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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일본 관찬 地誌와 지리교과서에 나타난 독도 인식

Recognition of Dokdo in Official Geography and Textbooks of Geography Edited by Japanese Govern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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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역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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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근대 일본의 지리연구의 성격 안에서 근대일본 관찬 지지(地誌)와 문부성 검정 지리교과서에 나타난 독도 관련 기술을 분석하여 당시의 일본정부가 펴낸 공식적인 지지 및 문부성의 허가를 거친 지리교과서에 독도를 한국의 영토로 인식했음을 밝힌 것이다. 먼저 메이지 정부의 태정관 정원이 발간한 『日本地誌提要』(1874)는 일본의 지지 편찬의 기준이 되었으며 문부성은 이를 토대로 하여 지리교과서 『일본지지략』를 편찬했다. 그리고 『日本地誌略』 편찬을 주도한 오쓰키 슈지(大槻修二)는 1875년에 『日本地誌要略』을 펴내었는데 이 책은 1880년대까지 소학교의 지리교과서로 널리 사용되었다. 따라서 이 세 책의 기본적인 성격은 당시 일본의 공식적인 지리 인식을 보여주는 자료이다. 이들 책에서는 일본이 독도를 자국의 영토라고 인지한 흔적은 어디에도 발견되지 않았다. 아울러 이러한 결과는 1877년 울릉도와 독도를 일본의 영토가 아니라고 결정한 ‘태정관 지령’이 즉흥적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당시 이와 같은 일본 정부의 지리인식도 일정하게 작용했을 것임을 알게 해준다. 그 뿐 아니라 1880년대까지 발행된 문부성 검정 지리교과서를 보면 다케시마와 마쓰시마에 대한 언급이 보이지만 이는 오키의 해상 경계를 설명하기 위해 언급되었을 뿐이었다. 오쓰키 슈지의 『일본지지요략』에는 분명히 일본의 서쪽 경계를 오키라고 설명하고 있다. 1890년대 이후의 지리교과서에는 아예 다케시마와 마쓰시마에 대한 언급도 사라진다. 독도를 인지하지 못했던 것은 당시 일본의 대표적인 지리학자들도 마찬가지였다. 1905년 독도를 시마네 현에 귀속시킨 것에 대해서 주인이 확실하지 않은 섬이어서 일본이 영토화했다는 인식을 보였다. 그 후가 되어서야 일본의 지리교육에는 독도를 새롭게 얻은 신영토 ‘다케시마’로서 인식하고 교육하기 시작했다. 이상과 같이 1905년 이전에 일본이 독도를 자국의 영토로 인식하지 않았던 점은 근대 일본의 관찬지지 및 문부성 승인 지리교과서에서도 증명되는 사실이다.

Abstract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claim that Japan has already recognized Dokdo as Korean territory, through investigating both official documents of geography edited by Japan government and geography textbooks approved by Japanese board of education, particularly focusing on analyzing Dokdo-related description found in those documents and textbooks. First of all, based on 『Nihon Chishi Teiyo (Summary of Japanese Geography;日本地誌提要)』(1874), published by Dajō-kan Seiin, Meiji government, a geography textbook, 『Nihon Chishi Ryaku (Digest of Japanese Geography; 日本地誌略)』, was published by Japanese board of education. Moreover, the one who led the publication of 『Nihon Chishi Ryaku』 was Otsuki Shuji (大槻修二), who later published 『Nihon Chishi Yōryaku (Salient Points of Japanese Geography, 日本地誌要略)』 in 1875 which had been widely used as a geography textbook in elementary school by 1880s. To sum up, these three books are the resources that clearly verifies they were official documents of Japan’s Dokdo recognition. The evidence of Japan’s recognition that Dokdo was Japan’s territory was no where to be found. Moreover, it suggest that ‘Dajō-kan Directive’ in 1877, deciding that Ulleungdo and Dokdo were not Japan’s territory, was not made on impulse but it was made by Japan government’s constant recognition of Dokdo at that time. On top of that, geography textbooks published by Japan board of education until 1880s provided that even though there was a mention regarding Takeshima and Matsushima, it was used as one to explain only sea boundary of Oki. Clearly, west boundary of Japan was said to be Oki by Otsuki Shuji’s 『Nihon Chishi Yōryaku (Points of Japanese Geography, 日本地誌要略)』. Moreover, the mention of Takeshima and Matsushima was not found at all in geography textbooks published after 1890s. Not being able to recognize Dokdo was alike among Japanese representative scholars of geography at the time. Regarding reverting Dokdo to Shimane, Japan showed its opinion that Dokdo’s owner was not so clear that Japan territorialized it. only after this recognition, Japanese geograpy education recognized and educated Dokdo as a newly gained land, ‘Takeshima’. To summarize, the fact that Japan did not recognize Dokdo as its territory until 1905 was verified in modern Japanese documents and textbooks of geography, approved by Japanese board of educ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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