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江華京板 『高麗大藏經』의 조성사업에 대한 근대 100년의 연구사 쟁점

The issue of study-history about the making-business of the Ganghwa Woodblock(江華經板)-Koryo Tripitaka(高麗大臧經) that was in research during 100 years of moder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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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는 강화경판 『고려대장경』의 조성사업과 관련된 연구 성과물 가운데 연구자들 사이에 아직까지 논의되고 있는 내용을 정리․분석하였다. 특히 연구 내용이나 시각에서 핵심적인 영역인 사업 주체를 중점적으로 진단하였다. 그 시기는 1910년대 일제식민지시대부터 2009년 현재까지로 하였다. 일제시대 이래 기존 연구자들의 대다수는 『고려사』 권 129, 열전 42, 崔忠獻 부 崔沆傳을 비롯하여 제한적인 자료와 최씨무인정권이라는 정치 현실을 고려하여 사업의 주체를 최이-최항 부자로 확정하였다. 이 견해는 1970~1990년대 한국학 연구자들에게 보편적인 사실처럼 자리매김하였다. 아직도 일부의 연구자나 전문백과사전류에는 그대로 인용되고 있다. 이러한 해석 방식은 몇 가지 문제를 가질 수 밖에 없다. 우선, 조성사업의 불교 문명적인 가치와 史實을 객관적으로 정립하는데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다. 또한 연구 내용이나 영역의 제한 및 시각의 편향성을 낳게 하고 있다. 그리고 1990년대 이후부터 새로운 자료를 활용하여 밝히고 있는 사실이나 내용을 논리적으로 뒷받침하지 못한다. 따라서 최씨무인정권 중심의 이해 방식에 대한 극복은 조성사업에 함축된 다양한 史實과 불교 문명적 가치를 객관적으로 파악하기 위한 선행 작업이 될 수 밖에 없다. 당대의 분산된 여러 자료들 및 최근의 연구 성과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대장도감과 분사도감의 운영과 인사 행정을 비롯한 조성사업의 전반은 국왕을 포함한 국가의 공적인 행정조직체계로 운영되었다. 특히 최항 열전에 서술된 그들의 역할도 과대평가되거나 역사적인 사실과 어긋나는 내용이 발견되었다. 그들의 역할은 대개 국왕을 중심으로 하는 국가의 공적인 행정운영 조직체계 속에서 분담하여 수행한데 불과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조성사업은 국가의 공적인 행정운영 조직체계가 적극 개입되고 있었다고 할 것이다. 이러한 견해는 조성사업의 연구 영역을 확대시키고 그 역사적 의미나 불교 문명적 가치를 객관적으로 해명할 수 있는 기반이 될 것이다.

Abstract

This case study aimed at analysis of a study-history about a making-business of the Ganghwa Woodblock(江華經板)-Koryo Tripitaka(高麗大臧經) that was in research during 100 years of modern. In particular, the issue was focused about the principal of making-business. The period is from 1910-era until 2009. From the Japanese-imperialism, the most researchers have argued a opinion that the Choi's(崔氏) soldier-regime(武人政權) was a role as a principal of making-business. Up to now, some of the researchers follow to the opinion. Such a opinion cause a researchers to issue. A researchers was unable to can explain the objective history and Buddhist-civilization that was implied in the making-business of the Ganghwa Woodblock-Koryo Tripitaka. Moreover, the enlargement of a new research-areas and research-perspective was constrained. Therefore, this case study has attempted a new analysis about this opinion. A new analysis follows. The Daejangdogam(大藏都監) there was responsible for the making-business. The Koryo-Dynasty's emperor (高麗國王) and the administrative organization of the Koryo- Dynasty were responsible for a organizational system of this Daejangdogam and the administrative personnel of a making- business. In particular, a role of the Choi's soldier-regime was overestimated, or was different with a historical facts. The role was performed the administrative organization of the making-business. Therefore, the principal of making-business is important to understand the administrative organization of the Koryo-Dyna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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