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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후 일본에서의 조선인미수금 공탁과정과 그 특징

Characteristics of the Procedures for Deposits Conforming to the Unpaid Wages of Korean Workers in Japan after World War 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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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역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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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해방 후 일본에서 조선인의 미수금을 공탁하는 과정과 그 특징에 대해 살펴본 글이다. 일제 지배 말기 일본 국내로 강제동원된 조선인은 120만명을 넘었다. 이들의 임금은 그 상당부분이 강제저축 등의 다양한 방식으로 지급이 보류되어, 일본정부의 전쟁비용으로 충당되거나 일본기업의 자금회전을 위해 유용되었다. 해방 후 연합국군총사령부와 일본정부는 기업으로 하여금 조선인이 받지 못한 미수금을 일본 법무국에 공탁하게 하였다. 일본정부는 ‘거소불명’ ‘통신불능’을 그 이유로 제시하였으나, 공탁보고서에는 강제동원 피해자의 본적이 기록되어 있고, 공탁 당시 한일 간의 통신 역시 가능하였다. 이 공탁금의 존재는 아직까지 피공탁자인 강제동원 피해자들에게 통지되지 않았으며, 저금 등 공탁 대상의 누락으로 공탁금의 절대 액수도 실제에 비해 매우 적은 편이다. 이 공탁을 통해 일본정부는 조선인연맹의 세력확대를 막는 정치적인 효과를 누리는 동시에 미 점령군의 요구도 수행하였으며, 경제적인 어려움도 면할 수 있었다. 일본기업 역시 일정한 금액을 공탁한 후 미수금의 지불 채무가 소멸되는 효과를 얻었다. 당시 조선인을 치안의 대상으로 보는 점령군의 인식을 가지고 있던 연합국군총사령부는 전후 미국의 동아시아 질서 재편 과정에서 일본을 적극 활용하고자 하였고, 일본정부의 공탁조치를 인정하게 되었다. 결국 70년 전 강제동원된 조선인은 미수금을 받지 못한 채 귀국하였고, 그 미수금은 공탁으로 인해 여전히 피해 당사자에게 미수금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Abstract

This paper focuses on the process and the characteristics of how Japan deposited the accounts due Koreans after defeat in 1945. The number of Koreans forced to mobilize to work in Japan in the late period of Japanese colonization exceeded one million persons. Their pay was postponed through various methods, such as compelled savings, and used as war expenses for the Japanese government or as funds for Japanese companies. After defeat, the General Headquarters (GHQ) of the Allied Powers and the Japanese government made the companies deposit the accounts due Koreans in the Japanese Bureau of Judicial Affairs. The Japanese government explained this act by citing the absence of addresses or the impossibility of communication. However, the addresses of the forced mobilization victims were recorded in the report, and communication between Japan and Korea at that time also was possible. The existence of this deposit has not yet been notified to the victims of the forced mobilization, and the amount of the deposit is much less compared to the scale of accounts due because of the omission of the public deposit. Through this deposit the Japanese government could obstruct the expansion of Chongryon (The General Association of Korean Residents in Japan), fulfill the demands of the United States Occupation Forces, and avoid economic difficulties. Japanese companies also received the benefit of their unpaid debt disappearing after depositing a certain portion of the amount. The GHQ had the eyes of the occupation forces, and saw Koreans as targets of public order. It intended to use Japan actively while the United States reorganized the East Asian order in the Cold War. Thus, it permitted the Japanese government to deposit the accounts due Koreans. In the end, seventy years ago, the victims of forced mobilization returned to Korea without receiving their accounts due paid, and the account due still remains unpaid to the victims because of this depos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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