되어 있던 중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악감정이 만보산사건을 계기로 화교박해사건으로 폭발하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그 악감정의 근원을 식민지조선의 노동시장을 둘러싸고 나타난 조선인과 중국인의 갈등에서 찾고 있다. 이에 비해 한국의 중국사 연구자들의 만보산사건 연구는 매우 다양하게 이루어졌다. 그중에서도 만보산사건에 대한 기존 민족주의적 시각의 한계를 강조하며, “‘민족주의와 탈민족주의를’ 넘어선 ‘비민족주의적 반식민주의’의 입장”에서 보다 적극적인 대안적 서사가 이루어지기를 희망하는 연구가 주목된다. 하지만 미력하기는 하지만 한국사학계 역시 만보산사건을 ‘민족주의와 국제주의의 조화’라는 관점에서 줄곧 숙고하며 모색하는 연구를 진행해왔다. 만보산사건 당시 조선에서 벌어진 화교박해사건을 민족주의 자체의 문제로 보는 것은 위험하다. 그보다는 ‘성찰 없는’ 민족주의가 문제일 것이다. ‘성찰 없는’ 민족주의가 초래한 비극적 사건이 만보산사건 당시 조선에서 벌어진 화교박해사건이었다면, 앞으로의 만보산사건 연구는 ‘민족주의와 국제주의의 조화’가 어떻게 실현될 수 있고, 실현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제기를 해결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보다 더 생산적인 역사연구가 되리라고 생각한다.

Abstract

The purpose of this article is to review the research trends of ‘Manbosan Incident’ in Korean History and to reveal the real facts of the incident. The pioneering research of Park, Young-Suk(Manbosansageon Yeongu, 1978) is the start of the research of ‘Manbosan Insident’ in Korean History. He defined the ‘Manbosan Insident’ as a part of the Japanese invasion policies to continent. He wrote that the Japanese imperialists caused the incident to invade Manchuria. Since the 2000s, some researchers in Korean history have begun to pay attention to ‘the incidents of persecution to Chinese in Korea’, which were variously occurred in colonial Joseon after ‘Manbosan Insident’. They have found the cause of ‘the incidents of persecution to Chinese in Korea’ in the conflict over the labor market between Chinese and Korean. Among the researches, there was a interesting study about ‘Manbosan Insident’. In a study by a Korean historian in Chinese history, the limitations of nationalistic perspective by Korean historians in Korean history were emphasized. He hoped a more active alternative explanation about ‘Manbosan Insident’. It must be a description of the non- nationalist and anti-imperialist stance beyond nationalism. But historians of Korea has also conducted a study in terms of harmony, nationalism and internationalism. It is very dangerous to recognize ‘the incidents of persecution to Chinese in Korea’ as the problem of nationalism itself. The problem is on nationalism ‘without reflection’. To the research of ‘Manbosan Incident’, we have to overcome nationalism ‘without reflection’ and persuit the harmony of nationalism and international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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