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후반 전라남도 장흥군 주현향약의 성격
The Characteristics of Juhyeon Hyangyak in Jangheung, Jeollanamdo in the late 19th cent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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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19세기 후반 전라남도 장흥군에서 시행된 주현향약의 성격을 살펴본 것이다. 장흥군에는 조선후기에 시행된 향약자료가 다른 지역에 비해 비교적 풍부하게 전해진다. 향약자료 가운데 1893년에 장흥부사 이용태가 시행한 향약, 1899년에 장흥군수 김택규가 시행한 향약, 그리고 1902년에 전라남도 관찰사 이근호가 시행한 보민향약에 주목하였다. 19세기 후반 장흥군은 동학농민운동의 현장으로, 동학농민운동이 진압된 이후에도 여전히 혼란이 지속되었다. 더불어 새로운 사상의 유입, 개혁 등의 다양한 변화를 맞이하는 시기적 배경 속에서 지역에 부임한 지방관들이 향약을 시행하였다. 1893년, 1899년, 1902년 장흥군 주현향약 자료 분석을 통해 향약의 구성과 운영을 살펴보았다. 1893년에 주현향약에서는 각 면의 임원으로 도약정, 부약정, 직월을 두었다. 그리고 향약 운영에서는 시벌을 강조했으며 한편으로는 교화의 기회를 부여했다. 1899년에는 각 면에 도약정, 부약정, 직월과 함께 훈장과 사강을 임원으로 뒀으며, 이들의 역할을 강조했다. 향약 조목에서는 강회와 관련된 내용이 다수 확인되며 그 방식과 절차를 자세히 명시하고 있다. 1902년 보민향약에서는 면단위 임원구성만 확인되는 앞 시기와는 달리, 군-면-리 단위까지 임원이 파악되며, 임원구성에 향교조직을 활용했다. 그리고 강회와 선과적이 활발히 운영되었다. 군에서는 일년에 두 번, 각 면에서는 매달 강회를 열었으며 각 리에서는 매달 선과적을 점검하여 향촌민들의 교화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였다. 19세기 후반 장흥군 주현향약의 성격은, 첫 번째로 향촌교화적 기능이 강화된 점이 파악된다. 이는 향약의 운영에서 강회와 선과적이 중시되었던 것을 통해 알 수 있다. 강회에서는 단지 규약 강독만을 행하는 것이 아니라 시험을 실시하여 결과를 고시하였다. 또한 여름에는 향촌민들로 하여금 글을 지어 올리도록 했다. 그리고 선과적을 바탕으로 상벌을 내리며 교화에 적극적으로 힘썼다. 두 번째로, 조직적 결속이 강화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1902년 보민향약의 조목에서는 오가작통제의 시행을 명시하고 있다. 이때 오가작통제의 여러 기능 가운데 인보조직적 기능을 강조하여 향촌민들의 이탈을 막고자 했다. 즉 향약과 오가작통제를 함께 실시함으로써 각 군부터 하나의 가호까지 향촌민들을 결집시킨 것이다. 또한 1899년과 1902년의 주현향약에서는 시기적으로 신분제가 폐지된 이후임에도 불구하고 귀천을 구분했는데, 이를 통해 봉건적 질서를 바탕으로 향촌민들을 결속시키고자 했음을 알 수 있다.
Abstract
This paper is about the characteristics of “Juhyeon Hyangyak” in Jangheung, Jeollanamdo in the late 19th century. The research is focused on analyzing three Hyangyak:Juhyeon Hyanyak executed by Jangheung governor Lee Yong Tae in 1893, Juhyeon Hyangyak established by Jangheung governor Kim Taek Gyu in 1899 and Bomin Hyangyak conducted by Jeollanamdo governor Lee Guen Ho in all Jeollanamdo region in 1902. Juhyeon Hyangyak was implemented in Jangheung, a region in Jeollanamdo, throughout the whole region. In the late 19th century, many governors were concerned about Juhyeon Hyangyak in order to conduct the village well during their reign in Jangheung. By analyzing Hyangyak Jeollmok of 1893, 1899, 1902, it was confirmed that there were differences between composition and operation of the Hyangyak. In 1893 Juhyeon Hyangyak, it emphasized punishment and the composition of the executives followed those of the 18th century Juhyeon` Hyangyak which was the general format. In 1899 Juhyeon Hyangyak, the composition of executives was changed to follow the composition of executives of 1893 Jugyeon Hyangyak and the positions named Hoonjang and Sagang were added to conduct Ganghwae, which made people reformation. Bomin Hyangyak, implemented in 1902, utilized the Hyangyo in the composition of executives. Hyangyak was operated by emphasizing Ganghwae and the contents recorded the names of righteous and bad people. By analyzing the characteristics of Jangheung Juhyeon Hyangyak in the late 19th century, it was found that Hyangyak implementation focused on reformation rather than strict control of villages. In addition, systematic unity was emphasized. In 1902 Bomin Hyangyak Ogajaktongjae, which bundled together five houses, implemented Hyangyak. As a result, the governor could prevent people leaving to another village or region. In Joseon dynasty, there was strong hierarchy divided by origin. Although this hierarchy was prohibited by law in 1895, in 1899 and 1902 Juhyeon Hyangyak still emphasized hierarchy and governor planned union through this hierarc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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