仁祖 즉위 이후 권력장악과 인목대비의 위상
King Injo’s Domination over Power after His Enthronement and the Status of Queen Dowager Inm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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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인조는 거사 직후 즉위 과정에서부터 인목대비의 지지를 얻어 권력장악의 정당성을 확보하려 했다. 먼저 인조는 인목대비와 명 황제에게서 책봉을 받아야만 했다. 명 황제로부터 받는 책봉에서조차 인조는 인목대비의공식적인 奏請 없이는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즉위 이후 인조는 광해군 10년(1618)에 있었던 폐모논의를 기준으로 인사 및 처벌을 진행하고 이를 통해 권력을 장악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이는 간접적으로으로는 인목대비의 명예를 復權하는 일이기도 했다. 인조는 인목대비의 지위를 회복함으로써 곧 자신의 통치를 정당화하려 했다. 인조는 거사는 물론 즉위 이후의 통치과정에서 인목대비와의 관계에 주의를 기울임으로써 권력의 입지를견고히 할 수 있었던 것이다.
Abstract
This study aims demonstrating how King Injo(인조) had brought up the support from Queen Dowager Inmok(인목대비) and made the best use of it after dethronement of Kwanghaegun(광해군). It reflects the foundation of power that Injo had based on and its trait. Having accomplished the enthronement, Injo tried to signify the past argument in 1618 in which Queen Dowager Inmok had been claimed to be deprived of her title and privileges. He made it a principle to punish severely those who had led the argument. At the same time he also appointed those who had not participated in the argument as his officials. It means the restoration of Inmok’s title and privileges indirectly. Additionally, Injo showed his respect to Inmok by giving new titles and some royal estates for her. The more Inmok’s position grew to be respected, the more Injo became to get his legitimac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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