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주의 역사학으로서 만주건국대학에서의 역사 연구
A Study on the History in Manchu Genkoku University as the Historiography of Colonial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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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 일본의 만주 침략의 결과이자 대륙 침략의 발판이었던 만주국의 수도 신징[新京]에서는 중일전쟁이 진행 중이던 1938년 5월 만주건국대학(滿洲建國大 學)이 개교하였다. 전장의 한복판이라 할 수 있는 만주라는 공간에 세워진 근대학제의 최고 학부인 ‘대학’. 그렇다면 건국대학에서 이루어진 역사 연구를 살펴보는 것은 당시 일본인 연구자들이 진행했던 역사 연구의 침략성과 근대 역사학으로서의 속성을 함께 파악하는 데에 좋은 시사점을 제공해 줄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은 과연 그곳에서 어떠한 역사 연구가 이루어졌는지를 살펴본 것이다. 만주국이 건국되고 건국대학이 개교했을 당시 일본 학계에서는 만주사의 체계화를 요청하고 있었으며, 침략 전쟁이 진행·확산되고 일본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세계 질서로서 ‘동아신질서’, ‘대동아공영권’이 주창됨에 따라 기존의 역사서술을 비판하면서 일본이 구축하고자 했던 새로운 세계 질서를 합리화해 줄 수있는 역사 서술을 모색·시도하고 있었다. 이러한 한편 건국대학의 부총장으로서 실질적인 리더였던 사쿠다 쇼이치는 만주건국대학의 사명으로서 ‘만주국학(滿洲國學)’, 곧 만주국의 건국원리를 규명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남아 있는 건국대학 관련 자료, 건국대학에서 역사를 담당한 교수들의 재임시절 강의록, 연구물, 답사보고서 등을 종합해 볼 때, 건국대학에서 이루어진 역사 연구는 당시 이러한 학계의 요구와 건국대학의 사명에 조응하는 것으로서, 다음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 번째는 만주사 연구와 그 체계의 정립과 관계된 것들이다. 특히 이 과정에서 만주의 역사는 ‘만주국사’로서, 만주에서 활동한 모든 민족들을 포괄하는 ‘만주민족(滿洲民族)’과 한민족(漢民族)으로 대변되는 외부 민족의 교섭·투쟁의 과정으로 정리되었다. 두 번째는 ‘일만관계’를 부각하면서 아시아에서 일본의 역사적 위상을 제시하는 것이었다. 이는 만주국 건국정신의 하나인 ‘일만불가분관계(日滿不可分關係)’를 보여줄 수 있는 것이자1910년대 이래 발해와 일본의 관계에 대한 연구와도 맞닿아 있는 것이었다. 건국대학 교수 타키가와는 중국 문화의 수용이라는 공통점을 지닌 발해와 나라시대 일본의 관제를 비교하며 ‘일만일체(日滿一體)’를 넘어 일본인에 의한 새로운세계 문화 창조의 가능성을 엿보았다. 이러한 연구는 일본에 의한 새로운 세계질서의 건설을 지지하는 것이라 하겠는데, 이는 새로운 단어였던 ‘대동아공영권’에 역사성을 부여하고자 했던 모리의 시도에서 분명하게 드러났다. 마지막으로 들 수 있는 것은 일본의 만주 침략 과정을 만주국 건국의 전사(前史)로서 제시하는 것이다. 오노와 타키가와는 19세기 서세동점이 시작된 이래 일본은 ‘일본의 방위=동양의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서구의 침략에 반격을 가했으며, 만주국 건국의 직접적인 계기였던 만주사변 역시 서구의 침략으로부터 동양의 평화를 수호하기 위한 조치였다고 평가했다. 이처럼 건국대학에서 이루어진 역사 연구 활동은 당시 학계와 건국대학의요구에 부응하는 것은 물론 침략과 전쟁이라는 현실에 대해서도 지극히 추수적이었다. 그렇지만 그 과정에서 이루어진 답사나 발굴의 결과물이나 자료들은 상당히 실증적인 것으로, 현재의 백과사전에 기재되어 있는 경우도 많다. 이는 현실추수적인 결론에 도달하는 과정의 실증성을 어떻게 바라보고 평가해야 하는가에 대한 새로운 문제를 제기한다. 한편 ‘만주사’ 또는 ‘만주국사’라는 개념, 용어의 등장과 그 체계화를 위한 시도는 이른바 ‘역사 만들기’와 관련하여 흥미로운 연구 대상이다. 만주국 건국과 함께 일본인 역사가들의 입장에서 ‘근대 역사학’에 입각하여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역사 서술 단위로서 ‘만주’, ‘만주국’을설정하고 그 역사를 연구·서술하게 된 것은 ‘역사 만들기’라는 식민주의 역사학의 다양한, 또 하나의 양상과 관련해서도 주목할 만한 연구 대상이다. 이 역시추후의 과제로 삼겠다.
Abstract
This paper examines historical studies conducted in Manchu Genkoku University (滿洲建國大學, Genkoku University), the highest educational institution established in Manchukuo (滿洲國), a foothold for Japanese invasion of the continent. At that time, Japanese academics demanded the arrangement of Manchurian history, and as the war “Greater East Asia Co-Prosperity Sphere (大東亞共榮圈)” was advocated, they were looking for a historical description to explain the slogan. In addition, Vice President Sakuda Soichi, the university’s core leader, emphasized that Genkoku university’s mission should be to find out the “National Study of Manchukuo (滿洲國學),” namely, the founding principles of Manchukuo (建國原理). Historical studies carried out by Genkoku University responded to the demands of Japanese academics and the mission of Genkoku University. These studies can be broadly divided into three categories: 1) research and education for the establishment of Manchurian history, 2) establishing Japan’s historical position in Asia, emphasizing the relationship between Japan and Manchuria, 3) since the late nineteenth century, exploration of the historical meaning of Japan’s invasion of Manchuria. Through such studies, Manchuria’s history by Manchurians (滿洲民族) distinguished from the Han (漢族) was organized into the Manchukuo-history (滿洲國史). Japan’s ability to create culture was confirmed in the context of history, and the “Greater East Asia Co- Prosperity Sphere” was described something not new but with historical grounds. On the other hand, the Manchurian Incident (滿洲事 變), a direct trigger for the establishment of Manchukuo, was narrated as a measure to protect “the peace of the East” from the Western invasion of Asia that had continued since the late nineteenth century. Historical studies conducted in Genkoku University not only responded to the demands of the academia and the university but also defended the reality of aggression and war. However, the results and materials of the survey and excavation conducted in that process were quite empirical, and are often included in the current encyclopedia. This raises new questions about how to evaluate the empirical results of the process of reaching a conclusion to defend the reality. On the other hand, the emergence of the terms and concepts called “the Manchurian history (滿洲史)” or “Manchukuo history (滿洲國史)” and attempts to systematize them are interesting subjects of research related to so-called “making history.” Along with the invasion of Manchuria and the foundation of Manchukuo, Japanese historians studied and described the history of Manchuria or Manchukuo, which had not been regarded as a unit of history in the past, in terms of “modern history.” This is notable in relation to another aspect of history of colonialism, namely “making history.” This will also be a topic of future resea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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