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의 수군전략과 후삼국통일
Naval Strategies and Reunification of Koryo
0
조회
0
다운로드
11
인용
0
참고문헌
키워드
초록
이 글은 고려의 후삼국 통일 과정을 건국 초기부터 수립하였을 것으로 짐작되는 수군전략과 이에 기반하여 추진되었던 수군활동을 중심으로 특별히 전쟁사적인 관점에서 살펴보았다. 고려가 수군활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태봉말기에 추진된 일련의 수군력 증강 작업과 태봉 당대부터 후삼국 통일을 목표로 실천하였던 수군전략을 발전적으로 계승하였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태봉말기의 수군력 증강은 전함의 증치와 이를 지휘통솔할 장수 및 군관, 말단의 일반 병졸의 충원을 통해 이루어졌다. 고려가 수군력을 증강한 이유는 태봉정권하부터 수립하여 추진해왔던 서남해역 해상권 장악과 전쟁 재원확보를 골자로 하는 수군전략을 추진함으로써 통일전쟁의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한 것이었다. 고려는 이를 실현하기 위해 서남해역의 주요 해안지방에 대한 원정작전을 구상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국초의 어수선한 정국에서 해상권 확대는 추진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 대신에 고려는 후삼국 통일을 이룩하는데 소요되는 전쟁재원을 서남해안 지방으로부터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전략을 추진하였다. 고려는 이를 위해 도항사와 나주도대행대를 설치하는 등 수군활동 기반을 강화하는 노력을 기울였다. 고려는 수군활동 기반 강화를 통한 전쟁재원 확보를 추진하면서 해상권의 범위를 확대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927년 4월 고려는 해군장군 영창과 능식으로 하여금 강주를 비롯한 인근 해안지방을 공략하는 해상원정을 추진하였다. 고려 수군의 강주진출은 태봉 당대에는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했던 해상권의 범위를 남해안 지방에까지 확대하였다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하지만 동년 9월 공산전투에서 패배한 이후 후백제의 수군이 나주로 통하는 서남해역 해상교통로를 봉쇄하면서부터는 해상권 확대를 추진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이는 남해안 방면으로 해상권을 확대하기보다는 송악과 나주를 연결하는 해상교통을 보장하는 방향으로의 수군전략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후백제의 수군이 개성 앞바다까지 위협을 가해 오던 상황에서 고려의 해상권 장악의 범위는 나주를 핵심으로 하는 서남해역에 국한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결국 이러한 방향으로 집중한 해상교통 보장 노력에 따라 고려는 나주로 탈출하여 귀부를 요청해온 후백제왕 견훤을 호송해옴으로써 후삼국 통일을 앞당길 수 있게 되었다. 태봉 정권하에서부터 추진해왔던 수군전략을 발전적으로 계승하는 가운데 고려는 후삼국을 통일하는 대업을 이루어낼 수 있었던 것이다.
Abstract
This paper is based on a military history perspective of naval strategies and activities that were believed to be established in the foundation era of the Koryo dynasty, as a means to achieve unification of the Later Three Kingdoms. The background of Koryo's active naval activities include a series of navy-strengthening operations at the end of Taebong period, as well as a succession of naval strategies, which aimed for the ultimate unification of the Later Three Kingdoms formulated during contemporary times. The construction of naval power in the latter Taebong era consisted of building warships, recruiting generals and officers who could command, and the increased number of soldiers. The reasons for Koryo's effort to increase its naval power were to continue naval dominance in the southwestern seas, whose design already took effect during the Taebong regime, and to secure war resources, thereby taking the initiative of the unification warfare. In order to implement such a grand plan, the Koryo once even thought about undertaking major expeditions along strategic coastlines in the southwest. However, expansion of sea control was difficult to accomplish due to its unstable political climate in the founding years. Instead, the Koryo dynasty chose an alternative to safely secure unification military expenditures from the southwest - by enhancing the base of naval activities with the institution of Dhohangsa (water-transportation office) and Najudo-daehengdae (temporary local minor government to administer the Naju region). Koryo endeavored to extend its sea power, while simultaneously preparing finances for war through strengthening the infrastructure for naval activities. In April of 927, the Koryo embarked on the sea expedition, led by admirals Yeongchang and Neungshik, to attack Gangju and its neighboring sea coasts. Such a venture was significant as it extended Koryo's marine sphere of influence to the south sea region of the peninsula, which was not possible during Taebong times. However, in September of the same year, Koryo's critical defeat in the battle of Gongsan led to Later Baekjae's containment of the southwest marine route to Naju, which in turn had put Koryo's sea expansion to a halt. This also changed the navy strategy to ensure the sea route between Songak and Naju, rather than enlarging coastal sea control. When the navy of Later Baekjae was threatening the very coastal regions of Gaesung at the time, it was only natural that Koryo's sea power was limited to southwestern seas around Naju. Ironically, it was this concentration of marine traffic that led to the dramatic escape of ex-king Gyeonhwon to Naju, who was then escorted to Koryo for surrender, thereby advancing the unification of the Later Three Kingdoms. Hence, Koryo's grand design of unification ultimately was indebted to the developmental succession of naval strategies of its predecessor, the Taebong kingdom.
참고문헌 (60)
- "三國史記", ~
- "三國遺事", ~
- "高麗史", ~
- "高麗史節要", ~
- "東國通鑑", ~
- 羅末麗初의 豪族과 社會變動 硏究, "金甲童", 高麗大民族文化硏究所, ~ (1990)
- 金在瑾, "韓國船泊史硏究" (1984), 서울대학교출판부
- 金在瑾, "韓國의 배" (1994), 서울大學校出版部
- 류영철, "高麗의 後三國 統一過程 硏究" (2004), 景仁文化社
- 文暻鉉, "高麗太祖의 後三國統一硏究" (1987), 螢雪出版社
- 문안식, "한국고대의 지방사회" (2004), 혜안
- 문안식, "후백제 전쟁사 연구" (2008), 혜안
- 오붕근, "조선수군사" (1998), 한국문화사
- 陸軍本部, "韓國古戰史 2(中世篇)", ~ (1976)
- 李基白, "高麗貴族社會의 形成" (1990), 一潮閣
- 李丙燾, "高麗時代의 硏究" (1984), 乙酉文化社
- 鄭淸柱, "新羅末高麗初 豪族硏究" (1996), 一潮閣
- 崔碩男, "韓國水軍史硏究" (1964), 鳴洋社
- 김갑동, "고려 중앙정치제도사의 신연구" (2009), 혜안
- 洪承基, "高麗政治史硏究" (2001), 一潮閣
- 海軍本部 政訓監室, "韓國海洋史", ~ (1954)
- 강봉룡, "後百濟 甄萱과 海洋勢力 - 王建과의 海洋爭覇를 중심으로 -", 역사교육, (83) (2002), 역사교육연구회
- 姜鳳龍, "羅末麗初 王建의 西南海地方 掌握과 그 背景", 島嶼文化, 21 (2003)
- 金甲童, "高麗太祖 初期의 中央官府와 支配勢力-太祖 元年 6月 辛酉 詔를 중심으로-", 사학연구, (71), pp.77~100 (2003), 한국사학회
- 김갑동, "고려의 건국 및 후삼국통일의 민족사적 의미", 한국사연구, (143), pp.111~143 (2008), 한국사연구회
- 金南奎, "高麗의 水軍制度, In 高麗軍制史" (1983), 陸軍本部
- 김명진, "고려 태조 왕건의 통일전쟁 연구", 박사, 史學科, pp.2009
- 곽유석, "고려선의 구조와 조선기술 연구", 박사, 한국지방사학, pp.2010
- 柳永哲, "古昌戰鬪와 後三國의 정세 변화", 한국중세사연구, 7 (1999)
- 朴漢卨, "高麗太祖의 後三國統一政策", 史學志, 14 (1980)
- 文暻鉉, "王建太祖의 民族再統一의 硏究", 慶北史學, 1 (1979)
- 文秀鎭, "高麗建國期의 羅州勢力", 成大史林, 4 (1987)
- 文秀鎭, "王建의 高麗建國과 後三國統一", 國史館論叢, 35 (1992)
- 문안식, "왕건의 서남해 지역 경략과 토착세력의 동향, In 한국고대의지방사회" (2004), 혜안
- 閔丙河, "申崇謙과 公山桐藪 戰鬪", 軍史, 29 (1994)
- 민현구, "한국사에 있어서 고려의 후삼국통일, In 역사상의 분열과 재통일(상)" (1992), 일조각
- 朴漢卨, "王建世系의 貿易活動에 對하여-그들의 出身究明을 중심으로", 史叢, 10 (1965)
- 朴漢卨, "羅州道大行臺考", 江原史學, 1 (1985)
- 변동명, "김총의 城隍神 推仰과 麗水·順天", 역사학연구, (22), pp.159~190 (2004), 호남사학회
- 신성재, "궁예정권의 나주진출과 수군활동", 군사, (57호), pp.161~196 (2005), 국방부군사편찬연구소
- 신성재, "태봉의 수군전략과 수군운용", 역사와경계, (75), pp.205~231 (2010), 부산경남사학회
- 신성재, "일리천전투와 고려태조 왕건의 전략전술", 한국고대사연구, (61), pp.337~374 (2011), 한국고대사학회
- 신성재, "후삼국시대 나주지역의 해양전략적 가치", 『도서문화』, (38), pp.97~124 (2011), 도서문화연구원
- 申虎澈, "弓裔의 政治的 性格-특히 佛敎와의 관계를 中心으로", 韓國學報, 29 (1982)
- 신호철, "高麗 건국기 西南海 지방세력의 동향 - ― 羅州 호족의 활동을 중심으로", 역사와 담론, (58), pp.1~32 (2011), 호서사학회
- 李基白, "貴族的 政治機構의 整備", 한국사, 5 (1975), 국사편찬위원회
- 李道學, "新羅末 甄萱의 勢力 形成과 交易", 新羅文化, 28 (2006)
- 李在範, "高麗 太祖 卽位時의 社會動向에 관한 一考察, In 阜村申延澈敎授停年退任紀念史學論叢" (1995), 일월서각
- 이재범, "궁예. 왕건정권의 역사적 연속성에 관한 고찰", 사림, (24), pp.101~128 (2005), 수선사학회
- 이재범, "나말여초 ‘압록’의 위치 비정", 사림, (27), pp.101~122 (2007), 수선사학회
- 이창섭, "高麗 前期 水軍의 運營", 史叢, 60 (2005)
- 임용한, "고려 후기 수군 개혁과 전술변화", 군사, (54), pp.265~304 (2005), 국방부군사편찬연구소
- 전덕재, "泰封의 地方制度에 대한 考察", 신라문화, (27), pp.151~186 (2006), 신라문화연구소
- 정선용, "高麗 太祖의 對新羅政策 樹立과 그 性格-신라 景明王과의 교섭 배경을 중심으로-", 한국중세사연구, (27), pp.123~163 (2009), 한국중세사학회
- 정요근, "後三國時期 高麗의 남방진출로 분석", 한국문화, (44), pp.3~29 (2008), 규장각한국학연구원
- 鄭淸柱, "王建의 成長과 勢力 形成", 全南史學, 7 (1993)
- 鄭淸柱, "新羅末ㆍ高麗初 順天地域의 豪族", 역사학연구, 18, pp.26~52 (2002), 호남사학회
- 조인성, "弓裔政權의 對外關係", 강좌 한국고대사, 4 (2003), 가락국사적개발연구원
- 최연식, "康津 無爲寺 先覺大師碑를 통해 본 弓裔 행적의 재검토", 목간과 문자, 7 (2011)
- 池內宏, "高麗太祖の經略, In 滿鮮史硏究 中世篇 2" (1937), 吉川弘文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