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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대중국 외교문서와 외교정보의 수집·보존체계

The diplomatic documents relations with China and The diplomatic information Gather-Storage System in the Joseon Dyna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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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역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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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는 禮적 국제질서 관념과 현실적인 국력을 바탕으로 조공체제의 대중국 관계를 형성하였다. 階序的인 조공체제를 바탕으로 외교제도가 보다 정밀해지는 경향은 조선의 대중국 외교관계를 제한하였다. 그러나 국가이익을 우선시하는 현실 외교관계에서 불시로 발생하는 외교사건에 효율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 다양한 외교정보의 수집은 필수사항이었다. 이에 조선은 초기부터 사행이라는 외교제도를 준수하면서 외교정보를 체계적으로 수집하여 이를 분석함으로서 대중국 외교정책의 효율성을 높이고자 하였다. 외교정보는 조선이 대중국 외교사건의 발생에 따라 외교정책을 수립하기 위해 필요한 정보로 다양한 수집경로를 통하여 획득한 각종 정보이다. 외교정보를 통하여 조선은 조공국이 책봉국에 대한 외교라는 제도적 장애를 극복하고, 조선의 국가이익의 극대화라는 외교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기초자료로 다양하게 활용하였다. 조선시대 외교정보는 내용, 형태, 수집경로 등에 따라 분류할 수 있다. 외교문서는 상대국에 대한 외교사건, 외교정책, 외교인식, 외교목적 등을 포함하기 때문에 생산에서 보존에 이르는 단계가 매우 중요하게 인식되었다. 또한, 사행은 외교문서를 전달하고, 접수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외교정보를 수집하고 이를 정리하여 조선에 보고하였다. 외교정보의 수집활동은 사행활동의 핵심적인 활동으로 외교문서의 전달 및 수집활동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전개되었다. 중국의 정세와 대조선 외교정책을 반영하는 외교문서 자체가 신뢰도 높은 외교정보이며, 이를 접수하는 활동이 바로 외교정보의 수집이라 할 것이다. 또한, 외교문서에 반영되지 않은 외교정보는 사행의 수집활동에 의해 확보되었는데, 사행과정에서 견문하여 파악하기도 하고, 북경에서 중국 관원과 접촉하면서 수집하기도 하였다. 사행활동은 북경에서 회동관의 출입여부에 따라 많은 제약을 받았으며, 외교문서의 전달을 직접 담당하였던 통사의 활동에 많이 의존하였다. 수집된 외교정보는 수시보고와 복명후 보고의 형식문으로 장계 내지 문견사건 등으로 보고되었다. 또한 이들 외교정보는 장기적인 보존체계에 따라 『사건』 같은 등록으로 보존되어 향후 발생할 외교사건에 대한 ‘資考据’의 목적으로 활용되었다. 조선후기에 『동문휘고』 단계에 외교문서와 외교정보는 보존체계가 일원화되었다. 조선은 폭넓은 외교정보를 수집하여 분석함으로서 대중국관계에서 발생하는 외교사건을 합리적으로 대응하여 외교정책을 수립하고 시행하였다. 이는 조선의 대중국관계를 합리적이고 체계적으로 대응하였음을 반영한다.

Abstract

The international relationship in traditional East Asia was based on a Tribute system (朝貢體制). Relations with China were carried out in the form of sahaeng (使行) being sent to China and of receive China envoys (使臣接待) coming to Joseon. The development of an issue, settting diplomatic goals, granting a name of sahaeng, and deciding the right time and size comprised the procedures of sahaeng. The administration system of the diplomatic documents proceeded step by step in production, delivery, reception, and custody. They were classified the Joseon and the China document in first stage of reception. On the subject of production, the state document was classified as the institutional and personal things in the era of Ch’ing and Ming. The collection activity of the diplomatic information was related closely to the activity of the diplomacy which is the important with the transmit of the diplomacy document. A diplomacy document’s to reflect the diplomacy policy with the politics situation of China was confidence of a diplomatic information is high. Especially, as the governing system of China, was strictly based on documentation, the justification of sahaeng for delivering documents of the Joseon Dynasty King was emphasized, while individual diplo- matic activities of sahaeng’s members were restricted. Due to such restriction, Tongsa (通事), based on language ability, acted as practical diplomats. While the diplomatic role of Tongsa increased, messengers and other staffs had enough time to experience various cultures during the period of sahaeng, and kept these accounts for the sahaeng record (使行記錄). Although Sasinbyeoldan (使臣別單), which is recorded in the diplomatic documentation of Joseon’s Tongmunhwigo` 『( 同文彙考』). Sasinbyeoldan consisted of the byeoldan of sasin, the mungyeonsageon (聞 見事件) of seojangkwan, and the subon (手本) of yeogkwan (譯官), and was not restricted to any method of description. The official sahaeng record submitted to sengjeongwon (承政院) formed the bases for private sahaeng records that were arranaged by individual sahaeng’s members, and the sahaeng’s members, who did not have the responsibility to submit records to seungjeongwon, left sahaeng records in collections more freely. The service that receive, store and preserve the diplomatic documents hold a key post in Joseon, unlike other state documents. It was important that these documents had a democratic gravity to China. Also, They reflected the decision-making process of foreign policy to China. The document issuance procedures of china was the reception of Joseon. A prompt report was most important in the reception procedures. In order to this purpose, the role of Sunrhyetongsa (先來通事) was emphasized. The preservation was a form of registration, since it was impossible that all documents were preserved. A few forms were organized, such as imun` 『( 吏文』) in the early of Joseon, Seungmunwon deungnok 『`( 承文院謄錄』) in the 15~16th century, and Tongmunhwigo` 『( 同 文彙考』)』in the late of Joseon. While these documents were the original copy, they have historical importance in terms of summarizing the foreign affairs. The storage of diplomatic documents made full use of the foreign affairs, a diplomatic information and policy. Joseon collected a diplomatic information and compiled a collection of diplomatic documents establish efficient diplomacy policy and to deal with the diplomacy affai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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