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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학론에서 도출되는새로운 역사해석의 가능성

Possibility of new interpretation on history originated from Bukhak Though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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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역사학

초록

백년을 넘기기 힘들다는 이적이 장구하게 번성하는 현실은 18세기 후반 조선 지배층 일각의 인물들로 하여금 청나라의 정체성에 대한 새로운 의문을 품게 하였다. 그런데 바로 이 시점에서 홍대용과 박지원은 청나라의 중국 장악 과정이 공명정대하였기에 유감이 없을 뿐 아니라 명나라의 원수를 갚고 천하의 백성을 구해내려 하였기에 하늘과 백성의 마음이 한결같이 귀순하였다는 한인 지식인들의 인식을 연행 과정에서 직접 접하게 되었다. 이런 한인들의 인식은 홍대용과 박지원을 비롯한 조선인들에게 꽤 중요한 시사를 주었다고 보인다. 왜냐하면 명나라의 멸망과 청나라의 중국 장악이 직접적 관계를 갖지 않는 것으로 이해되면 청나라에 대한 적개심이 약화되는 동시에, 스스로 멸망한 명나라 대신에 청나라가 중국에서 장구하게 번성을 누리고 있는 현실을 설명할 수 있는 논리적 가능성을 찾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이해 위에서 이적인 청나라와 중국의 문물을 분리한 후에 청나라가 중국의 문물을 빼앗아 가지고 있기에 장구하게 번성할 수 있었다는 논리를 도출해내었다. 이렇게 되면 청나라가 빼앗아 가지고 있는 문물은 예부터 전해지던 중국의 문물이기 때문에 조선이 그것을 수용하고 배우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고 필요한 일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특히 박제가에서는 청나라가 중국문물의 실질을 빼앗아 가지고 웅거하였던 것이기 때문에 사실상 중국문물과 청나라는 분리될 수 없는 하나의 덩어리가 되면서 이적과 중국문물의 구분은 결과적으로 모호하게 되어 버리고 말았다. 이제 논리적으로만 보면 이적인 청나라가 중국이 되었다는 정반대의 해석도 성립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긴 것이다. 다만 아직 홍대용, 박지원, 박제가 등에게서는 이적이 중국이 되는 데에 많은 시간이 걸린다는 점이 전제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정약용 단계에서는 이미 명청교체 시점부터 중화적 가치를 보유한 존재로서 이해될 수도 있었다. 이 정도에까지 이르면 청나라 치하 한인들이 청나라의 중국 장악을 이해하는 방식과 거의 흡사해지는 단계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다. 북학을 하는 데 논리적으로 문제가 될 소지는 이제 이들에게서는 없는 것일 뿐 아니라 나아가면 명청교체에 대한 새로운 역사해석까지도 가능할 수 있었다.

Abstract

After passing about sixty years from the time of collapse of Ming dynasty, the possibility of restoration of Ming dynasty was almost completely disappeared, and Qing regime was more stabilized. In this changed condition, most Joseon dynasty's ruling class had to accept the situation that Chinese turned to Barbarian. So they began to consider Joseon dynasty as the only proper successor of Chinese confucian culture instead of Ming dynasty which did not exist any more. On the other hand, this changed situation made most ruling class people of Joseon dynasty try to find the reason why Qing could lasted over a century despite their barbarian attribute. In this process, some figures who visited peking as a member of official envoy of Joseon, such as Hong Daeyong and Bak Jiwon came to know the Chinese people under Qing regime willingly admitted that Qing had no responsibility for collapse of Ming dynasty, and Qing had a sufficient qualification to rule China. Disconnection between the collapse of Ming dynasty and Qing regime could gave a suggestion to Hong Daeyong and Bak Jiwon to explain the reason why Qing could lasted over a century in China. They gradually accept the explanation of the Chinese people under Qing regime, and gave up the revengeful thought toward Qing. In the next step, they began to explain the reason of Qing dynasty's stability and prosperity was not because of Barbarian Qing attribute, but because of Chinese traditional culture which Barbarian Qing stole from Chinese Ming dynasty. Some ruling class figures of Joseon dynasty such as Bak Jega, Bak Jiwon began to separate culture of Chinese and Qing itself, and they did not felt any difficult to accept culture of Qing because it was not Barbarian Qing's but Chinese. Bukhak thought could be originated from this notion, and in this context a little possibility of new interpretation on the event that happened in 1644 at Chi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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