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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예술연구회 <앵화원> 공연의 특성과무대 형상화에 관한 연구

A Study on the Characteristics andStage Performance of 〈Vishnyovyi sad〉 Produced by Geugyesuryeonguho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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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기타인문학

초록

1934년 12월 극예술연구회는 제7회 정기 공연으로 안톤 체호프의 〈앵화원〉을 공연하였다. 일찍부터 ‘서구 근대극의 교과서’로 인정되어 오던 이 4막의 장막극은, 홍해성에 의해 연출되었다. 홍해성은 1929년까지 일본에서 〈앵화원〉의 공연에 배우로 출연한 바 있었고, 1930년에는 〈앵화원〉을 국내에서 연출한 바 있었다. 그런데 지금까지 〈앵화원〉에 대한 연구는 극예술연구회의 공연사 연구를 중심으로 진행되었기 때문에, 1934년 당시 공연 상황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진 바가 없었다. 이러한 연구상의 한계로 지금까지 〈앵화원〉 공연 정황은 막연하게 짐작되고 있을 따름이었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하여, 이 연구에서는 〈앵화원〉 공연 시 제1~4막의 무대를 복원하고자 했고, 이를 통해 연극적・무대적・공연적 정황을 최대한 실증하고자 했다. 비록 제한된 자료이기는 하지만, 이러한 학문적 시도를 통해 극예술연구회의 〈앵화원〉의 실제 공연 상황과 무대디자인에 대해 진전된 논의를 이끌어낼 수 있었다. 앞으로도 〈앵화원〉의 의미와 가치를 실질적으로 살펴보기 위해서는 이러한 공연에 대한 재구가 요구된다고 하겠다.

Abstract

In December 1934, Geugyesuryeonguhoe performed 〈Vishnyovyi sad〉 by Anton Chekhov as the 7th regular performance. This four-act curtain play which has been recognized as the ‘textbook of modern Western drama’, was directed by Hong Haeseong. Hong Haeseong had appeared as an actor in the performance of 〈Vishnyovyi sad〉 in Japan until 1929, and had directed 〈Vishnyovyi sad〉 in Cheoseon(Korea) in 1930. However, studies on 〈Vishnyovyi sad〉 were conducted mainly on the performance history of Geugyesuryeonguhoe, and as a result little was known about the state of the performance in 1934 until now. Due to the limitations of these studies, the circumstances of the performance of 〈Vishnyovyi sad〉 were only vaguely guessed until now. To overcome this limitation, this study tried to restore the stage of Acts 1 to 4 during the performance of 〈Vishnyovyi sad〉, and to demonstrate theatrical, stage, and performance situation as much as possible. Although it is a limited clue, this academic attempt was able to lead to an advanced discussion about the actual performance situation and stage design of 〈Vishnyovyi sad〉 produced by Geugyesuryeonguhoe. In the future, it is believed that reconstruction of these performances is necessary to examine the meaning and value of 〈Vishnyovyi sad〉 practical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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