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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 ‘중간극’ 이념의 생성과 역사적 전개에 관한 연구 - 1937~1939년 시점을 중심으로 -

A study on the origin and the historical development of 'middle drama' in the 1930'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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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 중반을 넘어서자, 朝鮮 演劇界에는 ‘中間劇’에 대한 논의가 서서히 일어났다. 그 기폭제가 된 사건은 ‘中央舞臺’의 창립과 中間劇 이념의 제창이었다. 이후 中間劇은 朝鮮 演劇界의 화두가 되었고, 1930년대 후반 朝鮮 演劇界의 주요 쟁점 중 하나로 상정되었다. 비록 中間劇이 최초에는 다소 우발적으로 도입되었지만, 점차 新劇 陣營과 大衆劇 陣營 모두가 관심을 두는 장르로 발전했던 것이다. 비록 中間劇이라는 장르 명을 직접적으로 거론하지 않았을지라도, 관객의 확대를 꾀했던 新劇 陣營과 작품의 질적 수준 향상을 염원한 大衆劇 陣營 양자에게 中間劇은 자신들의 부족한 점을 보완할 수 있는 개념이었기 때문이다. 1940년대에 근접하면, 新劇 陣營은 그 위세가 위축되면서 大衆劇의 特徵에 눈을 돌리게 되었고, 본격적으로 大衆劇 陣營의 演技 方式과 大衆性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大衆劇 陣營 역시 ‘高協’으로 대표되는 中間劇 양식의 일차적 완성을 실현하게 되었다. 이러한 양자의 중간자적 혼류 양상은, 1940년대 연극의 원류를 형성하는 데에 중요한 초석이 되었다. 이후 1940년대 朝鮮 演劇界는, 관객의 성향을 충족하면서도 작품의 질적 향상을 꾀할 수 있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도모하였고, 中間劇은 그 대안으로 인식되었다.

Abstract

1930年代半ばを超えると、朝鮮演劇界には‘中間劇’についての議論が徐々に起こった。その起爆剤となった事件は、‘中央舞臺’の創立と中間劇理念の提唱だった。以後、中間劇は朝鮮演劇界の話題となり、1930年代後半、朝鮮演劇界の主な争点の一つとして想定された。ただし、中間劇が最初に偶発的に導入された、次第に新劇陣営と大衆劇陣営みんなが関心を置くジャンルに発展したのだ。ただし、中間劇というジャンル名を直接取り上げていないとしても、観客の拡大を図っていた新劇陣営と作品の質の向上を願うした大衆劇陣営両者に中間劇は、自分たちの不足している点を補完することができる概念だったからである。1940年代に近づくと、新劇陣営は、その威勢が萎縮し、大衆劇の特徵に目を向けるようになり、本格的に大衆劇陣営の演技方式と大衆性に関心を持つようになった。大衆劇陣營も‘高協’に代表される中間劇フォームの一次完成を実現した。これらの両者の中間者としての混流面は、1940年代の朝鮮演劇の源流を形成するのに重要な礎石となった。以後1940年代の朝鮮演劇界は、観客の傾向を満たすながら作品の質的向上を図ることができる方案を積極的に図り、中間劇は、その代わりに、認識され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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