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헌자료로 본 忱彌多禮의 위치
The location of Chimmidarye reviewed through the literature surv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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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본 논문에서는 주로 문헌자료를 통해 침미다례의 위치를 파악하고자 했다. 종래 침미다례는 『晉書』에 나오는 3세기 후반의 新彌國과 상통하는 지명으로 간주되었고, 전남의 해남·강진 내지 제주도로 비정되었다. 지명 비정 자체는 의견 차이가 크지 않지만, 침미다례를 무찔렀다는 기사가 나오는 『일본서기』 신공 49년조의 해석에서는 큰 견해 차이가 있다. 신공 49년조는 4세기 후반 백제가 마한 잔여세력을 완전히 정복해서 지배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고해진에 이르러 남만 침미다례를 도륙했다는 기사에 나오는 古奚津과 침彌多禮는 4세기 후반 백제가 가야, 왜로 이어지는 서남해안의 교통로를 장악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지명이다. 고해진과 침미다례는 백제 5방제 하의 道武郡, 즉 현재의 해남·강진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道武郡은 통일신라 때 陽武郡으로 개칭되었고, 陽武郡의 치소는 현재의 강진군 병영이었다. 그러나 백제 5방제 하에서 道武郡의 치소는 浸溟縣에 해당하는 지역이었을 것이다. 침미다례는 바로 침명현, 오늘날의 해남 현산면 일대로 비정된다. 이 지역은 백제가 가야나 왜로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지나야 하는, 중요한 거점이 될 만한 곳이었다. 백제가 그 지역을 장악하고자 한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였다. 침미다례 도륙이 비록 영산강유역에 대한 공략으로까지는 연결되지 못했지만, 백제는 해남·강진지역을 장악함으로써 이들이 영산강유역의 핵심세력인 영암이나 나주지역과 연결되는 길은 차단했다. 따라서 백제의 침미다례 도륙은 가라 7국 평정 사실과 함께 가야-왜로 이어지는 교통로를 확보한 것에 의미가 있다.
Abstract
This study intend to show the location of Chimmidarye[침彌多禮] through the survey of literature. In the former studies, it was regarded as the another name of Sinmiguk[新彌國], which appears in Jinshu, in the second half of third century, and the putative location of Chimmidarye were Haenam, Gangjin or Jejudo. There is no big difference on the putative location of Chimmidarye, however, there should be some clarification on the interpretation of Jingu 49th year record of Japanese historical document Nihonshoki. Jingu 49th year record of Nihonshoki does not mean Baekje`s complete conquer against the remnants of Mahan. Though the record states that Baekje defeat the southern barbarian Chimmidarye after arriving in Gohaejin[古奚津], Gohaejin and Chimmidarye are the names of location which appear during the domination of south-western coastal traffic route to Gaya and Wa by Baekje in the second half of fourth century. Gohaejin and Chimmidarye were Domu-gun[道武郡] of 5-Bang system in Baekje, and coincide with the location of present Haenam and Gangjin. The capital place of Domu-gun might be Chimmyeong-hyun[浸溟縣] area. The name of Domu-gun was renamed as Yangmu-gun[陽武郡] in the era of unified Shilla and its capital was located in present Byoungyong in Gangjin. I think the location of Chimmidarye might be Chimmyeong-hyun, which coincide with present Hyunsan-Myeon, Haenam-gun. Baekje wanted to dominate this area because this area was the important traffic route to Gaya and Wa. Though the conquer of Chimmidarye doesn`t mean the secure of Yeongsan-River basin, Baekje can block the alliance between the group of Youngam and Naju in Youngsan-River basin and Chimmidarye. In conclusion, the conquer of Chimmidarye by Baekje is important change in securing the traffic route to Gaya and Wa with the suppression of Gara seven count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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