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으로서의 언어학’이라는 난점 - 1930년대 홍기문의 언어 연구 검토
Difficulties in 'Linguistics as Science' - Review on Hong Gi-mun's language studies in the 1930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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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홍기문은 1930년대 자신이 근무하던 조선일보에 우리 말이나 글과 관련된 글을 이십여 편 발표한다. 대개 짧아도 5~6회, 길면 20회가 넘어가는 장편의 연재물로 학술논문을 방불케 하는 글들이었다. 1930년대는 조선어학회와 조선어학연구회가 치열하게 대립하던 시기이고 관련 논의에 참여하는 사람은 어느 한쪽의 입장에 힘을 실어주는 것이 자연스러웠던 때이다. 그러나 홍기문은 언어 연구의 한 학도임을 자임하면서도 끝내 어느 쪽의 손도 들어주지 않았다는 점에서 예외적인 인물이라 하겠다. 당시의 논의 지형에서 홍기문이 차지하는 이러한 독특한 위상은 기존에도 검토된 바 있다. 그러나 몇몇 단편적인 글을 토대로 그가 특정한 진영으로 분류하기 어려운 인물이라는 점을 드러내는 데 그쳤을 뿐 그의 언어 연구가 당대의 상황 속에서 어떤 의미를 가진 것이었는지를 구명하는 데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이 글에서는 주로 홍기문이 견지했던 언어 연구에서의 ‘과학적’ 방법론이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인가를 검토한다. 이를 위하여 우선 ‘조선학 운동’이라는 당대의 지적 흐름 속에서 그의 언어 연구를 이해할 필요가 있음을 지적하고, 또 그가 역사학이나 문학에서 취한 맑스주의적 관점과는 달리 언어 연구에서의 ‘과학’을 ‘자본 계급’과 연관시키고 있는 것의 의미를 검토하였다.
Abstract
Hong Gi-mun released approximately 20 serials concerning Korean language or words through the ChosunIlbo where he was working in the 1930s. Some short stories have 5-6 episodes while long serials have more than 20 episodes which remind of an academic journal. In the 1930s, there was a serious confrontation between Joseoneohakhoe(Joseon Language Society) and Joseoneohakyeonguhoe(Joseon Language Research Institute), and it was easy and natural to see panelists backing up a particular contention. However, Hong Gi-mun was different in that he stayed neutral all the time even though he regarded him as a linguistics scholar. In fact, his unique and different standpoint on the topography of argument fields was reviewed in previous studies. However, these conventional papers just mentioned that he was a kind of figure who was hard to be categorized under a particular side. In other words, they failed to figure out the meaning of his linguistic studies at that time. Therefore, this study primarily investigates the significance of Hong Gi-mun's 'scientific' methodology in his linguistic studies. For this, it was needed to understand his studies, considering the general trends at that time so-called 'Movement for Korean Studies.' In addition, this paper analyzed what his focus on the connection between 'science' and 'capitalist class' means unlike the Marxist standpoint he advanced in history or litera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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