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세기 百濟의 中國系 流移民의 수용과 太守號
A study of the Taishou title (太守號) and the Baekje Chinese emigration policy in the 4th-5th centu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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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는 태수호를 중심으로 백제의 중국계 유이민에 대한 지배방식을 살펴보았다. 4세기 중국의 정치적․사회적 혼란으로 인해 중국 내륙 및 낙랑․대방군에서는 유력세력(流民帥)을 중심으로 郡 단위 본적지를 공유하는 自衛集團(유이민 집단)이 형성되었다. 중국계 유이민 집단은 혼란한 정세를 피하여 백제로 來投하였다. 백제는 중국계 유이민 집단의 사회적 구성 및 관습․제도를 묵인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백제가 중국계 유이민 집단의 내투를 유도하면서 보다 많은 유이민을 확보하고자 하였던일종의 타협이었다. 유이민 집단이 계속적으로 내투해옴에 따라 백제는 유이민 수 등을 고려하여 ‘朝鮮郡’과 같은 새로운 군 단위 집단을 만들거나, 지역적 연관성이 있는 여러 군 단위 집단을 모아 하나의 군 단위 집단으로 편제하였다. 군 단위 집단의 태수는 백제의 의도에 따라 선택된 중국계 유민수가 맡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선택된 중국계 유민수와 그의 예속세력은 백제로부터 차등적으로 관등과 관직을 받고 중앙의 관인이 되었다. 또한 중국계 유이민은 본적지(주․군)별 공동체로 구성된 집단 거주지를 유지한 가운데, 군 단위 본적지가 기재되어 編籍되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5세기 후반 백제는 대중국 외교에서 공로를 세운 중국계 관인을 특정 군 단위 태수로 사가하고, 해당 군 단위 출신의 호구를 대상으로 설정한 食邑 封戶를 하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중국계 유력인사를 통해 중국계 유이민 집단을 통제․관리한다는 백제의 지배방식의 연장이었다.
Abstract
This article intends to examine the way the existing Baekje society incorporated and governed Chinese emigrants by rewarding them with the "Taishou" title. Due to China's political and social turmoil, nomad populations coalesced into groups centralized on influential powers and settled in shared home districts across mainland China and the Nakrang (樂浪) and Daebang (帶方) Districts, submitting to the Baekje dominion throughout the 4th and 5th centuries. The Baekje ruled the emigrants by conducting studies of the nomadic populations and designating several counties (gun, 郡) as their homestead territories. Therefore, they made efforts to integrate the nomadic groups by giving them a sense of geographical community and connectivity. Furthermore, in accordance with the Baekje's intentions, the Taishou were often chosen from influential Chinese emigrants (流民帥). Afterwards, those influential Chinese emigrants and their subordinates were often granted an official civil rank and made government officials of the Baekje. In the late 5th century, emigrants who made notable contributions to Chinese diplomatic relations were rewarded with the Taishou title and fiefdom within their respective counties. This practice was an extended method for the Baekje to maintain control and dominance over Chinese emigrants through collaboration with influential figures of Chinese desc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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