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 체결과 식민지 문제 인식 - 식민주의와 반공주의의 결합과 경쟁 관계의 지점 -
The San Francisco Peace Treaty and Colonial Issues: The Integration and Competition of Colonialism and Anti-Commun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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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 체결 당시 식민주의가 문제라는 인식을 찾기는 어려워 보인다. 국내사료와 식민제국 영국의 기자가 직접 취재한 자료를 검토할 때 한국인들은 식민제국에 대한저항 의식이 병합 초기부터 존재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승전국으로서 평화조약 체결을주도했던 미국과 영국, 그리고 패전국 일본은 최소한 식민제국으로서 식민지에 대한 인식을 공유했던 것으로 보인다. 조약 체결에 가장 적극적이었던 미국의 대표인 John Foster Dulles가 반공주의자이면서 한국보다 일본에 더 가까웠던 점, 한국의 독립 문제를 일본의 주권으로부터 한국이 분리된다고 보는 미 국무부의 문서 및 미국 학자의 인식, 그리고 한반도 내외에서 전개된독립운동 세력과의 교전을 반란 수준으로 바라보는 일본의 인식은 둘 다 제국의 논리를 대변하는 것과 같고 이 인식은 한국의 평화회의 참가와 서명국 지위가 배제된 결정의 배경이 되었다고볼 수 있다. 강화조약이 전쟁상태를 종식하고 평화관계를 회복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합의에 의한 것이라고는 하지만 전승국과 패전국의 힘의 관계가 적용되기 때문에 정치적 성격이 결부되는 것은불가결해 보인다. 이렇게 볼 때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이 전승국인 미국과 영국의 적극적인의사가 반영된 것이므로 1차 세계대전의 강화조약과 달리 패전국 일본에 매우 유리하게 진행된것 자체로 크게 비난을 받을 것은 아니다. 다만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이 식민제국주의 잔재를 포함하고 있고 냉전의 산물이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국제사회의 흐름은 식민지배 과정의 불법뿐만 아니라 식민지배 그 자체에 대한 책임을 져야한다는 방향으로 천천히 변화되고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샌프란시스코 체제라는 오래된 다자체제 안에서 식민지 문제 청산을논의하는 것이 우호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을지 의문을 가져볼 필요가 있다. 즉, 샌프란시스코평화조약이 유일한 전후 한일관계의 국제법적 전제로 보아야 하는지에 대한 다른 출구전략이필요하다.
Abstract
It is difficult to find any negative acknowledgment of colonialism at the time the San Francisco Peace Treaty was signed. Examining domestic historical records and data, and the reports by a reporter from the colonial empire of the United Kingdom evidences signs of resistance to the colonial empire by the Korean people from the beginning of the annexation. However, despite the resistance, it seems that the victorious nations of the United States and the United Kingdom, who led the signing of the peace treaty, and the defeated country, Japan, had shared at least one common perception about colonialism as colonial empires. The fact that John Foster Dulles, the representative of the United States, who had the most active role in concluding the treaty, was an anti-communist with closer ties with Japan than Korea; the documents from the U.S. State Department and the general perception of American scholars that treated the independence of Korea as nothing more than a separation from Japanese sovereignty; and Japan’s perception of the Korean independence movement as mere rebellion, goes to show both the U.S. and Japan had represented the rationale for colonialism and thus also served as crucial underlying reasons for Korea’s exclusion in the peace conference and its status as a signatory. Although the peace treaty is based on an agreement aimed to end the state of war and restore peaceful relations, the influence of the victorious Allied Powers and a defeated nation in the process of making a treaty makes its political nature an indispensable factor. In light of this, considering that the San Francisco Peace Treaty greatly reflects the intentions of the victorious nations of the United States and United Kingdom, unlike the Peace Treaty of World War I, it should not be criticized solely for the reasons of favorable treatment to Japan, a defeated country. However, the fact worth noting is that the San Francisco Peace Treaty contains remnants of colonialism and is a product of the Cold War. The trend of the international community is gradually changing in the direction of acknowledging responsibility for not only the illegality of colonial rule but also colonization itself. Considering this international shift, it is necessary to question whether discussing the settlement of colonial issues based on the old, multilateral system of the San Francisco system alone would bear favorable results. In other words, there is a need for another perspective to examine the proposition that San Francisco Peace Treaty be regarded as the only international legal premise for postwar Korea-Japan rela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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