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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근세 일본인의 조선에 대한 경계인식 고찰

A Study on Japanese cognition of boundary sector about Joseon in the Medieval age and the Modern 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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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역사학

초록

중근세 일본의 ‘경계영역’은 고려・조선과의 교역이나 왜구 활동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곳이었다. 이곳은 인적・물적 유통의 중심지이며, 아울러 왜구의 근거지이기도 하였다. 따라서 중세 일본인이 인식하는 ‘경계영역’의 범위는 대마도・壹岐・松浦 지역을 포괄하는 北九州 지역과 大隅를 포함하는 南九州 지역이었다. 고려시대 일본의 ‘경계영역’에서 상당수의 일본인이 고려에 들어와서 생활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들은 고려를 약탈하는 왜구로 둔갑하는 경우가 많았다. 따라서 이들은 일본에서는 ‘경계영역’의 일본인이었지만, 고려에서는 약탈을 자행하는 왜구로 취급당하는 존재였다. 조선은 고려와 마찬가지로 거주를 희망하는 ‘경계영역’의 일본인을 적극적으로 수용해 나갔다. 이러한 조선이 유화정책을 실시하는 과정에서 조선에 대해 갖는 대마도인의 경계인식에 변화를 주는 계기가 대마도 정벌(己亥東征)이었다. 조선의 대마도 정벌은 은혜를 잊고 배반한 대마도인을 질타하기 위한 군사적인 정벌이었다. 그 외에도 대마도에 대해서 조선의 영토인식을 공고히 하려는 의도도 있었다. 한편 15세기 초 조선과 무로마치 막부가 안정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그리고 조정과 막부라는 최상위의 중앙권력이 하달하는 문서는 강력한 집행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따라서 조선과 宗貞盛 사이에 오고 간 문서는 중요한 의미를 내포되어 있었다. 이런 점에서 조선의 문서에서 보이는 대마도 속주화는 조선의 국왕의 명령에 따라 주종관계가 형성된 속주화였다. 이것은 이제까지 일본의 ‘경계영역’에 속하던 대마도가 조선의 ‘경계영역’으로 탈바꿈하는 중대한 결정이었다. 이것은 대마도인을 적극 수용하여 대마도를 속주화하고, 대마도를 조선 중심의 ‘경계영역’으로 끌어들인 조선 외교전략의 큰 성과였다. 다른 면에서 대마도인은 일본의 ‘경계영역’에서 자유로운 활동성을 보장받고 있었지만, 조선에서의 일본인은 항상 감시당하고 통제받는 존재였다. 따라서 일본인에게 있어서 조선은 일본 안의 자신들의 삶의 터전과는 사뭇 다른 편견과 차별이 존재하는 불평등한 삶의 공간이었다. 조선에서 거주가 허가되었지만, 대마도인에게 조선은 삶이 부자유스런 ‘異域’이었다.

Abstract

Japanese in the Medieval age and the Modern age regarded Japanese Islands as Kiyome space, boundary sector, and Kekare space. Also, Japanese understood the boundary sector between Kekare and Kiyome as Kiyome space. The boundary sector in Japan is a space which distinguished the inner and the outer of frontier and a wide space which has a form of loop. Then, men and goods came and gone and Wakou worked in the boundary. Therefore, the boundary sector that Japanese in the Medieval age and the Modern age thought is Tsusima, Ikisima, North Kusu, South Kusu, Seto inner sea. The habitants in these areas plundered at Kekare space(=Frontier) across the sea. Joseon was a frontier that Japanese came and gone freely. But Japanese worked not freely in Joseon as in the boundary sector. Because Joseon could conciliate and control Japanese. Also, Japanese was discriminated in Joseon and Joseon was an uncomfortable frontier for Japanese. Therefore, Japanese regarded Joseon as a foreign land different from the boundary sec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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