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원사화(揆園史話)』·『단기고사(檀奇古史)』·『환단고기(桓檀古記)』 위서론의 성과와 과제
Critical Studies on Pseudographs Regarding Ancient Korean History
0
조회
0
다운로드
13
인용
0
참고문헌
키워드
초록
이 연구는 『규원사화』·『단기고사』·『환단고기』가 위서라는 기왕의 연구성과를 정리하고, 앞으로의 연구방향을 전망해본 것이다. 『규원사화』는 조선 숙종 원년(1675) 북애노인이 썼다고 하지만, 1920년대에 와서야 세상에 알려졌다. 1823년에 한치윤이 저술한 『해동역사』 「지리고」 와 1914년 김교헌이 편찬한 『신단실기』를 참고한 대목이 있다. 그러므로 『규원사화』는 1914년 이후에 만들어진 위서다. 『단기고사』는 발해의 대야발이 지었다고 하지만, 현재 유통되고 있는 것은1949년 이관구(1885~1953) 등이 번역하였다는 것이다. 근대 이후에 이루어진 과학적 발명과 발견이 단군조선 때의 일이라고 하는 등 『단기고사』가 위서라는 사실은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다. 『단기고사』에는 이관구의 자전적 기록에나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단기고사』는 1945~1949년 사이에 이관구가저술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환단고기』는 1911년 계연수가 『삼성기』·『단군세기』·『북부여기』·『태백일사』의 네 책을 묶은 것이라고 한다. 범례에 따르면 『삼성기』는 안함로가 지은『삼성기』와 원동중이 지은 『삼성기』를 합친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안함·노원·동중 3인의 활동이 찾아지므로, 안함로와 원동중이 지은 『삼성기』는 있을수 없다. 고려 말 이암의 저술이라는 『단군세기』에는 ‘원시국가’, ‘남녀평권’ 등근대에 사용된 용어와 개념이 나온다. 『단군세기』는 고려 말의 저술이 아니라근대 이후에 만들어진 것이다. 뿐만 아니라 『단군세기』의 기록 가운데 상당수는 『규원사화』와 『단기고사』의 기록을 참고하였음이 확인된다. 『환단고기』를 세상에 알렸다는 이유립은 1973년과 1976년에 이미 『단군세기』의 원형이 되는 글을 발표한 바가 있다. 그러므로 『환단고기』는 1970년 전후부터 이유립이『규원사화』·『단기고사』 등을 참고하여 만들어왔던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규원사화』는 친일적 성격의 단군교를 중심으로 유포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내용에서도 제국주의 일본에서 유행하였던 대아시아주의와 조응하는 면이있다고 여겨지고 있다. 『환단고기』를 세상에 알렸다고 하고, 실제로는 그 저자라고 생각되는 이유립은 일제시기 친일적 유교단체에서 활동하였다. 그 내용에서도 이른바 일선동조론의 입장과 상통하는 면이 있다고 여겨지고 있다. 심지어 독립운동가였던 이관구가 실제 저자로 여겨지는 『단기고사』에서도 대아시아주의의 영향을 찾을 수 있다. 그러므로 근대 민족주의사학과 『규원사화』· 『단기고사』·『환단고기』의 같고 다른 점을 밝힐 필요가 있다. 『규원사화』·『단기고사』·『환단고기』는 한국 고대사를 찬란한 영광의 역사로 서술하였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경향은 다른 나라에서도 찾을 수 있다. 가령 일본의 ‘고사고전(古史古傳)’ 류의 저술을 보면 일본및 일본인의 ‘위대함’을 ‘역사적’으로 ‘입증’하려는 자민족중심적(ethnocentric) 인 성격을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이제 이들 위서 내지는 위서에 나타나는 인식에 대한 비교, 비교사적 연구가 필요하다고 하겠다. 『규원사화』·『단기고사』·『환단고기』가 위서며, 따라서 고대사 연구의 자료로 취급할 수 없다는 것은 학계의 상식이다. 그러나 시민사회의 반응은 이와달랐다. 이것들은 1970년대 중반 국정 국사교과서 파동을 계기로 알려지기 시작하였거니와 1980년대부터는 대형서점에 이들과 관련한 서가가 등장할 정도로 관심을 모았다. 1990년대 중반 이후 주춤했던 열기는 2012년 모 종교단체가 『환단고기』의 새 역주본을 내놓고, 이를 적극적으로 홍보하면서 재연되었다. 이에 위서의 사회사로 관심을 넓힐 필요가 있다. 『환단고기』 등의 유행은 시민들의 국수주의적인 경향을 부추긴다는 측면에서 우려할 만한 현상이다. 그럼에도 이에 대한 학계의 대응은 소극적이었다. 이제는 학계의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한 시점이다.
Abstract
This article combines and arranges preceding research results which have proven that the books Gyuwon sahwa , Dangi gosa , and Hwandan gogi are pseudographs and suggests the direction of future research. Gyuwon sahwa is known to have been written by Bugaenoin in 1675, during the Joseon Dynasty. Dangi gosa was written by Daeyabal during the Balhae Dynasty. Hwandan gogi is known to have been composed as four books, Samseonggi , Dangun segi , Bukbuyeogi , and Taebaek ilsa , and was compiled by Gye Yeon-su in 1911. Among these texts, Dangun segi is known to have been written by Iam in the late Goryeo dynasty, and Taebaek ilsa was composed in the early Joseon Dynasty. But it has been proven that those three texts were written in the modern period or in the contemporary period. Thus they all are pseudographs. In these texts we find words that have been used from the modern period, such as “culture” and “primitive state.” Gyuwon sahwa may have been written by a member of the Dangungyo around 1920. Dangi gosa may have been written by Yi Hwa-sa, who was known as a translator of Dangi gosa around 1945. Hwandan gogi may have been written by Yi Yu-rip around 1970. He was known as an introducer of Hwandan gogi in 1979. Some directions of current study follow below. 1) History of historiography research: Someone who believed that the three books Gyuwon sahwa , Dangi gosa , and Hwandan gogi are important for the study of ancient Korean history argued that they inherit the nationalistic history in the modern period. To reveal differences between the nationalistic history in the modern period and these three books, we can understand the character or the nature of these three books more deeply. 2) Comparative study: The chauvinism or nationalistic sentiments in these three books are popular in some nations. In particular, in Japan we can find books that are very similar regarding the contents and the understanding of ancient history. Comparative study helps us to understand nationalism around the world. 3) Social historical study: These three books are pseudographs. Thus it is clear that they cannot be materials for the study of ancient Korean history. Nevertheless, some people have believed the contents of these three books. We require social historical studies regarding this social phenomenon.
참고문헌 (17)
- 이문영, "만들어진 한국사" (2004), 파란미디어
- 김상호, "古朝鮮 문제를 둘러싼 논쟁과 금후의 과제", 創作과 批評, (가을) (1988)
- 박광용, "대종교 관련 문헌에 위작 많다-『규원사화』와 『환단고기』의 성격에 대한 재검토", 역사비평, 10(가을) (1990)
- 박광용, "대종교 관련 문헌에 위작 많다(2)』-『신단실기』와 「단기고사』의 성격에대한 재검토", 역사비평, 16(봄) (1992)
- 박광용, "우리 역사를 의심한다" (2002), 서해문집
- 宋贊植, "僞書辨", 月刊中央 (1977)
- 李道學, "在野史書 解題 『桓檀古記』", 民族知性 (1986)
- 이순근, "고조선 위치에 대한 제설의 검토", 聖心大學報, 190 (1987)
- 이순근, "고조선 위치에 대한 제설의 검토」 改稿, 「고조선은 과연 만주에 있었는가", 역사비평, 3(겨울) (1988)
- 趙仁成, "『揆園史話』論添補", 慶大史論, 3 (1987)
- 趙仁成, "現傳 『揆園史話』의 史料的 性格에 대한 一檢討", 李丙燾九旬紀念韓國史學論叢 (1987)
- 趙仁成, "『揆園史話』와 『桓檀古記』", 韓國史市民講座, 2 (1988)
- 趙仁成, "韓末檀君關係史書의 再檢討-『神檀實記』·『檀奇古史』·『桓檀古記』를中心으로", 國史館論叢, 3 (1989)
- 趙仁成, "國粹主義史學과 현대의 한국 사학", 韓國史市民講座, 20 (1997)
- 趙仁成, "『桓檀古記』에 대한 몇 가지 의문(요지)", 『환단고기의 사료적 검토』단군학회 1999년도 전반기 학술회의 (1999)
- 조인성, "『桓檀古記』의 『檀君世紀』와 『檀奇古史』·『揆園史話』", 단군학연구, 2 (2000)
- 조인성, "단군과 고조선사" (2002), 사계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