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KERD
논문KCI 등재

世祖代 後半期의 佛敎的 祥瑞와 恩典

The buddhist omen and the grace in the late years of King Sejo's reign

0

조회

0

다운로드

30

인용

0

참고문헌

키워드

주제분류기타인문학

초록

본 연구는 세조대 후반기에 집중적으로 발생했던 불교적 祥瑞 현상을 통해 조선시대 세조대의 정치사를 재조명해 본 것이다. 기존의 연구에서, 世祖는 同王 2년 死六臣事件과 뒤이은 集賢殿 혁파를 계기로 유교 이념에 의한 통치에서 벗어나기 시작했으며, 佛敎를 통한 왕권 강화의 방향으로 나아갔다고 파악하고 있다. 그리고 세조대 발생한 불교적 祥瑞도 유교적 명분의 측면에서 한계를 느낄 수 밖에 없던 세조가, 불교를 통해 정통성을 보완하려 했기 때문에 발생한 것으로 이해하여 왔다.그러나 불교 관련 상서는 정치적으로 불안정했던 세조대 前半期에 나타난 것이 아니었다. 이 때문에 불교적 상서는 정치적 동기에서 비롯되었을지라도, 세조 집권의 정통성 확보 문제와는 별도로 파악되어야 하는 것이다. 불교 관련 祥瑞는 세조 8년 이후에 비로서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즉 불교적 상서는 정치적 긴장도가 높고, 세조 왕권이 안정되지 못하였던 집권 초기에 나타난 것이 아니었다. 이는 불교적 祥瑞가 세조 정권의 비정통성 극복과는 밀접한 관련이 없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기존의 견해와는 달리, 세조는 治世의 전반기 동안 불교를 정치적 도구로 이용하지 않았다. 더욱이 즉위 8년까지의 세조는 일체의 祥瑞를 믿지 않았던 합리적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세조는 신하들이 태평시대를 알리는 아름다운 상서라며 올리는 모든 것을 거부했으며, 이러한 행위를 현명하지 못하고 아부를 일삼는 행위로 일축했다. 즉 집권 전반기 祥瑞에 대한 세조의 인식은 祖父인 太宗과 父王인 世宗과 같이 유교적인 것이었다.그러나 祥瑞나 異蹟에 대한 세조의 태도는 즉위 8년에 이르러 급변하였다. 세조 자신이 관세음보살을 직접 보았다고 주장하면서 사면령을 내린 것이다. 상원사에서 기적이 나타난 때부터 세조가 죽는 1468년 9월까지 대략 5년 10개월 동안, 무려 32회의 佛敎 關聯 異蹟이 나타났으며, 이에 따라 22번의 사면령이 내려졌다. 2달 남짓한 기간에 한 번씩 異蹟이 나타났으며, 대략 3달에 한 번씩 사면령이 내려진 것이다.儒臣들이 祥瑞에 대해 ‘百官陳賀’라는 형식으로 기꺼이 동참하는 모습을 보였다. 祥瑞가 있으면 赦免과 恩典이 뒤따랐기 때문이었다. 세조대 전반기 法은 엄하였고, 여기서 관료들도 예외일 수는 없었다. 그러나 엄격한 법률이 오래 지속되었을 경우, 그 시행 의도와는 달리 자칫 사회를 더욱 불안케 할 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이미 엄한 법이 상당 기간 계속되었기 때문에, 사회적 긴장도는 높아져 있었다. 상서는 이러한 사회적 긴장을 완화하는 계기로 활용되었던 것이다.祥瑞와 관련되어 진행된 불교 法會에 세조는 참여하여 직접 대중과 접촉하였다. 이 자리에서 그는 內政과 外治에 성공한 군주로, 三皇五帝에 못지 않은 태평성대를 이룩한 聖君으로 칭송받았다. 불교 법회에는 관료 뿐 아니라, 승려기생부녀자 등 유교적 의식에서 소외된 사회 구성원 모두가 참여할 수 있었다. 지나친 엄숙성과 형식성 때문인지, 세조는 유교적 賀禮에는 소극적이었다. 반면에 上下가 동참하는 불교 행사는 모두가 열광하는 축제적 분위기에서 진행되었다. 즉 세조대 후반 狂氣的으로 발생했던 불교적 祥瑞에는, 조선 사회의 구성원 모두가 자발적인 긍정할 수 있는 여러 요소가 있었던 것이다.

Abstract

In this work, we analyzed the political history under King Sejo's reign by buddhist omen which happened repeatedly at that time. Studies on this subject so far says that buddhism was the method to strengthen king's power and buddhist omen justified King Sejo who have been regarded a king without confucian moral. Contrary to former studies, King Sejo was very rational intellectual in the context of confucianism. Buddhist omen did not happen under the unrest political condition. That means buddhist omen have no relationship with justifying the legitimity of throne. King Sejo changed his attitude to buddhism in 8th years of his reign. Insisting that he had met the Buddhist Goddess of Mercy, King Sejo granted general clemency. From the first miracle to his death, buddhist omen happened 32 times for the 5 years and 10 months. Miracle happened every 2 months and King ordered oblivion every 3 months. Subjects willingly followed such policy because King's attitude relieved very strict social order which could make society unrest. People from all the class participated buddhist ceremony celebrating miracles. Buddhist omen relieved social stress and reunited people undere severe rules.

참고문헌 (11)

  1. "「朝鮮初期 支配層의 日本觀-申叔舟의 海東諸國記를 중심으로」", 9 (1981), 전북대학교 인문학연구소
  2. "「朝鮮前期의 國家觀民族觀」" (1983), 知識産業社
  3. "「世祖의 民本政治와 富國强兵政策」", 9 (1984), 國史編纂委員會
  4. "「兩班官僚國家의 成立-槪要」 ꡔ韓國史ꡕ 9" (1984)
  5. "「臺諫의 活動을 통해 본 世祖代의 王權과 儒敎理念의 對立」", 130 (1991)
  6. "「단종과 세조에 대한 역사소설의 검토」", 16 (1992)
  7. "「世祖代의 佛敎政策」", 75 (1993)
  8. "「朝鮮초기 世祖王權의 專制性에 대한 一考察」", 87 (1994)
  9. "朝鮮前期의 受圖書倭人", 5 (1996)
  10. "世祖代 王位의 취약성과 王權强化策", 1 (1997)
  11. "朝鮮朝 世祖의 國政運營" (2000), 신서원

관련 논문AI추천

이 간행물의 다른 논문 (10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