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메이지시기 오쓰키 슈지(大摫修二)의 『日本地誌略』 편찬과 독도 인식
Meiji Geographer Otsuki Shuji’s Nihon-chishiryaku (日本地誌略) and His Recognition of Dok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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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오쓰키는 일본 메이지시기 지리학자로서 『日本地誌略』과 『日本地誌要略』을 비롯해 수많은 지리교과서⋅부도를 편찬하였다. 특히 일본 문부성이 최초로 발행한 『일본지지략』은 당시 가장 널리 사용되었을 뿐 아니라 이후 일본지리교과서의 기준이 되었던 대표적인 소학교 지리교과서였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새로 발굴한 자료들을 토대로 오쓰키가 『일본지리략』에서 독도를 어떻게 서술⋅인식했는가를 종합적으로 살펴보았다. 오쓰키가 문부성 재직 중인 1874년 1월 『일본지지략』 초고를 완성하는 과정에서 결정적으로 참고했던 태정관 정원 지지과의 『일본지지제요』 초고는 출판을 위한 최종 교정본 직전의 초고본이었다. 그는 『일본지지제요』를 참고로 『일본지지략』을 편찬하면서 松島(독도)와 竹島(울릉도)의 존재를 인지했지만, 두 섬을 부속섬 관계로 파악하면서 오키의 소도에 포함하지 않았으며, 『日本地名字引』에서도 기재하지 않았다. 『일본지지략』에 수록된 ‘日本國全圖’와 이에 관련된 「山陰道之圖」⋅「隱岐圖」에도 모두 松島와 竹島는 전혀 표시되지 않았다. 이들 지도에 일본 영토의 변동 상황이 정확하게 반영되었음에도 두 섬이 제외된 사실은 일본 영토로 인식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판단된다. 이들 지도와 본문의 내용을 비교해 살펴보면, 松島와 竹島는 오키의 해양상 위치 혹은 경계를 설명하기 위해 서술되었음을 알 수 있다. 오쓰키는 동생 후미히코의 ‘暗射日本圖(日本全圖暗射)’를 근거로 편찬한 『日本全圖暗射指南譜』에서도 松島와 竹島를 일본 영토로 인식하지 않았다. 그가 『大日本沿海實測錄』를 편수하는 과정에서 참고했던 『대일본연해실측록』에는 울릉도와 독도가 서술되지 않았으며, ‘암사일본도’에도 울릉도와 독도가 표시될 공간이 있지만 그려져 있지 않았던 것이다. 오쓰키뿐만 아니라 후미히코도 일본 영토의 중요성과 그 변동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던 인물이었지만, 『일본지지략』을 비롯해 『일본지명자인』과 『일본전도암사지남보』에서 울릉도와 독도가 일본 영토로 인식된 근거는 찾아볼 수 없다. 『일본지지략』은 일본 문부성이 개정⋅발행한 최초의 일본지리교과서였던 사실에 비추어, 일본 정부 차원에서도 독도를 일본 영토로 간주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Abstract
Otsuki Shuji (大摫修二), a Japanese geographer during the Meiji era, published a number of Japanese geography textbooks and student atlases. His Nihon-chishiryaku (日本地誌略), initially published by the Ministry of Education, was the most successful geography book in this period and adopted by elementary schools, which made it the standard geography textbook of the time in Japan. This paper mainly examines how Otsuki treated Dokdo in this influential book. During his tenure of office at the Ministry of Education, Otsuki completed his first draft of the Nihon-chishiryaku (January 1874) consulting the practically final draft of the Nihon-chishi-teiyo (日本地誌提要) compiled by the Chishika (地誌課) under the Daijokan (太政官). Otsuki was aware of the existence of Dokdo and Ulleungdo but did not consider them as belonging to the Oki Islands. Nor did he register them in the Nihon-chimei-zibiki (日本地名字引). This is probably because he believed that Dokdo was a dependency of Ulleungdo. We cannot find Dokdo and Ulleungdo on the maps included in the Nihon-chishiryaku such as Nihonkoku-zenzu (日本國全圖), Sanindo-no-zu (山陰道之圖), Oki-zu (隱岐圖). Given that these maps accurately reflected the territorial changes in Japan, that the two islands do not appear on these maps implies that the author did not consider them as Japanese territories. Otsuki did mention Dokdo and Ulleungdo in the text but it was only for explaining the boundaries of the Oki Islands. Otsuki did not treat Dokdo and Ulleungdo as part of Japan in the Nihon-zenzu-anshya-shinanhu (日本全圖暗射指南譜), a book he wrote based on the Anshya-Nihon-zu (暗射日本圖) by his brother Humihiko (大摫文彦). While working on the Nihon-zenzu-anshya-shinanhu, Otsuki consulted the Dai-Nihon-enkai-zitsokuroku (大日本沿海實測録), where Dokdo and Ulleungdo were not mentioned. Nor did they appear on the Anshya-Nihon-zu despite that there was enough space to mark them. As seen above, Otsuki excluded Dokdo and Ulleungdo from the dominions of Japan in his geography works including the Nihon-chishiryaku. What this fact tells us is that neither Otsuki nor the Ministry of Education perceived Dokdo as a Japanese terri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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