浮石寺 無量壽殿 塑造佛坐像 硏究 - 특히 신라 화엄종 주존불상 도상의 화엄교의적 성격과 관련하여
A Study on the Seated Clay Buddha Statue in Buseok-sa Muryangsujeon - particularly in relation to the iconographic aspects of the main Buddha statue of Shilla Hwaeom sect and Hwaeom-based doctrin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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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부석사 무량수전에 주존으로 봉안되어 있는 소조불좌상은 신라 화엄종의 근본도량에 주존이므로 그 가치가 매우 크고 중요하다. 그런데 무량수전 소조불좌상은 그 동안 막연하게 의상이 부석사를 창건할 당시에 조성한 7세기 후반의 불상을 원형으로 고려전기에 다시 제작한 아미타불상으로 추정할 뿐, 불상 도상의 화엄교의적 성격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는 미흡한 편이었다. 이에 이 논문에서는 부석사의 연혁을 살펴보고, 불상의 양식을 분석하고 관련 자료들을 종합적으로 검토하여 창건기 부석사 주존불상의 원형에 대해서 파악하고자 하였다. 특히 창건기 부석사 주존불상의 도상으로 생각되는 ‘촉지인을 결한 아미타불상이 7세기 후반 신라에서 성립될 수 있는가?’라는 문제에 대해서 논의하였다. 그리고 신라 화엄종 사찰에서 촉지인 아미타불상을 주존으로 신앙했던 배경과 이유를 의상의 화엄불신론에 입각하여 해석하였다. 이러한 고찰을 통해 도출된 주요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부석사 무량수전 소조불좌상은 고려전기에 조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통일신라시대 불상양식을 다분히 반영한 복고적인 특징을 갖고 있다. 계주와 나발이 후대에 보수되는 과정에서 변형되었을 것으로 판단된다는 점을 제외하면, 중후한 인상이나 건장하면서 탄력감이 있는 불신, 편단우견의 착의법과 옷주름의 표현 등이 통일신라시대 전기에 제작된 일본 쓰시마 쿠로세 관음당에 전하는 동조불좌상과 매우 흡사하다. 이는 무량수전 소조불좌상이 의상이 부석사를 창건했던 7세기 후반에 조성한 주존불상을 원형으로 했을 것이라는 선학들의 견해를 뒷받침하는 양식특징이다. 『삼국사기』등의 관련기록을 종합해보면 부석사는 국가의 후원 아래 창건되었으며 창건 당시 중심사역은 현재 무량수전이 자리하는 일대로 여겨진다. 그리고 무량수전 소조불좌상은 신라 화엄종 근본도량의 주존인 창건기 부석사 주존불상의 상징성을 계승하기 위하여 그를 모본으로 조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래서 무량수전 소조불좌상은 창건기 부석사 주존불상의 봉안처에 그대로 안치되었기 때문에 현재 佛殿의 정면이 아닌 측면을 향하는 독특한 구조를 띠게 되었다고 여겨진다. 「원융국사비」의 내용 중에서 석가모니불과 아미타불이 같다는 교의적인 입장을 밝히고 있는 대목이나 부석사에 아미타불상을 주존으로 봉안한 이유에 대해서 서술하고 있는 대목에 근거해 볼 때, 창건기 부석사 주존불상도 촉지인을 결한 아미타불상일 것으로 추정된다. 7세기 후반 唐나라에서는 돈황 막고굴 제335굴 ≪아미타정토변상도≫의 주존불상 등 인도 보드가야 마하보리사의 금강좌진용상 도상의 영향을 받아서 촉지인을 결하면서 편단우견 방식으로 대의를 착용한 아미타불상이 조성되었다. 이러한 도상은 7세기 후반에 신라에도 전해졌다고 추정되는데, 그러한 예가 석장사지 출토의 촉지인을 결한 전불이다. 부석사는 국가적인 후원에 힘입어 창건되었으므로 王京의 장인들이 불사에 동원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창건기 부석사의 주존불상은 당시 왕경지역에 알려져 있던 최신의 촉지인 도상으로 형상화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의상은 화엄종 근본도량의 주존으로 적합한 『화엄경』의 經主인 노사나불상과 不二의 교의적인 개념을 갖고 있는 華嚴一乘의 아미타불상을 주존으로 신앙하였다. 중생의 바람대로 몸을 나투는 부처의 자유자재함을 상징하는 ‘行境의 十佛’을 『華嚴經』의 主佛이라고 생각했던 의상의 華嚴佛身論에 비추어보면, 무량수전 소조불좌상은 당시 신라사회와 불교도들의 요구에 부합되는 화엄교의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촉지인을 결한 석가모니불의 모습으로 형상화된 華嚴一乘의 아미타불상은 같은 불교문화권의 주변국가들과는 차별되는 주존불상 도상으로 신라 화엄종의 독자적인 교의를 대변한다는 점에서 의의가 매우 크다.
Abstract
The Seated Clay Buddha Statue enshrined as the main Buddha Statue of Buseok-sa Muryangsujeon has an extremely high significance and value as the main statue of fundamental Buddhist seminary of Shilla Hwaeom sect. However, the Seated Clay Buddha Statue of Muryangsujeon has been indeterminately assumed to be the Amitabha Buddha Images created in early Koryo Dynasty period in late 7th century when monk Uisang founded Buseok-sa but left much to be desired in terms of concrete discussion of the form and style of statue or iconographic implications. Against this backdrop, this paper aims to identify the time of period building the large scale Buddhist temple and statues by examining the history of Buseok-sa and analyzing the style of Buddha statues. In addition, I have discussed whether the iconography of Amitabha Buddha Images with Xuanzang can be established in Shilla in late 7th century. And I have interpreted the background of honoring the Xuanzang Amitabha Buddha Images as the main Buddha statue in temples of Shilla Hwaeom sect based on the Uisang’s view of Hwam Buddha. The Seated Clay Buddha Statue of Buseok-sa Muryangsujeon features a dignified appearance and flexible body of the Buddha, which indicates the influence of the Buddha statue style in the First Half of the Unified Silla. However, the presence of jewel on the crown of the head, lack of perfect harmony with organic connection of different parts of the body and schematic processing of clothing wrinkles implies that it was created in early Koryo Dynasty period. Meanwhile, the description of 『Song Goseungjeon(宋高僧傳)』, 『Samguk-Sagi(三國史記)』, and 『Heritage of the Three States(三國遺事)』 indicates that Buseok-sa was in grand scale from the very beginning stage of its construction and its core location is considered to be around where Muryangsujeon is currently sitting. And the Seated Clay Buddha Statue of Muryangsujeon arranged to be directed toward the side instead of the front is presumably attributed to the fact that the main Buddha statue of Buseok-sa during its foundation period served as a benchmark, which resulted in the identical iconography and size and that the existing pedestal of the main Buddha statue was reused to have the same exposure as well. Next, the fact that 「Wonyung Guksabi(圓融國師碑)」 reveals that Sakyamuni Buddha and Amitabha Buddha are basically the same from a doctrinal perspective and that the Amitabha Buddha Images of Buseok-sa was enshrined as the main Buddha image leads to presumption that the main Buddha statue of Buseok-sa during the foundation period was the Amitabha Buddha Images with Xuanzang. Tang Dynasty in late 7th century was influenced by iconographic aspects of Geumgang Jwajinyongsang of Bodh Gaya Mahabodhi Temple in India, including the main Buddha statue in the illustration of the Pure Land Paradise of Buddha Amitabha of Tunhuang Cave No.335 so that the Amitabha Buddha Images dressed with his left shoulder covered while featuring Xuanzang were created. Since Buseok-sa was founded through a national support, it is highly likely that master artisans in Wanggyeong were mobilized in the project of building the temple. Therefore, the main Buddha statue of Buseok-sa during the foundation period could be embodied as the latest Xuanzang iconography of the time widely known throughout the Wanggyeong region. Monk Uisang honored the Amitabha Buddha Images of Hwaeom Ilseong that has the same doctrinal concept as that of Virocana Buddha Images, which is the doctrinal principle of the Avatamska Sutra appropriate for a main Buddha statue of the fundamental Buddhist seminary of Hwaeom sect as the main Buddha statue. From the Uisang’s perspective of discourse of Hwaeom Buddha’s Body, the Seated Clay Buddha Statue of Muryangsujeon could be considered to represent the Hwaeom Thought aligned with the Shilla society and Buddhists’ requests at the time. The Amitabha Buddha Images of Hwaeom Ilseong, which represent the Sakyamuni Buddha with Xuanzang have significant implications in that they feature iconographic aspects of the main Buddha statue differentiated from those in surrounding countries of the same Buddhism and represent the unique doctrinal characteristics of Shilla Hwaeom se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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