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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태조대 명장 충절공(忠節公) 유금필(庾黔弼)

Yoo Kum-Pil whose posthumous name was Chungjeolgong, Great Commander of the Koryo Dyna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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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역사학

초록

이 글은 고려의 후삼국 통일 과정에서 최대의 공적을 세운 명장 충절공 유검필의 군사활동에 대해 검토한 글이다. 그의 출신과 후삼국전쟁 기간 중 수행한 주요 군사활동을 기초로 용병술과 장수로서의 자질 등을 중점적으로 검토하였다. 유검필은 평주 출신으로 패강진의 군진세력에서 호족으로 성장한 가문의 후예였다. 그의 선대는 본래 고창군 무장면 무송현에 토착하던 가문이었다. 그러나 8세기 말에 패강진이 설치되면서 평산 지역으로 이주하였고, 이 지역을 기반으로 번성하였다. 유검필은 궁예가 패서지역으로 세력을 확장해오자 자연스럽게 그 정권에 들어가 활동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가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한 것은 왕건이 고려를 건국한 이후부터였다. 유검필은 고려가 건국된 이후 수 많은 전투에 참가하여 매번 승리를 거두었다. 그가 벌인 군사활동은 고려가 건국되는 918년부터 후삼국이 통일되는 936년까지 크게 5개의 시기로 구분해볼 수 있다. 그는 이 기간 동안에 조물성전투, 고창전투, 운주전투, 일리천전투 등 후삼국의 정세 변화에 큰 영향을 끼친 지상전에서 크게 활약하였다. 뿐만 아니라, 그는 수군을 동원한 나주탈환 작전과 후백제왕 견훤의 호송작전에도 참가하여 수훈을 세웠다. 유검필이 참가한 모든 전투에서 승리할 거둘 수 있었던 배경에는 자신의 부대를 굳센 기병력을 자랑하는 ‘勁騎’ 중심의 군사들로 편성하여 조직적으로 운용하였기 때문이었다. 이들 경기는 민첩한 기동력과 우수한 무장력, 강력한 돌파력, 다양한 상황에서의 융통성 있는 전술 구사능력을 두루 갖춘 기병들이었다. 이들은 개별 전투원의 역량은 물론 조직적인 전투에서도 뛰어난 기량을 발휘하였다. 유검필 부대의 경기들은 고려가 건국되던 초창기에는 고려의 기병들이 다수를 구성하였다. 그러나 전쟁 후반기로 접어들면서 전투 양상이 격화되고, 북방 이민족들의 유입이 늘어남에 따라 점차 이들이 다수를 구성하는 형태로 변화되었다. 유검필은 이 부대의 최고 지휘관으로서 임무를 수행하였다. 중견급 지휘관의 임무 역시 고려의 장수들이 수행하였다. 그러나 말단 단위 부대를 이끄는 지휘관의 임무는 대체로 이민족 출신의 인물들이 담당하였다. 우수한 경기의 전투력과 함께, 유검필이 지닌 장수로서의 뛰어난 자질도 승리의 원동력으로 작용하였다. 『고려사』 열전에는 그가 將略을 지닌 인물로 사졸들로부터 인심을 얻었다는 기록이 전한다. 그가 장수로서의 자질을 함양하기 위해 중점적으로 학습한 병서는 육도였다. 그는 육도에서 제시한 勇ㆍ智ㆍ仁ㆍ信ㆍ忠의 덕목을 중시하고 실천하였다. 그가 지휘한 주요 군사활동에는 이러한 덕목을 실천한 사실들이 생생하게 전한다. 그는 자신의 부대를 영솔하는 최고 지휘관의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장수로서 그가 습득한 자질은 예하 장졸들에게 전수되면서 큰 영향을 끼쳤다. 장졸들 역시 그가 중시한 용ㆍ지ㆍ인ㆍ신ㆍ충의 덕목을 적극적으로 실천하였다. 결국 유검필과 그 부대원들의 이러한 노력은 고려가 후삼국을 통일할 수 있는 원동력으로 작용하게 되었다.

Abstract

This article has examined the life and military activities of Yoo Kum-pil, Koryo dynasty's great general who fulfilled the highest achievements in the process of unification of the Later Three Kingdoms. In this paper, major focus was laid on his tactics and the qualities as a commander based on Yoo’s military operations in warfare. Yoo Kum-pil was from Pyeongju region, being a descendant of Paekangjin power clan. His ancestors originally were native to Kochang area, but moved to Pyeongsan locality when Paekangjin military post was established in late 8th century. Yoo family then prospered with the new clan base. When 'Gungye', who was the leader of older Koguryo region, expanded its power onto Paeseo zone, Yoo Kum-pil swore allegiance to Gungye regime and started his career there. However, it was only after Wang Kun founded Koryo that Yoo’s real reputation began to be known. Yoo Kum-pil took part in numerous battles and triumphed over everytime. His military operations between 918, when Koryo was founded, and 936, the year of the unification, could be divided into 5 phases. Yoo’s martial prowess reached its greatest height during the battles of Jomul fortress, Kochang, Oonju, and Ilicheon. Moreover, Yoo also was given credit for the naval retaking of Naju and participating in Gyeonhweon’s escape to Koryo. Yoo Kum-pil’s invincibility lied in his ability to organize his troops into strong cavalry(勁騎), which excelled in mobility, superior armament, mighty breakthrough power, and flexible use of tactics. Such talents were well displayed in individual as well as group combats. During the times when Koryo was just established, Koryo men were the majority in the cavalry. However, the influx of northern people outside of the border increased as the unification war intensified. They soon formed the biggest group of Koryo horsemen. Yoo Kum-pil assumed the highest command of this troop, as well as commanders of the main body going to Koryo generals. However, foreign officers were in charge of minor unit forces. Along with outstanding cavalry performance, Yoo Kum-pil’s personal military genius could also be attributed to his victorious career. In the biographies section of History of Koryo, documents show Yoo being a ‘general strategy(將略)’, earning respect from his men. The book of military strategy that Yoo studied to enhance his capabilities was Six Secret Teachings(六韜). He treasured and practiced the virtues of bravery(勇), intelligence(智), benevolence(仁), trust(信), and loyalty(忠) from this treatise. Yoo clearly applied the teachings of this book to his major military activities. Since he was the highest commander of the army, Yoo’s men also learned of his taught qualities, which in turn had significant effects in many aspects. Yoo’s generals and soldiers eagerly followed their general in terms of realizing six virtues as well. Thus, much endeavors of Yoo Kum-pil and his army personnel ultimately worked as a driving force for Koryo to unify the Three Kingdo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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