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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초 쓰시마(對馬)ㆍ이키(壱岐)ㆍ히젠(肥前) 지역의 피로인 송환에 관한 한 고찰 -1400년대 피로인 송환자(=일본의 통교자)의 증가 배경과 관련하여-

A Study on the Repatriation on ‘PIROIN’ meaning Captives in the Tsushima, Iki, and Hizen Regions in Early Chosun dyna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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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기타인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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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말선초 피로인 송환에 관한 연구는 현재 미진한 상황이다. 그런데 최근의 왜구 연구는 왜구 문제를 당시 일본의 남북조 내란과의 관련 속에서 파악하였다. 이에 피로인 송환 연구도 조일(朝日) 관계 속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시각에서 본고에서는 고려 말 왜구의 실체 중 하나인 쇼니씨(少貳氏), 그리고 그의 휘하 세력이었던 소씨(宗氏)ㆍ마쓰라토(松浦黨)가 지배하던 쓰시마(對馬)ㆍ이키(壱岐)ㆍ히젠(肥前) 지역의 피로인 송환에 관해 본격적으로 검토하였다. 이들 지역에서는 1400년대부터 피로인 송환이 대거 시작되었다. 본고에서는 그 배경에 대해 규슈 지역의 정세와 연관 지어 검토하였다. 특히 정종 원년(1399) 7월 1일에는 쓰시마의 도주 소 사다시게(宗貞茂)가, 같은 달 10일에는 오우치 요시히로(大内義弘)가 조선에 서계를 보냈는데, 필자는 그들이 조선에 서계를 보낸 ‘시점’에 주목하여 살펴보았다. 1398년부터 막부에서는 요시히로를 토벌하기 위해 갖가지 풍설을 유포하였는데, 실제로 1년 후 요시히로가 막부를 상대로 난을 일으키는 오에이의 난(應永の亂)이 일어나게 된다. 쇼군은 요시히로 토벌을 위해 당시 막부의 적대 세력이었던 소 사다시게의 주군인 쇼니 사다요리(少貳貞頼)를 치쿠젠(筑前)의 슈고(守護)로 환보(還補)시킨다. 이렇게 사다시게는 자신의 주군과 함께 막부 세력 하에 들어가게 되고, 정종 원년 7월 1일 공권력(=막부)을 배경으로 왜구의 금지를 조선에 맹세하고 있었다. 반면 같은 달 10일 요시히로는 세계(世系)와 토전(土田)을 조선에 요청한다. 이것이 오에이의 난이 일어나기 3개월 전이라는 사실에서, 요시히로는 도피처 내지는 배후로 조선을 선택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 두 서계가 조선에 도착한 이후부터 쇼니씨의 지배하에 있던 쓰시마ㆍ이키ㆍ히젠 지역의 통교자들이 대거 조선에 도래하기 시작한다. 즉 정종 원년은 조일 통교의 획기(劃期)였으며, 결국 일본 규슈의 정세 변화가 조일 통교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Abstract

Research on the repatriation of captives(piroin, 被擄人) is currently poorly researched. However, a recent study of Pirates(Waegu, 倭寇) found that the act of invasion of the pirate was related to Japan’s north-south civil war at the time. Therefore, studies on the repatriation of captives should also be studied in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Chosun and Japan. This study reflected the results of recent Pirates studies. The reality of pirates at the end of Koryo was the Shouni family(少貳氏), and this study is about the repatriation of captives from the Tsushima(對馬), Iki(壱岐), and Hizen(肥前) regions under his control. In these regions, the repatriation of captives began in the 1400s. The study examined the background in connection with the situation in the Kyushu region of Japan. In particular, on July 1, 1399, Tsushima’s Sou Sadashigae(宗貞茂), and on the 10th of the same month, Oouchi Yoshihiro(大内義弘) sent a letter to Chosun. The study focused on why they sent the letter at the time. In Japan in October 1399, Oouchi Yoshihiro rebelled against the shogunate. The Shougun(將軍) re-appointed Shouni Sadayori(少貳貞頼) as Shugo(守護) of Chikuzen(筑前) to conquer Yoshihiro. Thus, Sadashige entered under the forces of the shogunate with his superior. On July 1, 1399, against the backdrop of public power(=shogunate), he confidently promised the Chosun that he could prevent pirates from invading in the future. On the 10th of the same month, Yoshihiro asks The Chosun for genealogy and land that proves that he is descendants of Baekje. It is noted that this was three months before Yoshihiro’s rebellion. In other words, Yoshihiro made such a request by choosing Chosun as an escaping or behind request in case he was defeated in the rebellion. Since these two letters arrived in Chosun, the Japanese people of the Tsushima, Iki, and Hizen regions, which were under the control of the Shouni family, began to come to Chosun. In the end, the change in the situation in Kyushu, Japan, was affecting the Chosun-Japan exchan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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