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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종 원년(1399) 등시라로(藤時羅老) 왜구 집단의 투항과 오에이(応永)의 난 -왜구 투항에 관한 ‘조선 조정의 회유책’론에 대한 비판적 검토-

The Surrender of ‘Deung Siraro’ Waegu Group and the Ouei War in 1399: A Critical Review on the Prevailing Argument for ‘the Joseon Government’s Appeasement Policy’ regarding the Waegu Surrend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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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역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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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9년(정종1) 11월 등시라로(藤時羅老) 왜구 집단이 갑자기 조선 조정에 투항해 왔다. 그 배경에 관하여, 『정종실록』은 이를 명확하게 ‘오우치 요시히로(大内義弘)의 삼도지적(三島之賊) 토벌로 인한 화를 두려워해서’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 사료 해석에 관하여 1960년대 강상운과 다무라 히로유키(田村幸洋)의 선구적 연구들이 있었지만, ‘조선 조정의 회유책’론을 중심으로 한 기존 통설에서는 그 이후 아무런 반향이 없었다. 본 연구에서는 우선 14세기 말 조선, 오우치씨, 대마도 간 상호 관계를 정리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정종실록』에서 말하는 ‘오우치 요시히로의 삼도지적 토벌’은 1399년 10월~12월에 있었던 오에이(応永)의 난, 즉 오우치 요시히로가 일본 막부에 대항하여 일으킨 전국적인 모반 사건과 관련 있음을 밝혔다. 그리고 등시라로 왜구가 두려워했던 ‘화’란 우선, 오우치씨가 북규슈에서 진행 중이던 쇼니씨(少弐氏)・소씨(宗氏)에 대한 공세를 강화함으로써, 대마도 세력이 이에 크게 패할 것이라는 위기감을 의미한 것이었다고 보았다. 이러한 해석에 더하여, 대마도 세력 및 등시라로 왜구는, 오우치 요시히로가 조선 조정에게 대마도를 협공하자고 제안해 올 개연성을 크게 보고 그 경우 본거지 대마도에 초래될 극심한 위기를 우려했다는 취지의 시론(試論)도 제시했다. 등시라로 왜구의 근거지였던 대마도에서는 1399년 당시, ① 불과 10년 전인 1389년(창왕1) 조선의 대마도 정벌에 관한 괴로운 기억이 남아 있었고, ② 조선-오우치씨 간 돈독한 관계 속에서 지리적으로 사이에 낀 지정학적 상황에 있었으며, ③ 오우치씨와의 격렬한 전쟁 상태가 지속되고 있었다. 대마도 측은 이러한 상황 인식을 바탕으로, 오에이의 난을 일으킨 오우치씨와 조선이 협공해올 가능성을 두려워했다. 그리고 이러한 두려움이 등시라로 왜구의 투항 배경이 되었다고 추측한다. 그 시기는 다르지만 실제로, 대마도가 이와 유사한 여건 속에 있었던 1430년대에, 오우치씨 당주 오우치 모치요(大内持世)가 조선에게 대마도 협공을 제안하려 했었다는 『세종실록』 기록이 이러한 필자의 시론을 뒷받침해 준다. 조선초 한반도에 침구했다가 투항한 왜구 집단 중 그 규모 면에서 여타 왜구보다 월등히 컸던 대표적 집단은 나가온(羅可溫) 및 등시라로 집단 등 두 개였다. 이 두 왜구 집단은 모두 조선 조정의 대마도 정벌로 초래될 위기에서 벗어나고자 조선 조정에 투항해 왔다. 즉 조선초 대규모 항왜 발생의 배경에는 왜구 근거지인 대마도를 토벌하려는 조선 조정의 강력한 의지 및 실행력, 그리고 왜구의 근거 세력인 쇼니씨・소씨 토벌에 열중했던 일본 오우치씨와 조선 조정이 유지해 온 돈독한 통교 관계가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여기에 기존 통설에서 말하는 ‘조선 조정의 회유책’은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기존 통설인 ‘조선 조정의 회유책’론, 그리고 이에 근거한 조선초 항왜・향화왜인에 관한 연구는 근본적으로 재검토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Abstract

In November 1399, ‘Deung Siraro (藤時羅老)’ group of Waegu (倭寇, Wakou, Japanese Pirates) suddenly surrendered to the Joseon government. The Veritable Records of King Jeongjong explicitly attributes this event to the Waegu’s “fear of a disaster instigated by the punitive expedition led by Ouchi Yoshihiro (大内義弘) against the ‘Samdojijeok (三島之賊 ; pirates of the three islands)’”. While the two pioneering studies by Kang Sang-woon and Tamura Hiroyuki, respectively, in the 1960s addressed this historical record, the prevailing view for the ‘appeasement policy of the Joseon government’ has made no notable reaction upon it. This study begins by elucidating the inter-relations among Joseon, the Ouchi clan and Tsushima in the late 14th century. Based on this analysis, it highlights the connection between the punitive expedition against ‘Samdojijeok’ by Ouchi Yoshihiro and the Ouei War that occurred from October to December 1399. Additionally, it suggests that “the disaster feared by the ‘Deung Siraro’ Waegu group” meant their sense of crisis for a big defeat of Tsushima power from the Ouchi clan's intensified attacks against the Shouni and So clans (少弐氏・宗氏) in northern Kyushu. Furthermore, this study presents a hypothesis suggesting that the Tsushima power and ‘Deung Siraro’ Waegu feared the Ouchi Yoshihiro‘s probable proposal to the Joseon government for a pincer attack on Tsushima, which would result in severe repercussions for their home territory. The understanding of this context is supported by (i) Tsushima’s traumatic memories of Joseon's campaign against it in 1389, (ii) the unfavorable geopolitical situation of Tsushima exposed to the close relations between Joseon and the Ouchi clan, and (iii) the ongoing conflict between Tsuchima and the Ouchi clan. This paper conjectured that such fear by the ‘Deung Siraro’ Waegu group led them to the surrender. While the time period differs, records from the Veritable Records of King Sejong support the above hypothesis by noting that, during the 1430s, Ouchi Mochiyo (大内持世), the lord of the Ouchi clan, attempted to propose the Joseon government for a pincer attack on Tsushima. Among the Waegu groups who invaded the Korean Peninsula and surrenderd during the early Joseon period, two prominent groups stood out in terms of their size: the Nakaon (羅可溫) group and the ‘Deung Siraro’ group. Both groups surrendered to the Joseon government to escape the imminent threat posed by Joseon's campaign to subdue Tsushima. Hence, it can be said that the large-scale surrenders by the Waegu groups during the early Joseon period were driven by Joseon's strong determination and capability to subdue Tsushima, as well as the enduring friendly relations between Joseon and the Ouchi clan who endeavored for subduing Shouni and So clans which were the main base of Waegu. In the event of such Waegu’s surrenders, the notion of ‘Joseon government's appeasement policy’ as posited in the prevailing view, is not evident. In light of these considerations, the prevailing view for the Joseon government's appeasement policy, as well as the study on the surrendered Waegu and the naturalized Japanese in the early Joseon period, should be fundamentally reasses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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