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과 중국(명・청)의 사행외교
Joseon and China(Ming・Qing)'s Sahaeng(使行) diplomaic
0
조회
0
다운로드
15
인용
0
참고문헌
키워드
초록
조선시대 대중국(명・청) 사행은 조선의 대중국 관계에서 필수적으로 추진해야 했던 외교활동으로 조선과 중국의 치열한 갈등과 조화 속에서 정립, 변화되었다. 조선시대 대중국 사행은 당면 외교사건의 해결을 위한 외교목적의 달성에 중점이 있었기 때문에 사행의 가장 큰 의미는 정치・외교적 의미였다. 대중국 사행의 전형은 홍무연간에 제정되어 명 중심 국제질서에 편입된 조선이 이를 준용하면서 시작되었다. 조・중관계에서 발생하는 외교문제를 해결을 위한 외교활동은 사행과 사신접대이며, 사행은 외교문제 발생, 외교목적 설정, 외교문서 작성, 사신선정, 발행, 사행, 문서전달 및 접수, 귀국의 순서로 진행되었다. 지참하는 외교문서에 의해 사행명칭, 사행규모 등이 결정되며, 목적지에 따라 부경사행과 요동사행으로 구분된다. 삼사와 통사를 주축으로 한 종사원 등으로 구성되며, 홍무연간까지는 해로와 육로를 병행하였다가 영락제 이후 육로로 일원화되었다. 대명사행은 15세기 초 조명관계의 긴장으로 사행은 긴밀하게 파견되었으며, 명 중심 국제질서에서 책봉을 통해 왕실의 정당성을 확보하고자 封典사안이 최대 사행목적이었다. 특히, 태조, 세조, 중종 등의 봉전은 조명간 외교적 입장이 충돌되었던 사례였다. 기타 사행을 통해 종계와 흔단 등의 변무, 우마를 포함한 교역, 의례와 서적 등의 문물전례, 궁각수입과 범월인의 쇄환 등 다양한 외교사안을 해결하였으며, 출래한 명사의 접대를 통해 조선의 외교적 입장을 효율적으로 전달하고자 했다. 16세기말~17세기의 임진왜란과 명청교체 시기에 임진왜란시 명군파견을 위한 주청사행, 광해군대의 봉전사행, 대명사행과 대후금사행의 병행, 병자호란이후 청 중심 국제질서에서 대청사행의 본격화 등 사행의 변화가 있었다. 그러나 큰 틀에서 대중국 사행의 전형은 홍무연간에 규정된 사행제도가 준행되었으며, 명의 제도를 계승하였던 청대까지 시행되었다. 조선후기 대청사행은 보다 외교사안이 복잡하게 분화되었는데, 이는 활발한 조청관계를 반영하는 것이다. 조선의 대청인식은 외교문서, 사행기록 등을 통해 변화양상을 파악할 수 있으며, 조선은 보다 체계적으로 대청관계에 대응하기 위해 종합 외교문서집인 『동문휘고』를 편찬하였다. 개항이후 서구와의 접촉은 청 중심 국제질서에서 변화를 모색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19세기 후반 근대적인 외교관계가 설정되면서 사행제도는 폐지되었다. 조선시대 대중국 사행연구에 대한 몇 가지 제안을 하고자 한다. 첫째, 사행과 사행기록에 대한 명칭문제이다. 둘째, 정치외교사 뿐만 아니라 사상사, 문화사, 경제사 등 제반 사행관련 연구분야에서 사행의 구체적인 의미를 분석하기 위해서는 외교문서와 사행기록을 종합적으로 분석하여 정리하고, 사행기록 작성과정을 고려해야 한다. 셋째, 사행연구는 국내외 학제간 연구가 필수적이다.
Abstract
The Sahaeng(使行) with China(Ming・Qing) in the Joseon period was essentially had to push diplomacy action, and it was established and changed in fierce conflict and harmony of Joseon and China. Sahaeng with China in the Joseon period was set for the purpose to the resolution of the current diplomatic incident, so the meaning of Sahaeng is the most important in terms of political and diplomatic. The start time of model of Sahaeng with China was during Hong-wu reign(洪武年間), Ming dynasty ruled in order to maintain their rule interests and Ming world order(明 中心 國際秩序), to make tribute system and apply to the international community, Joseon was apply this. The diplomatic action with Joseon-Ming relations, which was to solve arising from foreign affairs, can be divided into Sahaeng and china's diplomats reception(使臣接待). The Sahaeng's process was composed of the occurrence of foreign affairs, set up a diplomatic purpose, preparation of a diplomatic document, selection of diplomats, Sahaeng's leave, Sahaeng's period, deliver and requisition of diplomatic document, Sahaeng's return from china etc. The Sahaeng's name and scale determined by brought diplomatic documents, and Sahaeng was divided into Sahaeng to capital city(赴京使行) and Sahaeng to Liaodong(遼東使行). The Sahaeng's member was composed three diplomats and Tongsa(通事) etc, and Sahaeng's route was overland and sea route but only go by land since Yongle reign(永樂年間). Joseon arranged the experience systematic if various diplomacy affair happened active confrontation for. The experience was grasped systematic through the arranging of the diplomacy document. The arranging method of the diplomacy document was the recognition about China diplomacy relation of Joseon and was the confrontation strategy. The preservation was a form of registration, since it was impossible that all documents were preserved. While these documents were the original copy, they have historical importance in terms of summarizing the foreign affairs. [Tongmunhwigo(同文彙考)] was compiled on the basis to believed about the affair to happen at the future. If only political motives are taken into account, foreign relations boil down to doing what is most profitable for one’s own country. These items which was gathered at [Tongmunhwigo], especially ‘Bongjun(封典)’ The Ming-Qing transition in the early 17th century changed Joseon's diplomatic relations toward China and Joseon was incorporated from Ming world order to Qing world order(淸 中心 國際秩序). The change of Sahaeng in this period included Jinju Sahaeng for the dispatch of Ming army, Bongjun Sahaeng in the Kwanghaegun reign(光海君年間), parallel with Sahaeng toward the Ming-Houjin(後金). The Qing invasion in 1636(丙子胡亂) between Joseon and Qing as a watershed to narrate the change of Joseon's diplomatic status towards Qing. After the war, Joseon dispatched the Sahaeng on the Qing alone. Future studies need to refer to the following matters. First, Sahaeng‘s academical nameing problem. Second, Sahaeng research is interdisciplinary research is essential. There shall be a premise about the Sahaeng's political character and economy, cultural history, an institutional history, ideas history etc., involved Sahaeng's name, Sahaeng's record, diplomats' name, etc. Third, There need to examine the creation of a process for the record in many fields, especially interdisciplinary research both at home and abroad.
참고문헌 (100)
- "吏文", ~
- "三峰集", ~
- "六典條例", ~
- "熱河日記", ~
- "湛軒書", ~
- "燕巖集", ~
- "北學議", ~
- "通文館志", ~
- "典律通補", ~
- "비변사등록", ~
- "동문휘고", ~
- "태조실록", ~
- "세종실록", ~
- "세조실록", ~
- "성종실록", ~
- "선조실록", ~
- "인조실록", ~
- "명 태조실록", ~
- "명 영종실록", ~
- "명 효종실록", ~
- "청 태종실록", ~
- "大清會典則例", ~
- "大清會典", ~
- 박원호, "최부 「표해록」역주" (2006), 고려대학교 출판부
- 임기중, "연행록전집" (2001), 동국대학교 출판부
- 全海宗, "韓中關係史硏究" (1970), 一潮閣
- 조지만, "조선시대의 형사법" (2007), 경인문화사
- 최소자, "18세기 연행록과 중국사회" (2007), 혜안
- 권인용, "明中期 朝鮮의 入明使行 -蘇世讓의 「赴京日記」를 통하여-", 명청사연구, (19), pp.109~134 (2003), 명청사학회
- 권인용, "明中期 朝鮮의 宗系辨誣와 對明外交―權발의 『朝天錄』을 中心으로―", 명청사연구, (24), pp.93~116 (2005), 명청사학회
- 김경록, "明代 公文制度와 行移體系", 명청사연구, (26), pp.123~168 (2006), 명청사학회
- 김경록, "명초 홍무제의 종교정책과 통치구상 - 불교와 도교를 중심으로 -", 명청사연구, (46), pp.171~211 (2016), 명청사학회
- 김경록, "明初 洪武帝의 國家統治 구상과 『大明律』", 법사학연구, (53), pp.95~126 (2016), 한국법사학회[DOI]
- 김경록, "명초 홍무제의 군사인식과 군사정책", 군사, (99), pp.145~188 (2016), 국방부군사편찬연구소[DOI]
- 김경록, "宣祖代 洪純彦의 외교활동과 朝ㆍ明관계", 명청사연구, (41), pp.1~35 (2014), 명청사학회
- 김경록, "麗末鮮初 洪武帝의 高麗․朝鮮 認識과 外交關係", 명청사연구, (35), pp.1~33 (2011), 명청사학회
- 김경록, "임진왜란시 조명연합군 지휘체계와 수군파병 과정", 이순신연구논총, 19 (2013)
- 김경록, "조선시대 대중국 사행의 정치·외교적 의미 — 麟坪大君의 使行을 중심으로 —", 온지논총, (42), pp.67~106 (2015), 온지학회[DOI]
- 김경록, "조선시대 대중국 외교문서와 외교정보의 수집·보존체계", 동북아역사논총, (25), pp.291~323 (2009), 동북아역사재단
- 김경록, "조선시대 대중국 외교문서의 접수?보존체계", 한국사연구, (136), pp.133~177 (2007), 한국사연구회
- 김경록, "조선시대 事大文書의 생산과 전달체계", 한국사연구, (134), pp.35~74 (2006), 한국사연구회
- 김경록, "조선시대 사신접대와 영접도감", 한국학보, 117 (2004)
- 김경록, "朝鮮時代 使行과 使行記錄", 한국문화, (38), pp.193~230 (2006), 규장각한국학연구원
- 김경록, "朝鮮時代 朝貢體制와 對中國 使行", 명청사연구, (30), pp.91~128 (2008), 명청사학회
- 김경록, "조선의 對淸關係 認識과 外交體系 ― 조선후기 외교문서의 정리를 중심으로 ―", 이화사학연구, (37), pp.139~181 (2008), 이화사학연구소
- 김경록, "조선초기 吏文의 편찬과 對明 외교문서의 성격", 이화사학연구, (34), pp.221~255 (2007), 이화사학연구소
- 김경록, "朝鮮初期 軍人送還問題와 朝明間 軍事外交", 군사, (83), pp.221~258 (2012), 국방부군사편찬연구소[DOI]
- 김경록, "조선초기 귀화정책(歸化政策)과 조명관계(朝明關係)", 역사와 현실, (83), pp.213~247 (2012), 한국역사연구회
- 김경록, "조선초기 대명외교와 외교절차", 한국사론, 44 (2000)
- 김경록, "조선초기 종계변무의 전개양상과 대명관계", 국사관논총, 108 (2006)
- 김경록, "조선초기 통사의 역할과 위상변화", 한국학보, 101 (2000)
- 김경록, "朝鮮後期 ?同文彙考?의 編纂過程과 性格", 조선시대사학보, (32), pp.185~226 (2005), 조선시대사학회
- 김경록, "朝鮮後期 事大文書의 종류와 성격", 한국문화, (35), pp.181~234 (2005), 규장각한국학연구원
- 김경록, "중종반정 이후 승습외교와 조명관계", 한국문화, (40), pp.211~247 (2007), 규장각한국학연구원
- 김경록, "淸日戰爭 初期 朝日盟約의 강제 체결과 일본의 군사침략", 한일관계사연구, (51), pp.281~326 (2015), 한일관계사학회
- 김경록, "청일전쟁기 일본군의 경복궁 침략에 관한 군사사적 검토", 군사, (93), pp.233~273 (2014), 국방부군사편찬연구소
- 김경록, "홍무제의 대외인식과 조공제도의 정비", 명청사연구, (37), pp.1~31 (2012), 명청사학회[DOI]
- 김구진, "조선전기 한・중 관계사의 시론-조선과 명의 사행과 그 성격-", 홍익사학, 4 (1990)
- 김명순, "洪錫謨의 游燕藁 硏究", 동방한문학, 27, pp.257~290 (2004), 동방한문학회
- 김성준, "태종의 외척제거에 대하여 : 민씨형제의", 역사학보, 17・18 (1962)
- 김성칠, "연행소고", 역사학보, 12 (1960)
- 김일환, "연행의 사회사" (2005), 경기문화재단
- 김주한, "燕行錄을 通해 본 韓中文化交流", 모산학보, 2 (1991)
- 남지대, "조선 태종의 권위 확충", 규장각, (45), pp.39~67 (2014), 규장각한국학연구원
- 남지대, "조선 태종의 왕위와 왕통의 정당화", 한국문화, (63), pp.247~276 (2013), 규장각한국학연구원
- 노기춘, "이익모의 병진연행록에 관한 연구", 한국도서관·정보학회지, 36(3), pp.213~231 (2005), 한국도서관·정보학회
- 문중양, "‘鄕曆’에서 ‘東曆’으로: 조선후기 自國曆을 갖고자 하는 열망", 역사학보, (218), pp.237~270 (2013), 역사학회
- 문형진, "朝鮮太宗時期大明律運用情況", 아시아문화연구, 10 (2006)
- 문형진, "중국문화의 수용과 변용 - 大明律과 授時曆을 중심으로", 중국학연구, (59), pp.187~210 (2012), 중국학연구회
- 박원호, "명초조선관계사연구" (2002), 일조각
- 박원호, "명초조선관계사연구" (2002), 일조각
- 朴竣鎬, "洪武禮制와 朝鮮 初期 公文書 制度", 古文書硏究, 22, pp.141~168 (2003), 한국고문서학회
- 백옥경, "조선전기 역관연구", 박사, 사학, pp.2000
- 서인범, "조선전기의 외교 실무자 通事", 동국사학, (53), pp.37~81 (2012), 동국역사문화연구소
- 성당제, "정묘호란시 소현분조와 세자의 역할-소현분조일기를 중심으로-", 규장각, 31 (2007)
- 김남윤, "심양일기와 소현세자의 볼모살이", 규장각, 29 (2006)
- 이범직, "國朝五禮의 성립에 대한 일고찰", 역사학보, 122 (1989)
- 이영춘, "麟坪大君의 燕行錄 : <燕途紀行>", 사학연구, (82), pp.43~79 (2006), 한국사학회
- 이원순, "赴京使行의 文化史的 意義", 史學硏究, 36 (1983)
- 이인영, "建州紀程圖記", 진단학보, 10 (1939)
- 이인영, "申忠一의 建州紀程圖記에 對하야", 진단학보, 10 (1939)
- 이춘희, "19세기 燕行文人의 文學交流 양상 및 의미-藕船 李尙迪을 中心으로", 한국어문학연구, 45 (2005)
- 이태진, "19세기 한국의 국제법 수용과 중국과의 전통적 관계 청산을 위한 투쟁", 역사학보, (181), pp.131~157 (2004), 역사학회
- 이현종, "明使接待考", 향토서울, 12 (1961)
- 이훈, "임란 이후 ‘회답겸쇄환사’로 본 대일본외교 전략 - 선조대를 중심으로 -", 한일관계사연구, (49), pp.267~309 (2014), 한일관계사학회
- 이희관, "朝鮮初 太宗의 執權과 그 政權의 性格", 역사학보, 120 (1988)
- 임기중, "수로연행록과 수로연행도", 한국어문학연구, 43 (2004)
- 정석원, "朝鮮의 中國書籍輸入과 燕行의 機能", 중국어문학논집, 4 (1992)
- 정은주, "明淸交替期 對明 海路使行記錄畵 硏究", 명청사연구, (27), pp.189~228 (2007), 명청사학회
- 정훈식, "홍대용 연행록의 구성방식과 성격", 한국문학논총, (40), pp.59~82 (2005), 한국문학회
- 조성산, "18세기 후반~19세기 전반 對淸認識의 변화와 새로운 中華 관념의 형성", 한국사연구, (145), pp.67~113 (2009), 한국사연구회
- 조영록, "水牛角貿易을 통해 본 鮮明關係", 東國史學, 9・10 (1966)
- 지두환, "세종대 동아시아 정치상황", 한국학연구, (51), pp.85~110 (2014), 한국학연구소
- 차문섭, "세종대의 국방과 외교", 세종학연구, 12・13 (1998)
- 한영호, "조선의 回回曆法 도입과 『칠정산외편』", 민족문화, 45, pp.127~160 (2015), 한국고전번역원[DOI]
- 한형주, "對明儀禮를 통해 본 15세기 朝-明관계", 역사민속학, (28), pp.39~75 (2008), 한국역사민속학회
- 홍성구, "두 外國人의 눈에 비친 15 · 16세기의 中國―崔溥 『漂海錄』과 策彦 『入明記』의 比較―", 명청사연구, (24), pp.117~156 (2005), 명청사학회
- 宋慧娟, "論後金朝鮮“兄弟之盟”的性質", 長春師範學院學報, 22(2) (2003)
- 鄭微, "論淸入關前盟誓根源", 邊疆經濟與文化, (97) (2012)
- 丁曉昌, "中國公文發展史" (2004), 蘇州大學出版社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