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 백포만 고대 포구세력의 존재양태
The Ancient Port Powers in Baekpo Bay of Haenam-g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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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본고는 문헌과 고고자료의 비교분석을 통하여 해남 백포만 고대 포구세력의 존재와 변천과정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었다. 먼저 백포만 고대 포구세력은 3세기 후반에 ‘신미국’이라는 이름으로 문헌에 처음 출현한다. 이즈음에 백제가 마한을 병탄할 정도로 강성해지자, 신미국은 영산강유역의 29개 소국을 아울러 ‘신미제국’이라는 이름으로 晉에 집단적 사신을 파견함으로써 국제사회에 처음 데뷔하였다. 4세기 후반에는 ‘침미다례’라는 이름으로 문헌에 다시 등장한다. 이즈음에 백제가 고구려를 제압하고 동아시아 해상교류를 주도함에 이르자, ‘침미다례’는 이에 편승하지 않고 독자 노선을 걷다가 백제로부터 침략을 받아 도륙당하기도 하였다. 5세기 후반에 이르러 백포만 포구세력은 ‘탐라’ 혹은 ‘탐모라’라는 이름으로 문헌에 다시 등장하는데, 이들은 가야, 왜 등과 독자적인 교류활동을 전개하다가 다시 백제의 공격을 받기도 하였다. 6세기 이후에는 백제가 고구려를 제압하고 다시 주도권을 잡게 되면서, 백포만 포구세력을 포함한 영산강유역 고대사회는 백제의 지방통치조직(5방제)으로 완전히 편입되었다
Abstract
In this manuscript, the following conclusions were obtained on the existence and the transition process of the ancient port powers in Baekpo bay of Haenam-gun through comparative analysis of the literature and archaeological data. First of all, the ancient port powers in Baekpo bay first appeared in the literature in the late 3rd century under the name ‘Sinmiguk’. At that time Baekje became strong enough to take property and territory of mahan, Sinmiguk made its first debut in the international society by sending envoys to the Qin Dynasty with 29 small countries in the Youngsan river valley in the name of the ‘Sinmijeguk’. In the late 4th century, it appeared again in the literature under the name ‘Chimmidarye’. When Baekje defeated Goguryeo and led the East Asian maritime exchanged, ‘Chimmidarye’ was slaughtered after being invaded by Baekje while walking on its own line. By the end of the 5th century, the port powers in Baekpo bay appeared again the literature under the name ‘Tamna’ or ‘Tammora’. And they were attacked by Baekje again after conducting their own exchange activities with Gaya and Japan. After the 6th century, Baekje overthrew Goguryeo and took control again, the ancient society of Youngsan river valley including Baekpo bay was completely incorporated into the local governing organization (Five-Province Sistem) of Baekj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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