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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절걸립패 풍물의 성립과 그 풍물사적 의의

Establishment of Buddhist Monks’Pungmul in the Late Joseon Dynasty and Its Meanin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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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역사학

초록

조선 전기 줄곧 탄압의 대상이 된 불교는 임진왜란 때 승려들의 승병(僧兵)으로의 참가로 국가로부터 일정한 인정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 결과의 하나는 많은 사찰들의 소실이란 참화였다. 이에 조선 후기에 들어 사찰의 재건이나 중수를 위해 승려들 스스로가 ‘○○사(寺) 건립패(建立牌)’란 걸립 풍물패를 만들어 활동했다. 이러한 이른바 ‘절걸립패 풍물’은 그 이전부터 있었던 광대들이나 일반 농민들의 정초 집돌이농악 같은 걸립풍물을 흉내낸것이었다. 조선 후기 절걸립패 풍물의 활동은 전국적으로 이뤄져, 오늘날에도 경북의 빗내농악, 전남 여수, 강진 일대의 ‘버꾸놀이’, 경기· 강원·충청의 절걸립패 고사소리, 경기·충청지역의 남사당패의 존재 등으로 그 분명한 모습들을 보여 주고 있다. 이러한 농악들이나농악과 관계되는 것들에 조선 후기 절걸립패 풍물의 모습들이 분명한 형태들로 남아 있는 것이다. 한편 조선 후기 절걸립패 풍물의활동이 전국적으로 이뤄졌음에도 불구하고, 조선 후기 절걸립패의 연장에서 생긴 남사당패가 오늘날 경기·충청지역에만 남게된 것은 조선 후기에 경기도지역의 사찰 건립이 특히 많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조선 후기에 들어 전국적으로 또 오랫동안 이루어진 절걸립패 풍물 활동은 종래의 풍물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우리나라의 풍물에서흔히 볼 수 있는 고깔, 종이꽃, 색띠, 소고, 바라 등 불교적 요소들이 그러한 것들이다. 조선 후기 절걸립패 풍물은 우리나라 풍물사에서 분명 중요한 위치에 있다. 이에 대한 조사·연구들이 앞으로 보다 본격적으로이뤄져야 한다.

Abstract

Buddhism, which was subject to repression all over the early Joseon Dynasty, received a certain recognition from the state, because Buddhist monks had participated in the war of the Japanese invasion in 1592. On the other hand, however, one of the results was the destruction of many temples. In the late Joseon Dynasty, the Buddhist monks themselves acted as players of Pungmul (people’s percussive band music) for the rebuilding of Buddhist temples. These so-called “the Buddhist monks’ Pungmul ” is the imitation of former clowns’ Pungmul and farmers’ one that sometimes request money or rice at houses of villages. In the late Joseon Dynasty, the activities of the Buddhist monks’ Pungmul were held all over the country. Today, there are “Bitnae Nongak (farmers’percussive band music)” in Kyeongsangbuk-do , “Beokku-noli (the drum play) in the areas of Yeosu and Gangjin in Jeollanam-do , the song of the Buddhist monks’ Pungmul for the people’s house spirits in the Gyeonggi-do , Gangwon-do and Chungcheong-do , and Namsadang-pae (the nomadic entertaining groups composed of only men), as clear pictures of it. In these things related to Nongak or Nongak relevant affairs, the shapes of the Buddhist monks’ Pungmul in the late Joseon Dynasty remain clear. On the other hand, today the Namsadang-pae , which was formed as a result of Buddhist monks’ Pungmul in the late Joseon Dynasty, was left only in the Chungcheong-do and Gyeonggi-do , because the temple construction in the Gyeonggi-do was made especially many in the late Joseon Dynasty. During the late Joseon Dynasty, the Buddhist monks’ Pungmul , which had long-lived and had taken place throughout the nation, had a great impact on Pungmul . There are the Buddhist elements, such as Gokkal (the Buddhist monk’s peaked hat), paper flowers, the color band, the small drum, and Bara (small cymbals) are often found in the Pungmul of Korea. In the late period of the Joseon Dynasty, it is obviously important place in the Pungmul history of Korea. Research and studies on this subject should be made more in the fu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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