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세기 백제의 좌·우현왕(左·右賢王) 수용 배경과 기능
The Adoption Background and Function of Jwahyeonwang and Uhyeonwang in Baekje during the 5th cent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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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의 외래 위호 수용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많은 논의가 이루어져 왔으나 좌현왕과 우현왕(이하 좌·우현왕)에 대해서는 제대로 다루어지지 않은 측면이 있다. 흉노와 돌궐의 예를 들어 군사권을 장악한 군주의 근친이 임명된 것으로 정리한 이래 크게 진전된 논의가 없는 것이다. 흉노의 세력이 소멸한 4~5세기 단계에도 흉노식 위호를 사용했다는 것은 동아시아에서 그 역사적 권위가 어떠한 형태로든 이어져 오고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따라서 5세기 단계 백제의 좌·우현왕 수용 역시 당대 보편적으로 인식되고 있었던 흉노식 위호의 의미와 기능을 파악한 가운데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를 바탕으로 본 논문에서는 먼저 당시 동아시아에서 흉노의 위호가 어떤 의미였는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어떻게 변모하였는지 보고자 했다. 흉노식 위호가 갖는 역사적 의미는 한대(漢代) 이후로 일정하게 변화되어왔다. 전한대(前漢代) 흉노에서 선우를 포함한 좌·우현왕이 흉노의 최고지배층을 지칭하였다면 그 이후의흉노식 위호는 최고 지배자 휘하에서 화북지역에 있던 비한족계통들을 진무(鎭撫)하는 역할로 변화해 왔다. 백제의 경우 화북지역 이민족 세력과의 교류를 통해 변화된 좌·우현왕의 인식과 기능을 수용했을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백제 내에는 ‘백제인’ 외에도 다양한 출신 계통을 가진 사람들이 혼재되어 있었다. 이러한 사람들을 진무하기 위해 비슷한 기능을 가진 좌·우현왕을 도입하여 활용했다고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백제의 경우 고유의 관료 체계를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백제 내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라 새롭게유입된 세력들을 통제하는 기능만을 가져온 것으로 보인다.
Abstract
While there have been lots of discussions about Baekje’s adoption of foreign office titles, Jwahyeonwang (左賢王) and Uhyeonwang (右賢王) have not been dealt with properly. Discussion about them has made little progress since it was summarized in such a way that a king’s near kindreds who gained control of the military force were appointed as them, as seen in the examples of Xiongnu and Turkic Khaganate. The use of Xiongnu-style office titles even in the 4th – 5th century when Xiongnu’s influence disappeared may imply that their historical authority continued in some form. Therefore, understanding about Baekje’s adoption of Jwahyeonwang and Uhyeonwang in the 5th century also requires the grasping of the meaning and function of Xiongnu-style office titles that were generally perceived at that time. Based on this, this paper intends to investigate first what the office titles of Xiongnu meant in East Asia at that time and how they were changed over time. The historical meaning of Xiongnu-style office titles was consistently changed after the Han dynasty. While Jwahyeonwang and Uhyeonwang, as well as Seonu (單于, Chanyu), referred to the highest ruling class among Xiongnu in the Former Han dynasty, the role of Xiongnu-style office titles was changed into appeasing non-Han descents who were under their highest ruler in North China. It seems possible that Baekje accepted the changed understanding and functions of Jwahyeonwang and Uhyeonwang, through exchanges with other ethnic groups. Within Baekje, people from various descents, as well as Baekje people, were mixed. It may be understood that Jwahyeonwang and Uhyeonwang having similar functions were introduced and used to appease such people. Baekje, however, has its own system of official positions. Therefore, it is deemed that Jwahyeonwang and Uhyeonwang were not for all people within Baekje, but they had only the function of controlling new groups that flowed into Baekj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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