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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개토왕비에 보이는 대외 관계와 고구려 천하관에 대한 연구 현황과 과제

Status and Tasks for Study of the Foreign Relations and World View of Koguryo in the Gwanggaeto Ste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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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역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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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개토왕비에 보이는 고구려인의 천하관, 그리고 당시의 대외 관계에 대해서지금까지 적지 않은 연구 성과들이 나왔다. 천하관은 당시 고구려인들이 자신과 주변 세계를 어떠한 관점에서 이해하고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비문은 고구려인의 천하관을 이해하는 데 가장 좋은 자료이다. 지금까지의 연구를통해 고구려는 유교적, 중국 중심의 천하관에 사로잡혀 있지 않고 자신들만의독특한 세계관을 통해 주변을 인식하였음이 밝혀졌다. 고구려인들의 이러한 자국 중심의 천하관은 비문에 보이는 주몽을 시조로한 왕실의 신성성과 초기 왕 계보를 통해서도 확인이 가능하다. 왕실 교체의시점, 초기 왕계의 복원과 확립 과정에 대한 연구들이 활발히 이루어졌다. 지금까지의 연구에 의하면 고구려 계루부 왕실의 등장은 주몽과 함께, 초기 왕계는 『삼국사기』와 비문에 전하는 내용이 당시 고구려인들이 인식한 초기 왕계와 거의 일치하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고구려는 자신만의 세계관을 확립하고 이를 바탕으로 활발한 대외 정복 활동을 전개하였다. 비문에 보이는 광개토왕 당시의 대외 관계는 백제를 중심으로 한 대남방 관계 기사가 주를 이루고 있지만 거란·왜·신라·가야 등 당시동아시아의 다양한 국가와 종족들이 언급되고 있고, 후연과 관련된 부분도 있는 것으로 추측된다. 비문에 대한 연구 초기는 일본 식민사학자들이 소위 임나일본부를 합리화하려는 의도로 신묘년조에 대한 연구를 활발히 전개하였다. 그러나 1970년대이후 비문변조설과 비문에 대한 역사적 재검토가 진행되며 신묘년조가 왜의 남부 지역 공략을 기록한 사실을 기록한 것이 아니라, 고구려가 역사적기념물을 남김에 있어 자국 중심의 과장된 서술의 도구로 왜를 활용한 것으로해석하는 데 의견이 합치되고 있다. 대외 관계를 둘러싼 비문의 많은 부분이 백제를 겨냥한 것이지만, 일부는그 대상이 명확하지 않아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영락 17년조는 백제로 보는견해와 후연으로 보는 견해가 대별되고 있으며, 영락 8년조는 숙신과 동예 지역으로 보는 주장이 각각 제기된 상황이다. 아울러 10년조의 가야 제국에 관한문제도 다양하게 논의되었다.

Abstract

There have already been many studies of international relations and the world view of Koguryo people found in the Gwanggaeto Mausoleum Tablet. The world view, the outlook on the world, has shown how the people of Koguryo grasped themselves and the world around them. An epitaph on the tablet is the most sensible material for understanding their world view. There are a lot of representations and descriptions revealing self -esteem of people of Koguryo, which have been investigated at here and abroad. According to research published to date, it is understood that Koguryo recognized its surroundings through its original world view, instead of that based upon Confucianism and Chinese centrality. A world view based on the self-esteem of the people of Koguryo can be identified through the genealogy of kings of early Koguryo from Jumong in the epitaph. The studies of the line of descent have mainly focused on the transition period from the Keru tribe to the Sono tribe and the moment when the king’s genealogy was recovered and become established, through comparing and contrasting the line from Chinese historical materials with that from Samguk sagi and the epitaph. According to studies, it seems to be correct that the contents found in Samguk sagi and in the epitaph are remarkably consistent with the early line of descent that people of Koguryo acknowledged. Koguryo came to construct its unique world view through which it could proceed with conquest projects. The epitaph also gives evidence of many kinds of relevant facts. Even though mostly consisting of articles of international relations with the southern region, especially Baekje, the epitaph of the Gwanggaeto Mausoleum Tablet refers to a variety of East Asian countries and tribes including Khitan, Wa, Silla, Gaya, and even the alleged Houyan dynasty. The early research into the epitaph carried out by so -called Japanese colonial historians mainly concentrated on the text regarding the sinmyo year for the purpose of rationalizing the Mimana Nihon-fu controversy. However, as the suspicion of falsification and reconsiderations of the epitaph have continued since the 1970s, it is now believed that the sinmyo year text does not describe Wa’s invasions of the southern part of the Korean peninsula, but could be seen as an exaggerated depiction which took advantage of Wa in order to emphasize historic achievements. Although most parts of the epitaph regarding international relations target Baekje, other subjects of attention are not clear, leading to continuous controversies. Some scholars opine that the article of the seventeenth year of Yeongnak is associated with Baekje, while other scholars argue that it relates to the Houyan dynasty. There is a question whether the article of the eighth year of Yeongnak refers to Suksin or Dongye, and various investigations into countries of Gaya, mentioned in the tenth year of Yeongnak, may be fou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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