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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과 한일관계 -‘ 관대한 평화’와 냉전의 상관성 -

Taking Diplomacy Seriously:Japan and Korea on the Road to the Treaty of Peace with Ja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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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역사학

초록

본 논문은 한국과 일본에서 새로 공개되거나 정리 출판된 신자료를 통해, 각각의 정부가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1951) 체결에 임하는 태도와 준비작업을 분석한 것이다. 한일 양국은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의 체결에 영향을 미침으로서 이후 전개될 동아시아 국제질서의 형성을 자국에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어가기 위한 노력을 경주했다. 일본측은 일찍부터 외무성 내 전담부서를 조직하여 미국과의 비공식 접촉을 통하여 일본측의 입장을 전달하고, 실현시키고자 노력했다. 그 결과, 배상문제와 참가국의 제한 등에서 일본측의 의도를 어느정도 관철시킬 수 있었다. 반면, 한국측은 주일대표부에서, 당시의 한국정부의 능력을 감안하면 나름대로 치밀한 분석과 전망을 제시했으나, 결과적으로 이것이 적극 활용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그것은, 본국정부의 입장과 주일대표부의 분석이 일치하지 않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일반적으로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이 일본에게 ‘관대한’ 내용으로 체결된 데에는 냉전이 결정적 의미를 지니는 것으로 분석되어 왔다. 그러나 본 연구의 결과, ‘관대한 평화’는 일본의 사전 준비작업의 치밀함과 주도면밀한 대 연합국 외교의 결과물이며, 냉전과 ‘관대한 평화’에서 직접 인과관계를 찾는 것은 지나친 단순화일 수 있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다.

Abstract

On the basis of newly declassified materials in Korea and Japan, this article aims to show how the two countries in the post-World War II years maneuvered to sway the terms of the impending peace treaty in favor of their respective positions. The Japanese government began early by forming a dedicated team of experts in the Ministry of Foreign Affairs, which then persistently campaigned through informal channels. To some extent, the Allied Powers were nudged along, especially on compensation issues and on the number of peace treaty signatories. On the Korean side, the government delegates stationed in Japan took notable initiatives which, in the end, failed to materialize. The failure seems to be due to disagreements between the delegates and the home government in Seoul. All too often, the onset of the Cold War has been cited as the decisive factor for the leniency of the Treaty of Peace with Japan, at the neglect of the purposeful and meticulous diplomacy undertaken by the Japanese government. The latter, this article concludes, was even more decisive. It would be a gross oversimplification to attribute the lenient peace terms at San Francisco to the Cold War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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