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西溪 朴世堂의 對淸 禮俗認識

A Study on Seogye Park Sedang's Recognition of Ch’ing's Yeak(禮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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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기타인문학

초록

박세당은 1668년에 동지사 서장관 자격으로 사행에 나섰다가 두 종류의 연행록을 남겼다. 이 시기는 명청 간의 왕조 교체기이면서, 또한 병자호란이 발발한 지 32년만인 특수한 시점이었다. 이에 조선사회는 춘추의리론에 기반한 명분론적 대명관을 견지하는 논리로써, 새로운 국제질서에 적응해 가려 부심하였다. 비록 미세한 차이는 있으되, 명분론적 대명관은 박세당 역시 결코 예외일 수가 없었다. 이제 박세당은 연행 기간 동안에 대청 점국(覘國)에도 주력하였던바, 이는 자신의 현실주의적 대외노선 형성과도 연관되어 있다. 따라서 청조의 풍속과 예악 방면에 관한 박세당의 시선을 추적해 볼 필요가 있다. 박세당의 대청 풍속인식은 주로 문교(文敎)와 유속(儒俗)을 중시하는 성향을 보여 준다. 이에 그는 용도가 변경된 학교와 방치된 사우(祠宇) 등에 큰 관심을 표명하곤 했다. 도덕과 문화의 잣대로 청조의 풍속을 주시했던 박세당은, 특히 의관과 체발 문제 등에 대해서 심각한 문화적 이질감을 느꼈다. 또한 탐사한 한속(漢俗)과 거짓말 농간을 부렸던 관리 등도 관찰의 대상이었다. 결국 박세당이 바라본 청조의 풍속은 성적(聖跡)과 유풍이 민멸된 야만스러운 그것이었다. 이는 ‘진(塵)’이라는 기호로 압축될 수 있다. 한편, 청조의 예악 문화에 관한 박세당의 인식 또한 매우 부정적이었다. 사절단을 함부로 막 대했던 관리배와 상하 품계가 무시된 듯한 청조의 예수(禮數)는 비감과 한탄을 자아내게 하였다. 또한 박세당은 낯선 배고(拜叩)를 몇 번씩이나 반복하면서, 내심으로는 취한 듯 무심한 천도를 원망하곤 했다. 더불어 원일 정조(正朝) 시에 목격한 강희제의 첫 일정과 사치스러운 기물(器物)들 또한 중요한 관찰거리였다. 특히 전투 장면을 형상화한 희극은 아정(雅正)을 지향하는 유가의 예술적 품격을 심히 일탈하고 있었다. 결국 박세당은 청조의 풍속 관찰에 이어서, 예악 문화에 대해서도 극히 부정적인 대청인식을 형성해 가고 있었다.

Abstract

Seogye Park Sedang, who had been dispatched to Ch’ing as an envoy in 1668, wrote two books called Yeonhangrok(燕行錄). One of them is Seogyeyeonrok(西溪燕錄, the record of his travel in Peking). In this study it has been attempted to find out his recognition of Ch’ingng through Seogyeyeonrok and related records. As a matter of course, this attempt means one of the processes of finding out his general outline of Ch’ing. As the result, it can be found out tha this recognition of Ch’ing was molded very negatively by Ch’ing's ceremonies and customs(禮俗)., The classical school changed the purpose and messy shrines brought the negative image symbolized Jin(塵 the dusty world ) to him. He especially felt a severe cultural heterogenous sense by full court dresses and tonsures(剃髮) of Ching's people. Moreover, He had much negative recognitionof Ch’ing's Yeak(禮樂). He would deplored the scenes that impolite officials were acting entirely unmindful of the order of rank. He had doubts and a surprise about the Emperor of Ch’ing's(淸帝) schedule, using gorgeous and luxurious implements at New Year's Day. The play formed into a combat didn't look elegant at all at the banquet held by the Emperor(賜宴). After all, with the tea scorched and sickening smell at the banquet, he thoughtCh’ing's Yeak to bebarbarous like a bloody sight(腥塵). According to his observations onCh’ing's Yeak andcustoms, he also thought the Heavenly Way(天道) inCh’ing to be involuntary under the influence of liqu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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