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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삼국 통일전쟁과 운주전투

The Unification War of the Later Three Kingdoms and the Battle of Unj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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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역사학

초록

운주전투는 후삼국 통일전쟁의 흐름에 분수령이 된 결정적인 전투였다. 이 전투는 927년 3월과 934년 9월에 걸쳐 두 차례 발생하였다. 927년 1차 전투는 왕건과 운주성주 긍준이, 2차 전투는 왕건과 견훤이 대결하였다. 1차 전투는 왕건이 운주를 복속시키기 위한 목적에서 발생하였다. 또한 경남 남해안과 경북 내륙을 연결하는 병참운송망을 구축함으로써 후백제의 군사활동을 봉쇄하고 전쟁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한 전략적 배경 하에서 발발하였다. 결과는 왕건의 승리로 귀결되었다. 전투에서 패배한 긍준은 고려 정부에 귀부하였고, 왕건은 옥산에 성을 쌓은 다음 지키는 군사들을 배치하였다. 운주성주 긍준에 대해서는 왕건의 12번째 비가 되는 흥복원부인의 아버지 홍규과 동일인으로 파악하기도 하지만, 별도의 인물일 가능성 또한 배제할 수 없다. 1차 전투가 종료되고 7년이 경과한 934년 9월에 2차 운주전투가 발생하였다. 2차 전투는 서해상에 대한 해상권 장악과 운주의 전략적 가치가 상호 밀접히 연계된 상황 속에서 충청지역과 서해상의 패권을 둘러싸고 벌인 전투였다. 2차 전투는 왕건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났다. 고려군이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기동력과 돌파력이 뛰어난 경기를 집중적으로 운용하였기 때문이었다. 경기를 활용한 유금필의 공세적 전술에 따라 왕건은 전투에서 완전한 승리를 거두었던 반면 견훤은 참담한 패배를 당하게 되었다. 2차 전투는 충청지역을 둘러싸고 벌인 각축전에서 고려가 패권을 확실하게 장악하는 분수령이 되었다. 전투에서 승리한 고려는 충청지역을 석권하고 서해 해상권을 확보함으로써 통일전쟁을 주도할 수 있게 되었다. 반면에 후백제는 지배영역이 축소되고, 해상권마저 상실당하면서 전쟁의 의지 또한 현격히 약화되었다. 결국 후백제는 이 전투를 기점으로 급격히 집권력이 약화되면서 패망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Abstract

The battle of Unju was a decisive battle that marked a watershed in the unification war of the Later Three Kingdoms. The battle broke out twice in March 927 and September 934. The first battle in 927 was fought by Wang Geon and Geung Jun, lord of Unju, and the second by Wang Geon and Gyeon Hwon. The first battle broke out for Wang Geon to subjugate Unju. The battle also aimed to block Later Baekje's military activities and dominate the unification war by establishing logistics network linking the southern coast of Gyeongsangnam-do and the interior of Gyeongsangbuk-do. It resulted in Wang Geon's victory. Defeated in the battle, Geung Jun defected to Goryeo, while Wang Geon built a fortress at Oksan where he deployed troops. Geung Jun, lord of Unju, is thought to be the same person as Hong Gyu who was the father of Wang Geon's twelfth queen, Madam Heungbok although it it difficult to exclude the possibility that he was a different person. Seven years after the first battle, the second battle brok out in September 934. The second battle was fought for hegemony in the Chungcheong area and the West Sea under the circumstances where the maritime power and the strategic value of Unju were closely related. The second battle ended with one-sided victory of Wang Geon. Goryeo could win the battle because it concentrated on maneuvering strong cavalry that excelled in mobility and penetration. Wang Geon won a perfect victory following Yu Geumpil's offensive strategy that utilized the cavalry whereas Gyeon Hwon was bitterly defeated. The second battle became a watershed for Goryeo to certainly dominate the heated war over the Chungcheong area. Having won the victory, Goryeo became able to lead the unification war by conquering the Chungcheong area and securing maritime power in the West Sea. Meanwhile Later Baekje suffered downsizing of its ruling territory and loss of maritime power thereby its will to win the war being remarkably weakened. In the end Later Baekje began to walk down the road of collapse, having lost its hegemony since this bat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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