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시대 영산강유역권 금동 위세품의 역사적 성격
Archaeo-historical Significance of Gilt-bronze Prestige-goods at Youngsan-river Reg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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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2000년대에 들어 영산강유역권을 중심으로 한 마지막 마한 제소국과 백제의 관계에 대해 많은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근초고왕 24년(369)에 병합된 이후 간접지배 상태에서 토착적인 옹관묘가 발전하다가 5세기 후엽부터 직접지배로 바뀌면서 백제 석실묘가 보급되었다는 것이 기존 견해인데 이와 다른 시각에서 새로운 견해들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새로운 견해라 하더라도 직접지배·간접지배·거점지배·공납지배·세력권·영향권·지배적동맹관계 등 다양한 용어로 표현되면서 분명한 관계를 알기 어려운 경우들이 적지 않다. 이 글에서는 백제와의 관계를 영역 내부와 외부로 대별하여, 내부는 직접지배와 간접지배 2가지로, 외부는 세력권과 영향권 2가지로 구분하였다. 또한 흔히 금동대관·금동모관·금동식리로 불리던 금동 위세품을 금동관·금동상투관·금동신발로 칭하고 이들이 백제와의 관계에 있어 어떠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살펴보았다. 금동관은 독립된 세력이 자체제작이나 주문제작한 것이고, 금동상투관은 직접지배·간접지배·세력권·영향권을 불문하고 백제에서 그 주인공의 생전에 제공한 것이 대부분이며, 금동신발은 직접지배·간접지배·세력권·영향권을 불문하고 백제에서 그 주인공의 사후에 장송례품으로 제공한 것으로 보았다. 이를 바탕으로 영산강유역권은 6세기초까지 독자성을 유지하면서 백제의 영향권에 속하였음을 논하였고 6세기초 止迷·麻連·下枕羅 등의 마한 소국들이 기재되어 있는 중국 『양직공도』가 이를 입증하는 문헌자료임을 확인하였다.
Abstract
Recently, the relationship between Mahan at Youngsan-river region and Baekje is debated seriously. The traditional interpretation of the incorporation of Mahan as the reign of King Geunchogo is in the middle years of the fourth century. But many archaeological evidences excavated at the Yeongsan-river region from the latter years of the fifth century to the early years of the sixth century mean that Mahan of not only Yeongsan-river region but also the almost Jeonnam province was not belong to Baekje until the early years of the sixth century. But the relationship between Mahan at Youngsan-river region and Baekje during that period was defined very diversely. For example, direct-reign, indirect-reign, base-reign, tribute-reign, sphere of influence and so on. In this paper, the author divide the relationship into inside and outside of the territory of Baekje at first, and divide the relationship into direct-reign and indirect-reign of the inside territory of Baekje vs. tribute-reign and sphere of influence of the outside territory of Baekje later. After that, discuss about the archaeo-historical significance of gilt-bronze prestige-goods like crowns, topnots, footwears excavated from the Jeonnam province including Youngsan-river region. The gilt-bronze prestige-goods like crowns, topnots, footwears excavated at this area reveal that the Jeonnam area including Youngsan-river region was the last territory of Mahan to maintain its independent power from Baekje until the early years of the sixth century. Baekje did not absorb Mahan into its territory at one time but by three stages. Part of the Mahan people in the absorbed area sought refuge in southern Mahan or in Ja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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