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요 간의 전쟁과 和議 - 澶淵의 전역과 맹약을 중심으로 -
War and the Peace Treaty between Song China and Liao : An Inference from the Battle and Pact of Chanyu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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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대는 11-12세기의 정복왕조 시기에서 고도로 현실주의 정치를 특징으로 한다. 군사적인 수단 즉 전쟁에 의해서는 거란족의 국가를 패배시킬 수 없었기 때문에 송요 관계사는 다음과 같은 특징으로 요약할 수 있다. 즉 상대적으로 단기간의 전쟁과 주로 많은 양의 재화를 주면서 상대적으로 장기간의 평화를 이루었다. 송요간의 전연의 맹약은 쌍방이 전쟁을 하고 화약(和約)으로 끝맺은 것으로 전쟁과 외교의 실상을 첨예하게 보여주는 사건이다. 즉 송 초에는 영역 내에서 통일 완성 후에 다시 대거 북벌을 시도했으나 실패하고 전연(澶淵)의 맹약(盟約)에 이르러 정식으로 화약을 체결하며 전쟁이 멈추게 된 것이다. 1004년에 체결한 전연의 맹약은 실로 북송의 대요관계를 결정하는 매우 중요한 사건이었을 뿐만 아니라 이후 송이 이민족 국가와 국제관계를 맺는데 있어 중요한 지표가 되는 것이었다. 영국의 유명한 장군이자 전략가였던 몽고메리(Bernard Law Montgomery)는 전쟁은 왜 일어나는가? 라는 질문에 대해 “합의를 도출할 다른 방법이 없을 때 항상 중재자 역할을 한 것은 다름 아닌 전쟁이었다는 것이다. 전쟁이 내린 판결은 정의보다 힘에 기초한 것이었다.”라고 정의하였다. 또한 독일의 클라우제비츠(Karl von Clausewitz)는 고전적인 『전쟁론』에서 “전쟁이란 다른 수단을 가지고 하는 정치의 계속에 지나지 않는다. 전쟁은 정치적 행위일 뿐만 아니라, 정치의 도구이며, 양국 사이의 정치적 교섭의 계속이며 정치와는 다른 수단을 사용하여 이 정치적 교섭을 수행하는 행위이다.”라고 하였다. 이러한 그의 견해에 대입한다면 전연의 맹약은 그 이전부터의 전투의 과정에서 강화라는 결론을 도출하는 과정이었다고 볼 수 있다. 요의 남침에 의해서 시작된 전연의 전쟁은 서로 절대적인 우위를 가지지 못했기 때문에 결국 북송의 입장에서 전례에 없이 요에 대해 거의 대등한 국가적 실체를 인정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중국 역사상에서 맹약이란 기타 민족정권과 맺은 조약의 형식으로 근대적 개념에서 외교의 한 가지 형식이라고 볼 수 있다. 이는 전쟁의 결과 한편의 우위가 확립되지 않았을 때 전쟁을 종결시키는 방법의 하나이다. 이제까지 전연의 맹약을 둘러싸고 전통시대의 평가와는 달리 특히 1980년대 이후 중국학계를 중심으로 수많은 논고가 발표되었다. 이러한 논고들은 대체로 전연의 맹약 자체에 대한 성격과 의의를 현재 중국의 시각에서 평가한 것이 그 특징이라고 볼 수 있다. 본고는 전연의 맹약을 전쟁으로부터 외교적 수단인 맹약에 이르는 과정을 정리하여 봄으로써 북송과 요의 전쟁과 화의의 역사적 의미에 대해 재검토한 것이다. 특히 1980년대 이후 중국의 전연의 맹약에 대한 평가는 대부분 다민족 일체주의에 입각하여 해석하려는 경향이 농후한 것이 사실이다. 현재 중국의 영토 내에서 존재했던 모든 민족의 역사가 모두 중국의 역사라는 다민족주의적인 관점에 의거한다면 송요 간의 전쟁도 일종의 내전(civil war)가 되는 것이다. 중국에서의 연구 성과에서도 요송 전쟁은 10세기 후반기부터 11세기 초까지 중국 북방의 광대한 지구에서 발생했던 일종의 내전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그러나 당시에 있어서 송과 요는 분명히 독립적인 정권이었고, 별개의 민족이었다. 더구나 전연의 맹약에서 서로 인정한 서서(誓書)에서는 상대를 남조와 북조로 인정하고 있다. 전통적인 사서(史書)의 기술 자체가 한족왕조인 송을 정통으로 설정하였기 때문에 이제까지 이 맹약이 송에게 굴욕적이었는가, 아니면 평등한가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졌던 것이다. 하지만 지나치게 현재적인 입장을 역사해석에 투영하는 것도 바람직하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즉 오늘날 중국의 민족융합을 강조하는 의도가 게재된 평가는 지양하면서 객관적인 평가가 요구되는 바이다.
Abstract
The diplomatic policy of Song during the period from the eleventh to twelfth century is characterized by its pursuit of practical orientation. Because of the impossibility of defeating the the Khitans by military powers Song could not help choosing the policy of a relatively short war and a long-lasting peace at the cost of national territory. The process of the battle and peace at Chanyuan (澶淵) well reflected this policy. After the dynasty had accomplished the re-unification within the original territory of the earlier Song dynasty, it again tried to expand its northern territory by war, but ended in failure and the loss of national strength. With the conclusion of the Treaty of Chanyuan in 1004 the long war was over, and this was an important turning point to decide the diplomatic policy with Liao. It also had been influential in the relationship with other states. The Song-Liao War was a kind of political tool to conclude the Treaty of Chanyuan to maintain peace with other states; an original goal. The Song-Liao War broke out due to Liao’s invasion of Song, but neither attained superiority over the other. Thus Song could not help approving Liao as a state with nearly equal status for the first time. Since 1980 Chinese historians’ view of the Treaty of Chanyuan has been a good example that demonstrates the oneness of the multiple ethnic groups under one nation. If the view of the perpetual history of the various ethnic groups contemporary Chinese territory belong to Han ethnic group-oriented Chinese history is accepted, the Song-Liao War could be defined as a kind of civil war. However, it is clear that Song and Liao had separate national identifies from each other at that time and also consisted of different ethnic groups. Furthermore, the Treaty of Chanyuan had content in which Song and Liao approved each other as Southern and Northern dynasties. Because the authoritative history described the Song dynasty as “genuine” Chinese history, the Treaty of Chanyuan has been debated as to whether it was humiliating to the Han ethnic group or reached between two equals. I think the arbitrary interpretation of history through contemporary viewpoints contaminated by political power is inclined to be distorted. It is desirable to evaluate history as it was. But, recently, most Chinese historians have a deviated intention to describe their history as such that all of their own past history of different states by different ethnic groups within present Chinese territory belongs to the single Chinese history continued through the Han ethnic gro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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