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하대초기의 왕위계승과 태후의 역할
A Study on the Role played by the Empress Dowager in the succession struggle in the Early Part of Late Shilla Dynasty
0
조회
0
다운로드
4
인용
0
참고문헌
키워드
초록
신라 하대초기의 왕은 즉위 직후에 종묘제와 태자제를 통해 부계적 정통성을 수립하고자 하였다. 이는 왕의 수직적 계통성을 수립하여 부계적 정통성을 천명하고, 왕위의 정당성을 확립하기 위한 것이었다. 원성왕 사후에 적손인 준옹이 소성왕으로 즉위하고, 이어서 소성왕의 아들인 애장왕이 즉위하였는데, 이는 적자계승원리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헌덕왕이 애장왕을 시해하고 즉위하고, 흥덕왕은 헌덕왕의 동모제로서 왕위를 계승함에 따라 왕위의 적자계승원리를 적용할 수 없게 되었다. 또한 흥덕왕의 사후에는 왕위계승분쟁이 일어났는데, 이는 적자계승의 왕위계승원리가 실질적으로 이루어지기 어렵게 되자 발생한 것이었다. 하대초기의 왕은 모두 원성왕계이고, 이들 중 소성왕, 애장왕, 헌덕왕, 흥덕왕, 민애왕은 인겸계이고, 희강왕, 신무왕, 문성왕, 헌안왕은 예영계이다. 하대초기의 왕위계승분쟁은 왕위의 정통성과 연관된 사안이었다. 왕의 부계적 정통성이 차별화되지 않을 경우에는 모계, 즉 태후의 출신과 지위가 중요하게 작용하게 된다. 혜충대왕(인겸)-성목태후의 자녀는 소성왕, 헌덕왕, 흥덕왕, 충공이다. 헌덕왕, 흥덕왕, 충공은 동모형제(同母兄弟)의 혈연적 결연을 매개로 왕실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였다. 성목태후가 지닌 태후이자 대비로서의 위상은 인겸계의 구심점이 되었던 것이다. 또한 차기왕위계승권자인 태자가 부재할 경우, 왕위계승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존재는 선왕의 부인, 즉 태후이다. 귀승랑은 헌덕왕의 왕비로, 흥덕왕 사후에 왕위계승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태후였다. 즉 흥덕왕 사후에 예영계 간의 왕위계승분쟁이 야기되었던 것은 예영계인 귀승랑이 태후로서 차기 왕위계승권에 간여한 결과였다. 이처럼 하대초기는 왕위계승분쟁이 치열했던 만큼 부계 못지않게 모계 및 처계도 중요하였다. 왕위가 부자로 계승되지 않은 경우에 왕위의 정통성과 왕권의 정당성이 부족하였다. 이와 같은 경우에 왕은 즉위 직후에 그의 부모를 추봉함으로써 왕위의 정당성을 확보하고자 하였다. 하대초기에 원성왕계 간의 왕위계승분쟁은 부계적으로 동일하므로 상대적으로 모계 및 처계의 위상이 중요해졌다. 또한 하대에 당의 제도에 대한 이해가 더욱 심화되었고, 이는 왕실여성, 특히 태후의 지위와 역할을 강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Abstract
In the Early Part of Late Shilla Dynasty, the Royal Ancestral Shrine System and system of the Crown Prince were used to establish legitimacy. Soon after the king was crowned, parental status increased. These practices were to establish the orthodox system of the king and declare the legitimacy of the throne. After the king dies, in the absence of a clear successor prince, the widow of the dead king, the Empress Dowager, plays an influential role in deciding on succession. In the aftermath of King Heungdeok(흥덕왕) 's death, there was a struggle for the throne. The war for the throne after King Heungdeok(흥덕왕) was the result of the role of King Hundeok(헌덕왕)’ queen, Gwiseung(귀승). After the death of King Heung-deok, she selected the next king among various candidates, leading to conflict over the throne. Thus, in the early days of Late Shilla as the struggle over succession grew fierce, Matrilineal kinship became as important as Patrilineal kinship. This led to an undermining of the legitimacy of the throne and the legitimacy of the kingship system. As the royal succession process changed, so the status and role of the Empress Dowager, the queen, became important, resulting in a strengthening of the status of royal women.
참고문헌 (44)
- "三國史記", ~
- "三國遺事", ~
- "後漢書", ~
- 김수태, "新羅中代政治史硏究" (1996), 일조각
- 김창겸, "신라 하대 왕위계승 연구" (2003), 경인문화사
- 권영오, "신라 하대 정치사연구" (2011), 혜안
- 백남운, "朝鮮社會經濟史" (1933), 改造社
- 신정훈, "8세기 신라의 정치와 왕권" (2010), 한국학술정보
- 申瀅植, "韓國古代史의 新硏究" (1984), 일조각
- 이기백, "新羅政治社會史硏究" (1974), 一潮閣
- 李基東, "新羅骨品制社會와 花郞徒" (1984), 一潮閣
- 李德星, "朝鮮古代社會硏究" (1949), 正音社
- 이문기, "신라 하대 정치와 사회 연구" (2015), 학연문화사
- 李明植, "新羅政治史硏究" (1992), 螢雪出版社
- 末松保和, "新羅史の諸問題" (1954), 東洋文庫
- 井上秀雄, "新羅史基礎硏究" (1974), 東出版
- 西嶋定生, "中國古代國家と東アジア世界" (1983), 東京大學出版會
- 金慶浩, "阜村申延澈敎授停年退任紀念史學論叢" (1995), 일월서각
- 김병곤, "신라 헌덕왕대의 副君 秀宗의 정체성과 太子", 동국사학, (55), pp.183~223 (2013), 동국역사문화연구소[DOI]
- 김창겸, "신라 승려 心地연구: 삼국유사 심지계조와 관련하여", 신라문화제학술발표논문집, 34 (2013)
- 李基東, "新羅下代의 王位繼承과 政治過程", 歷史學報, 85 (1980)
- 尹炳喜, "新羅下代均貞系의 王位繼承과 金陽", 歷史學報, 96 (1982)
- 文暻鉉, "神武王의 登極과 金昕" (1992), 아세아문화사
- 선석열, "신라 헌덕왕대의 정치과정과 정교부인의 혼인 문제", 신라문화, 48(48), pp.171~194 (2016), 신라문화연구소
- 손흥호, "9세기 전반 신라의 정치동향과 충공의 역할", 한국고대사연구, (83), pp.301~334 (2016), 한국고대사학회
- 李基東, "新羅下代의 王位繼承과 政治過程", 歷史學報, 85 (1980)
- 이기동, "新羅興德王代의 政治와 社會", 국사관논총, 21 (1991)
- 이정란, "고려 전기 太后의 이념적 지위와 ‘太后權’의 근거", 사학연구, (111), pp.191~228 (2013), 한국사학회
- 이재환, "新羅 眞骨의 ‘家系 分枝化’에 대한 재검토-사위의 왕위계승권을 중심으로-", 대구사학, 127, pp.79~115 (2017), 대구사학회[DOI]
- 이현주, "신라 중대 왕후의 책봉과 위상 정립", 역사와 현실, (95), pp.225~267 (2015), 한국역사연구회
- 이현주, "신라 중대 王母의 칭호와 위상- 혜공왕대 만월태후를 중심으로 -", 한국고대사연구, (85), pp.415~445 (2017), 한국고대사학회[DOI]
- 이현주, "신라 하대초기 왕실여성의 책봉과 의미", 신라사학보, (42), pp.363~399 (2018), 신라사학회
- 이현주, "신라 종묘제의 변천과 태후", 사림, (66), pp.165~190 (2018), 수선사학회[DOI]
- 尹炳喜, "新羅下代均貞系의 王位繼承과 金陽", 歷史學報, 96 (1982)
- 윤경진, "신라 興德王代 체제 정비와 金庾信 追封 ― 三韓一統意識 출현의 일 배경 ―", 사림, (52), pp.105~142 (2015), 수선사학회
- 이승현, "新羅의 東宮制度", 한국고대사연구, (55), pp.213~251 (2009), 한국고대사학회
- 조범환, "新羅 下代 憲德王의 副君 설치와 그 정치적 의미", 진단학보, (110), pp.31~54 (2010), 진단학회
- 주보돈, "新羅 下代 金憲昌의 亂과 그 性格", 한국고대사연구, (51), pp.233~279 (2008), 한국고대사학회
- 황수영, "신라민애대왕석탑기-동화사 비로암 삼층석탑의 조사", 사학지, 3 (1969)
- 홍승우, "헌덕왕대 太子妃 貞嬌와 태자", 신라문화, 51, pp.171~196 (2018), 신라문화연구소[DOI]
- 尾形勇, "中國古代における帝位の繼承-その正當化の過程と論理", 史學雜誌, 85(3) (1976)
- 西嶋定生, "榎博士還曆記念東洋史論叢" (1975), 山川出版社
- 谷口やすよ, "漢代の皇后權", 史學雜誌, 87(1) (1978)
- 谷口やすよ, "漢代の太后臨朝", 歷史評論, 359 (198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