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30년대 원산 지역 극단을 통해 본 ‘중간극(中間劇)’ 개념의 발원(發源)에 관한 연구
A Study on the Origin of the Concept of ‘Medium Plays’ through the Wonsan Regional Theater in the 1920s and 1930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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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원산관은 일제 강점기 원산에서 건립되어 운영되었던 대표적인 조선인 극장이었다. 당초 원산관은 조선인 극장에 대한 지역민의 열망과 합의에 의해 건립되었지만, 그 운영은 이러한 심정적인 지지만으로 이루어질 수 없었다. 원산관을 운영하기 위해서 원산관에 공연 콘텐츠를 제공할 전속극단이 필요했고, 일련의 극단이 전속극단으로 명멸해갔다. 그러면서 원산에는 지역 연극계와 자생극단이 생장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었다. 본 연구는 이러한 원산 연극계의 생성 과정과 전속극단의 변모 과정 그리고 그일련의 움직임 속에서 탄생하는 새로운 이념의 맹아를 살펴 볼 목적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관찰과 연구를 통해 원산 연극계의 고민이 중간극의 태동과 생성에 중요한 계기가 되었음을 밝혀보고자 했다. 박영호는 그 대표적인 인물로, 그는 대중적인 연극 속에서 계급성을 전달하고자 하는 의도를 드러내는 작가였다. 그러한 그의 미학적 모색은 결국 원산 연극계에서 중간극이 맹아를 드러내는 계기로 작용했다.
Abstract
Wonsan-Theater was a representative Korean theater constructed and operated by the Japanese colonial era Wonsan. Originally Wonsan-Theater was established with the desire and agreement of the local residents of the Korean theater, but its operation became emotional, but never made it. A series of theatrical companies, which needed an exclusive theater company to provide Wonsan-Theater performing contents to the Wonsan-Theater, flickered to the exclusive theater company. Along with that, Wonsan has prepared an environment where local theatrical circles and autogeneous troupe can grow. In this research, this study have the purpose to see and see the spirit of the new idea born in the process of the generation of such Wonsan theater, the transformation process of the exclusive theater company, and the series of movements. Through these observations and studies, this study tried to see clearly that the troubles of the Wonsan theater world became an important opportunity for the intermediary's fetal movement and generation. Park yeongho is a representative of the theatrical performer, and he was a playwright with an intention to include ‘Proletarian class’ in popular theater form. Such an aesthetic search eventually served as the beginning of the Medium Theater in Wosan's local theater sys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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